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은 외환위기를 교훈으로 1999년 설립된 이래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앞으로도 금융감독원은 설립 초기의 초심을 잃지 않고 금융회사의 건전성 제고,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 및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금융감독의 원칙과 기본에 충실함으로써, 금융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매진하겠습니다.”
금감원 홈페이지에서 있는 최흥식 원장의 인사말이다. 그는 이어 “상대적 약자인 금융소비자의 권익 보호에 헌신하여 금융정의를 실현하는 금융감독원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한다.
새해를 맞아서도 서울 여의도 금감원 주변의 표정은 우울하기만 하다. 지난 해 한햇동안 채용비리 문제로 검찰수사를 받는 등 어수선하더니 올해 들어서는 관치금융 논란에 이어 직원 가상화폐 내부거래 드러난 탓이다. 우리나라 금융회사 감독기관으로서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부실 내부통제로 신뢰가 크게 추락하고 있다.
최근 하나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회추위)에 회장 선임절차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가 이를 번복하면서 금융당국의 위신이 실추하고 말았다. 청와대가 '민간 금융회사 인사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무리한 요구를 시도했다가 체면만 구겼다는 분석이다.
금융권에는 지난해 스스로 채용비리 논란에 휘말린 금감원이 금융사에 대한 채용비리 조사에 나서면서 과연 이런 조사를 수행할 자격이 있느냐를 놓고 불신이 커진 상황이다. 여기에 최근 설상가상으로 금감원 직원이 정부의 가상화폐 대책 발표 직전 자신이 보유한 가상화폐를 팔아서 수익을 챙겼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금융당국조차 내부통제가 전혀 안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마구잡이로 쏟아진다.
국내 금융지주사에는 그동안 관치그림자가 늘 짙게 배어 있었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기존 금융사 CEO에 대한 고강도 검사가 진행되고, CEO는 자리에서 물러나고 정부의 '낙하산'이 내려오는 식이다. 지난 2009년 KB금융 회장에 내정된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은 금감원 검사에서 중징계를 받고 물러났다.
앞서 2008년 KB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했던 황영기 전 회장은 금융위가 우리은행장 시절 파생상품 투자로 은행에 1조원의 손실을 끼쳤다는 이유로 직무정지 3개월의 중징계를 내리자 2009년 1년여 만에 회장직에서 하차했다. 2010년 3월 라응찬 당시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4연임에 성공했지만, 그해 10월 금감원이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로 중징계 방침을 통보하자 회장직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기재부 산하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이달 말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 여부를 안건으로 올릴 계획이다. 금감원이 공공기관이 되면 기재부 장관이 금감원의 인사, 조직, 예산 등을 통제하고 기관장 해임 건의 ·요구까지 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금감원은 업무 전반이 통제를 받으면서 권한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우려한다.
최근 국회 정무위는 감독기구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글로벌 표준과는 어긋난다며 공공기관 지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각종 비리를 관리하기 위해선 외부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좀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국민들은 “선량한 시민이 하면 투기이고, 금감원 직원이 하면 투자냐‘면서 금융당국을 온통 불신의 눈초리로 응시하고 있다.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문제는 보는 측면에 따라서 필요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금융감독기관이 공공기관으로서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옥상옥(屋上屋)'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지금 금감원의 독립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덕성 회복이 아닐 수 없다. 도덕성 기반이 없는 독립성은 결국 일방통행식 행정과 부패로 이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