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적 금융'의 백미(白眉)-은행 대출금리 조작 사태
'약탈적 금융'의 백미(白眉)-은행 대출금리 조작 사태
  • 정종석
  • 승인 2018.06.2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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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으로 안 고치면 ‘금융 촛불혁명’ 직면...文 대통령 특별담화라도 발표해야

[정종석 칼럼] 비록 지금은 물러났지만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봄 저축은행 CEO들과의 간담회에서 '약탈적 금융'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약탈적 금융'은 돈을 갚을 능력도 없는 이에게 터무니 없이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줘 파탄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다.

저축은행을 비롯한 제2금융권은 이 정부가 금융을 이렇게 보는 것 아니냐며 부글부글 끓었다. 신용평가모델을 갖고, 신용도에 따라 금리를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걸 두고 '약탈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과도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드러내놓고 항의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은 할 말이 없게 됐다. 국내 시중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산정하면서 고의로 고객의 소득을 줄이거나 담보를 누락해 부당 이익을 가로챈 정황이 밝혀진 탓이다.

금융감독원이 올 상반기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기업·한국씨티·SC제일·부산은행 등 시중 은행들을 대상으로 벌인 ‘대출금리 산정체계’ 검사 결과를 21일 발표했다. 발표 내용에 따르면 일부 은행들이 수년간 가산금리를 재산정하지 않고 고정값을 적용하거나, 시장상황 변경 등 합리적 근거 없이 인상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출금리 산정하며 고의로 고객소득 줄이거나 담보누락해 부당 이익...“은행이 서민 돈을 훔쳐간 꼴” 비난

이야 말로 약탈적 금융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소비자단체들은 일제히 금융감독원 조사에서 드러난 은행의 대출금리 조작은 ‘범죄’라고 비판하면서 전수조사를 통해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나아가 은행의 대출금리 부당 산정이 수천 건 드러난 데 대해 공동소송도 추진할 예정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크게 분노하고 있다. 한 누리꾼은 “한 달 벌어 빚 갚고 조금씩 모으며 알뜰살뜰 살고 있는데 너무 화가 난다”며 “은행이 서민 돈을 훔쳐간 꼴 아니냐”고 비난했다. 다른 누리꾼도 “지난 1년 동안 주담대 원금까지 다 정리해서 신용도가 올랐는데도 가산금리가 오히려 올랐다”며 “고객들이 은행들의 이자놀이를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약탈적 대출'이란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한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월가 점령 시위를 벌이면서 '약탈적 대출'이 금융사의 과도한 탐욕을 비판하는 일반적 용어로 자리잡았다. 이후 국내에서도 금융권의 과도한 채권추심 등을 비판하며 '약탈적 대출'이란 용어가 사용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금융사의 과도하거나 불공정한 '약탈적 대출' 규제를 약속했다.

금융권에선 과도한 대출금리를 부과하는 대부업체 등 일부 2금융권을 제외하고 한국 금융권 전체를 '약탈적 대출'이라고 싸잡아 비판하기는 어렵다고 반박해 왔다. 배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은 "못 갚을 것을 알면서 악의적으로 빚의 수렁에 빠뜨리는 것을 약탈적 대출이라고 볼 때 일부 대부업체를 제외하고 제도권 금융을 약탈적 대출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시각도 비슷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취임사에서 언급한 '약탈적 대출'은 일부 2금융권을 지적한 것"이라며 "은행 대출은 거의 완전경쟁이라고 할 정도로 경쟁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금융당국은 과잉대출의 문제는 있다고 본다. 금감원은 지난해 작성한 내부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약탈적 대출로 보기는 어려우나 과잉대출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 소비자들, 약탈적 금융에 철저히 유린...은행과 금융당국자들, 무릎꿇고 석고대죄(席藁待罪)해야 

그러나 제1금융권 본산인 KEB하나은행 등 유명 시중은행에서 대출금리 조작이 성행한 것으로 드러난 지금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약탈적 금융에 의해서 철저히 유린돼 왔다는 사실에 반박할 수가 없게 됐다. 은행들은 물론 그동안 은행을 감싸왔던 금융당국자들은 국민 앞에서 무릎꿇고 석고대죄(席藁待罪)를 자청해야 할 형국이다.

