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금융지주의 '견제와 균형'
농협중앙회-금융지주의 '견제와 균형'
  • 홍윤정 기자
  • 승인 2018.05.1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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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선전문구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서 '최고존엄'이란 말이 귀에 익다. 이는 말 그대로 '여러 존엄한 존재 중 가장 존엄한 존재'라는 뜻일 것이다. 북에서는 과거부터 김정일, 김정은에게 비판이 조금이라도 나오면 '최고존엄 모욕'이라며 반발한다.

또 백두혈통(白頭血統)이라는 말도 있다. 북한의 김일성이 백두산을 거점으로 그의 부인 김정숙과 항일투쟁을 벌였다고 해서 그 직계에 붙여진 명칭이다. 현재 백두혈통으로는 김정은, 김정철, 김여정, 김한솔 등이 해당된다. 북한 김정일은 집권 이후 체제 선전 도구로 ‘백두혈통’을 강조했다.

요즘 국내 금융권에서도 이런 말들을 종종 쓴다고 한다. 금융지주 회장들이 인사 때 자기 사람을 중용하면 ‘백두혈통’얘기가 나온다. 일종의 ‘성골‘ 또는 ‘광어’급에 해당한다. 그런데 농협중앙회에는 아예 ‘최고존엄’이 존재한다고 한다. 농협중앙회장이 휘하에 농협금융지주 회장을 거느리기 때문이다.

결국 농협중앙회의 ‘최고존엄’은 바로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이다. 농협중앙회장은 투표로 선출된다, 사실상 정치인이다. 그는 농협중앙회는 물론 농협금융지주나 농협은행 등 다른 금융계열사에서 모두 ‘태상왕(太上王)’으로 모신다. 아무도 김 회장을 견제하지 못하며, 농협에서는 ‘최고존엄’으로 떠받든다.

반면 최근 취임한 김광수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어떨까. 그동안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 등 각종 좋은 자리 물망에 올랐던 그가 ‘돌고돌아’ 꿰찬 자리가 농협금융지주 회장이다. 그러나 농협금융지주회장은 대주주인 농협중앙회의 자회사 대표나 다름이 없다. ‘1인 지하, 만인 지상’이라고 할까. 우리 헌법상 대통령 아래의 국무총리의 위상과 비슷하다. 농협 금융계열사들을 총괄하면서도 엄연히 농협중앙회장의 휘하에 있다.

그렇다면 그가 농협금융지주 회장 자리에서 ‘장수’하려면 자연스럽게 김병관 농협중앙회장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고 잘 지내야 한다. 역대 농협금융지주 회장들은 상전이던 농협중앙회장과의 ‘실력대결’에서 번번히 패퇴한 끝에 중도하차하거나 '분루(憤淚)'를 삼켰다

김병원 중앙회장은 전남 나주 출신으로 광주농고와 광주대를 졸업했다. 1999년 남평농협 조합장을 시작으로 농협중앙회 이사, NH무역 대표이사, 농협양곡 대표이사 등을 거친 정통 농협맨이다. 2016년 3월 임기 4년의 농협중앙회장에 당선돼 취임했다.

김광수 농협금융회장은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 1983년 행정고시 27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금융감독위원회 은행감독과장, 재정경제부 국세조세과장, 금융정책과장,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 금융정보분석원장 등을 역임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엘리트 관료에서 비리 의혹 공무원으로 추락, 대법원 무죄 판결로 공무원으로 복직, 다시 야인으로, 그리고 금융지주 회장으로 화려하게 ‘금의환향’한 셈이다.

농협금융지주 계열사 인사권은 원칙적으로 농협금융지주에 있지만 농협중앙회는 차기 농협금융지주 회장 선임 과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다. 농협금융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말 이뤄진 NH농협은행 인사에도 중앙회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NH농협은행은 부행장 11명 가운데 9명을 교체하는 등 큰 폭의 물갈이 인사를 실시했는데 신규 선임된 부행장과 지역 영업본부장에 중앙회 출신들이 포함됐다.

김용환 전 농협금융 회장은 NH농협은행 인사를 놓고 “농협금융지주의 임원인사는 전적으로 내가 했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를 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최고존엄’인 농협중앙회장의 뜻을 거스르며 인사를 단행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탓이다.

전통적으로 농협금융지주 회장에는 대부분 모피아(옛 재무부와 MAFIA의 합성어)출신들을 중용한다. 그것은 계열 금융사들이 금융위와 금감원이나 농림부 등 관청 쪽과 잘 지내야 협조가 잘 되고 성과가 오르기 때문이다. 결국 농협중앙회장과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공생관계에 가깝다.

시중은행들이 채용비리 태풍으로 휘청거리는 가운데 유독 NH농협은행을 비롯한 농협금융이 '채용비리 무풍지대'로 남은 것은 '모피아' 출신 회장들의 덕이라는 시민단체들의 지적이 적지 않다.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관계로 농협금융이 '과잉 특혜'를 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금융위와 금감원을 장악하는 재무-금융관료들이 자신들의 관료선배가 재직 중인 농협금융을 건드리지 않고 사실상 '치외법권'으로 방치한다는 관측이다.

농협금융 출범 이후 첫 회장을 맡은 신충식 전 회장은 ‘회장·행장 분리’를 주장하며 출범 100일 만에 회장직에서 사퇴했다. 2대 회장인 신동규 전 회장 역시 임기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현 구조로는 누가 와도 힘들다”며 회장직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며 사퇴했다.

3대 회장인 임종룡 전 회장은 임기중에 금융위원장 임명에 따라 자리를 옮겨갔다. 금융권에서는 농협금융회장을 ‘모피아의 무덤’으로 부르는 이유다. 따라서 모피아 에이스인 김광수 현 회장의 앞길도 꼭 분홍빛을 장담하기는 어렵다.

크게 보면 한 조직 속에서 '최고존엄'과 '백두혈통'이 각축하는 농협의 풍경이 아니러니하다. 신동규 전 농협금융 회장은 사퇴 직전 “대주주인 농협중앙회장의 권한이 있고, (나는) 금융지주 회장으로서 한계가 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그가 농협중앙회로부터 이용만 당하고 ‘토사구팽’에 처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김광수 현 농협금융 회장이 귀에 되새겨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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