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금융정책과 도덕적 해이
포퓰리즘 금융정책과 도덕적 해이
  • 박미연 기자
  • 승인 2018.06.2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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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 횡포 속 "상환 의지·계획 있으면 대출"?…새 서민금융 정책에 우려

은행들이 지난 해 이자로만 벌어들인 돈이 37조 원이 넘는다. 그러나 이렇게 천문학적인 이자 이익을 벌어들인 데는 은행들이 조작에 가까울 만큼 대출금리를 제멋대로 올린 행태도 한몫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모두 신한과 국민, KEB하나와 우리 등 총 9개 시중은행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마디로 모두가 기가 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 담보나 소득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낮은 이자가 적용된다. 하지만 A은행은 대출 고객들의 소득을 축소하거나 아예 없다고 전산을 입력했다. B은행 역시 담보 대출 계약을 진행하면서 대출자들의 담보물 정보를 누락했다. 높은 가산금리를 적용해 더 많은 이자를 받기 위해서다.

일부 은행들이 이처럼 부당한 방법으로 고객들에게 높은 금리를 부과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대출자의 신용등급이 높아지자 기존 우대금리를 축소한 것은 물론이다. 경기상황이 나아지는데도 높은 고정금리를 적용하거나, 전산으로 산정된 금리를 무시하고 자체 최고 금리를 부과한 은행도 있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은행 대출 금리가 합리적으로 산정, 부과될 수 있도록 금리산정 내역서를 의무적으로 제공하게 하는 등 대출금리 모범규준을 개정하기로 했다. 또 고객 정보 입력을 조작해 부당하게 이득을 취한 일부 은행들에 대해서는 자체 조사 후 환급 조치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 모두가 ‘행차뒤 나발’에 불과한 느낌이다. 은행들의 고객사기와 유린 행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금융당국은 항상 ‘늑장대응’에 그친다.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서민금융지원체계 개편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서민금융 정책의 틀을 바꾸려는 것은 시시하는 바가 크다. 이는 최근 불거진 저소득층의 고용 및 소득 악화 때문으로 풀이된다. 2002년 개인 워크아웃을 시작으로 2008년 미소금융 등 여러 서민금융 지원 제도가 도입됐지만 정작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에겐 혜택이 돌아가지 못했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이 때문에 정책금융의 초점을 ‘서민’에서 ‘저소득층(저신용자 및 청년)’으로 바꿔서 여러 제도를 다시 짜는 게 TF의 역할이다. 금융계와 전문가들은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선 대체로 공감하는 편이다. 하지만 저소득층 지원을 위해 금융위가 내건 ‘상환 의지와 계획만 있으면 언제든 지원’이란 계획에 우려를 나타낸다.

상환 의지와 계획을 평가하기 힘들어 도덕적 해이가 확산될 공산이 크다는 비판이다. 일각에선 정부가 ‘6·13 지방선거’ 압승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정부 사업에 따른 ‘퍼주기’가 걱정되는 와중에 상환의지와 계획 만으로 돈을 내준다는 것이 위험천만한 발상이라는 얘기다.

한 은행 관계자는 “무직자가 취업한 뒤 틀림없이 원리금을 상환하겠다고 나서면 상환 의지와 계획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인가”라고 반문한 뒤 “특히 이를 정부가 평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서민금융지원체계 개편안은 신용등급 8~9등급에 집중한 가운데 채무조정 땐 감면율 높이고, 상환 기간은 단축 추진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채무자들의 상환의지를 어떻게 평가할 지를 놓고 ‘밑빠진 독에 물붓기" 가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금융권에서는 대출금리가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산정되도록 모범 규준과 공시 제도를 개정한다고 한다. 당국도 금융회사의 불공정 영업행위로 인한 금융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독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제 정부는 서민금융을 애초에 금융이 아니라 복지로 접근해야 할 사람에게 자금을 공급한 건 아닌지 근본적인 문제점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상환 의지·계획 있으면 대출해 준다는 새 서민금융 정책이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일부 은행들이 부당한 방법으로 높은 대출금리 적용해 일상적으로 잇속을 챙기는데도 당국이 이를 막는 정책을 펴기는 커녕 포퓰리즘에 휘말려 엉뚱한 금융정책을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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