정작 최종 책임은 금융회사를 감독하고 제재하는 금융당국에 있다는 생각이다. 금융회사들이 소비자들을 상대로 엄청난 약탈행위를 저질렀는데도 금융당국은 뜨듯미지근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금감원은 대출금리의 합리적 산정을 위해 모범규준 및 공시 제도를 개선하고 관리 감독을 강화해나가겠다고 밝혔하지만 수사 의뢰에 대해서는 고의성 입증이 어렵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또한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은행권 감싸기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부정행위가 적발된 은행들의 구체적인 처벌계획도 없이 은행권의 자체 조사 및 환급을 유도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한 누리꾼은 “어느 은행인지 알아야 대응을 할 것 아니냐”며 “은행 실명을 밝히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누리꾼도 “이건 명백한 범죄인데 권고 정도로 끝날 사안이 아닌 것 같다”고 주장했다.

금리조작 사건이 알려진 뒤 각 은행 별로 민원이 폭증하고 있다고 한다. ‘연 3%에서 13%로 금리가 올랐다’, ‘나도 피해자 같은데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등 문의하는 전화가 많다”는 것이다. 은행에서 이전 대출 관련자들과 현재 대출 관련자, 최고경영자(CEO) 책임이 적지 않다. 이제 당국의 엄격한 제재 및 처벌이 필요하다. 금융당국은 물론 감사원과 공정거래위원회, 청와대 등도 나서서 제대로 된 감사를 통해 일벌백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1년간 카드수수료 인하, 법정 최고금리 인하, 실손보험료 인상폭 제한 등 금융정책이 쏟아졌다. 서민을 위한다면서 대부분 '규제'에 방점이 찍혀있다. 이에 따라 보험·카드·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은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문 정부의 잇따른 규제는 '약탈적 금융'을 징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은행에서 약탈적 금융이 사실로 드러난 만큼 앞으로 단속과 징계를 하려면 철저히 해야 한다.

금리 조작은 금융신뢰 근간 흔드는 ‘범죄’행위...반드시 전수 조사, 가담 은행-직원들 일벌백계로 처벌해야

금리 조작은 금융신뢰의 근간을 흔드는 사실상 ‘범죄’행위나 다름이 없다. 금융회사가 벌일 수 있는 약탈적 금융의 각종 사례 가운데 상상하기 힘든 최악의 일이 이번에 들통이 난 것이다. 정부는 반드시 전수 조사해 실상을 철저하고 명백히 가려 가담 은행과 직원을 일벌백계로 처벌해야 한다. 피해소비자에겐 즉각 보상하되 3~10배가량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대출금리 조작 사태와 관련해 시중은행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 후 부당이자 환급,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금융당국마저 이번에 사태를 미온적으로 처리한다면 금융권의 신뢰는 물론 금융당국의 신뢰마저 무너질 것이다. 금융감독기관은 국민들과 금융소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조직이다.

금융감독당국이 소비자를 고려치 않고 은행을 감싸는 행위를 또 다시 반복한다면 흡사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와 같은 국민적 저항과 ‘금융 촛불혁명’에 직면할 지도 모른다. 이번 사태를 미온적으로 처리한다면 금융당국의 공신력은 물론 나아가 현 정부의 신뢰마저 무너질 것이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말이 있다. 비록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은 꼭 고쳐야 한다. 고쳐도 철저히 고쳐야 한다. 대충 어설프게 고치면 새로운 소가 들어오더라도 또 잃게 되는 법이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금리조작 사태에 특별성명이라도 발표해야 한다. 이를 청와대와 대통령에 요구할 정도로 우리나라 금융소비자들의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필자 소개>

정 종 석 (elton2023@hanmail.net )

한국언론학회 회원(언론학박사)

(전)세종대/가천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전) 동아TV 대표이사 사장

(전) 서울신문 베이징특파원/경제과학부장/정치부장/편집부국장/광고마케팅국장

* 저서 : 언론국제화의 마피아들(공저/나남,1995년)

* 논문 : 디지털 다채널 시대 - 채널브랜드 이미지가 광고효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박사학위, 세종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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