이건희 삼성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과세 등을 권고했던 금융행정혁신위원회(위원장 윤석헌)가 금융위원회에 권고안 중 당장 실천이 어려운 과제들도 취지를 살려 이행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혁신위의 권고에도 금융위와 최종구 위원장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차일피일 금융개혁안 실천을 거부하는데 따른 것이다.
금융위는 17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금융혁신위 위원들과 조찬간담회를 갖고 혁신위가 지난달 20일 마련한 권고안의 이행계획을 논의했다.
윤석헌 위원장은 "이번 권고안은 국민의 눈높이에서 금융을 바라보고 마련한 것"이라며 "당장 실천이 어려운 과제라도 권고안의 취지를 잘 살려달라"고 요청했다.
혁신위, 강력한 권고에도 금융위, 핵심사안에 “일단 소나기만 피하자” 태도로 외면
혁신위는 최종구 금융위원장 취임 이후 지난 해 8월 구성됐다. 9차례 회의를 거쳐 4개 분야 73개 과제로 만든 혁신 권고안을 지난 해 12월 20일 발표했다. 혁신위는 보고서에서 △이건희 차명계좌에 대한 과세 △금융권 근로자추천이사제 도입 △금융소비자 보호기능의 분리·독립 등을 권고하면서 "금융당국은 '껍질을 벗어야 새살이 돋는다'는 자세로 권고안의 내용과 취지를 향후 관련 정책 수립 및 집행시 충분히 감안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혁신위의 권고사항 가운데 핵심내용을 사실상 거부하는 등 금융개혁에 미지근한 자세로 일관한다는 지적이다. 금융위는 혁신위 권고안 중 이건희 차명계좌 과징금 부과와 은산분리 완화, 근로자추천이사제 도입, 키코 피해구제 등은 국회 등의 논의 과정을 통해 검토가 필요하다고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날 김용범 부위원장은 "권고안의 이행계획을 조속히 확정해 충실히 관리하겠다"며 "즉시 추진이 어려운 권고안도 혁신위 위원들과 긴밀히 협의해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혁신위의 강력한 권고에도 핵심사안에 대해서는 금융위가 “일단 소나기만 피하자”는 태도로 근본적인 개혁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혁신위원들은 간담회에서 "이번 권고안은 '국민의 눈높이'에서 금융을 바라보고, 혁신 과제를 마련한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이들은 "당장 실천이 어려운 과제라도 권고안 취지를 잘 살려줄 것을 요청한다"고도 말했다.
이에 금융위는 대출 원금 연체 때 변제 순서 개선 방안과 개인 신용평가체계 개선 방안을 이달 중 발표한다. 금융권 채용실태 점검 결과도 관계 부처와 함께 공개하기로 했다. 1분기에는 금융위 직원 행동강령과 금융업 진입규제 개편방안 등을 마련하고, 금융회사 지배구조법령 개정안과 금융혁신지원 특별법 제정안을 상반기 국회에 제출한다.하반기에는 서민금융 체계를 개편하고, 행정지도 등 금융규제 운영 규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과 소관 국장, 윤석헌 혁신위원장과 김병철·유종일·박창완·김헌수·배현기·박창균·이은영 위원이 참석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 "대통령, 금융부문 정권교체 후 가장 성과가 안난다는 것 잘 알아"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2018 무술년 신년 기자회견’ 신년사를 통해 이례적으로 금융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금융도 국민과 산업발전을 지원하는 금융으로 혁신해야 한다“면서 ”금융권의 갑질, 부당대출 등 금융적폐를 없애고, 다양한 금융사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진입규제도 개선하겠다“고 천명했다. 이어 불완전 금융판매 등 소비자 피해를 막고, 서민, 중소상인을 위한 금융기능을 대폭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금융도 국민과 산업발전을 지원하는 금융으로 혁신해야 한다”고도 피력했다. 이어 “금융권의 갑질, 부당대출 등 금융적폐를 없애고, 다양한 금융사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진입규제도 개선하겠다”고 덧붙였다.
文 대통령이 금융개혁을 강조한 배경에는 정권출범 후 금융위원회와 금융관료 사회(속칭 금피아)의 수구적 자세 및 반개혁적인 태도와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다. 이른바 ‘금피아(금융위와 마피아의 합성어)’의 수구적 자세 및 반개혁적인 태도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새 정부 출범 후 사회 각분야와 정부 각 부처에서 정권교체의 변화를 실감하지만 유독 금융권만 개혁의 무풍지대라는 비판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금융당국의 민간자문기구도 강력한 혁신을 요구하지만 금융위와 금융관료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최근 국회 정무위에서 일부 여당 의원과 얼굴을 붉히면서 이건희 차명계좌와 노동이사제 도입 등을 두고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정무위 소속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지금은 정의롭고 공정한 문재인정부임을 최종구 위원장은 명심하길 바란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청와대의 한 핵심관계자는 "대통령도 금융부문이 정권교체 이후 가장 성과가 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있다"며 "금융개혁 분야는 정권교체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금융위와 최종구 위원장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전했다.
한 금융전문가는 “일각에선 혁신위 권고안이 경제적 논리나 정합성을 따지지 않은 채 현 정권 지향점과 정치적으로 '코드'를 맞췄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면서 “그럼에도 이건희 회장 과세를 놓고 여전히 삼성을 보호하거나, 다른 금융개혁안의 핵심내용 이행을 국회에 미루는 등 하는 금융위의 수구적인 태도를 좌시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