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의 '항명'? 즉시연금 4천300억 일괄 지급 요구 거부
삼성생명의 '항명'? 즉시연금 4천300억 일괄 지급 요구 거부
  • 홍윤정 기자
  • 승인 2018.07.26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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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권고에 일부만 지급키로...보험업계, "자살보험금 사태 되풀이하는 것 아니냐" 비상한 관심
                                             현성철 삼성생명 대표이사

마침내 삼성생명의 ‘항명(抗命)’인가. 국내 생명보험업계 랭킹 1위인 삼성생명(대표이사 현성철)이 즉시연금 가입자 5만5천명에게 '미지급금'으로 언급되는 4천300억원을 모두 주라는 금융감독원의 권고를 전격적으로 거부했다.

삼성생명은 대신 즉시연금 미지급금 문제를 법원의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금융당국의 압박이 거센 가운데 대표적인 공룡 보험사인 삼성생명이 사실상 ‘반기(叛旗)’를 든 셈이다.

금융권은 과거 대법원 판결을 방패 삼아 자살보험금 미지급금을 주지 않다가 금융당국의 압박에 지난해 전액 지급했던 자살보험금 사태가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냐며 금융당국과 삼성생명 간의 '한판 승부'식 대결을 비상한 눈초리로 예의주시하고 있다.

삼성생명 이사회,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일괄 지급안 수정 의결...내용상으로는 ‘사실상 부결’

삼성생명은 26일 이사회를 열어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일괄 지급하라는 금융감독원의 권고를 안건으로 올려 이같은 내용으로 수정 의결했다. 내용상으로 보면 ‘사실상 부결’로 판정된다.

삼성생명은 이사회에서 즉시연금 미지급금 가운데 일부만 지급하고 나머지는 법원 소송을 통해 지급 여부를 정하기로 했다. 금감원이 모든 보험사에 최소보장 연금액보다 적은 연금액을 받은 가입자에게 미지급금을 돌려주라고 요구한 이후에 삼성생명이 법적 대응을 공식화한 것이다. 다만 삼성생명은 미지급금 추정되는 4천300억 원 중 즉시연금 가입자 5만5천 명에게 최저보증이율 예시 금액만큼은 지급할 예정이다.

문제가 된 삼성생명 즉시연금의 최저보증이율은 2.5%이다. 납입 원금에서 사업비 등을 뗀 순보험료에 공시이율 예상치와 최저보증이율을 각각 곱해 매월 연금액을 예시했다. 실제 지급액이 최저보증이율을 곱한 예시액보다 적은 경우 차액을 메워주겠다는 의미다.

즉시연금 상속만기형은 목돈을 한 번에 보험료로 내면 보험료 운용수익 일부를 매달 생활연금으로 지급하다 가입자가 사망하거나 만기가 돌아오면 보험료 원금은 돌려주는 상품이다. 보험사는 가입자 사망이나 만기 도래시 보험료 원금을 돌려주기 위해 운용수익 일부는 책임준비금으로 적립해왔다.보험료 원금에서 사업비와 위험보장료를 떼기 때문이다.

한 삼성생명 가입자는 금리 인하로 연금이 줄자 연금액이 상품 가입시 설명 들은 최저보장이율에 못 미친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일부 가입안내서에 책임준비금을 빼지 않은 연금액이 기재된 탓이다. 이 상품의 최저보증이율은 책임준비금을 떼지 않은 운용수익 전체를 의미하는 반면 가입자는 이 가입안내서에 따라 자신이 받는 연금으로 생각한 것이다.

삼성생명 이어 한화생명-교보생명, 중소형 보험사들도 법적 소송 행렬에 가담할 가능성 커져

이후 금감원은 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약관에 ‘책임준비금은 산출방법서에 따라 계산된다’고 돼 있을 뿐 연금액 산정 방법은 명시돼 있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삼성생명이 연금을 과소 지급했다고 판단해 책임준비금으로 뗐던 돈을 계산해 모두 연금으로 지급하라고 지시했다.

삼성생명이 민원이 제기된 1건의 조정을 받아들이자 금감원은 삼성생명의 5만5000여건을 포함해 생명보험사 전체적으로 16만건이 넘는 유사사례에 대해 일괄구제를 지시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촉발된 강모씨의 민원을 예로 들어 "원금 10억원이 아닌 순보험료 9억4천만원에 2.5%를 곱해 12로 나눈 196만원을 기준으로, 실제 연금 지급액이 이보다 적었던 달을 찾아내 차액을 주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처럼 차액 환급이 적용될 가입자 수와 금액에 대해선 "자세히 산정해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번 삼성생명의 결정으로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은 물론 중소형 보험사들도 법적 소송 행렬에 가담할 가능성이 커졌다. 즉시연금 미지급금 규모는 생명보험업계 전체로 16만 명에 8천억 원가량으로 추정된다.

850억 원가량의 미지급금이 있는 한화생명이 내달 10일까지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에 지급 여부에 대한 입장을 전달할 예정이다. KDB생명의 경우 약관에 기준이 명시돼 있고, 이 약관을 토대로 성실히 지급을 해왔다고 소명을 냈으며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금감원도 대응책 마련 착수...윤석헌 원장 "즉시연금 미지급금 일괄구제 해야 한다" 강경 입장

이러한 가운데 교보생명은 오는 27일 정기 이사회를 연다. 교보생명의 미지급금 규모는 700억 원가량으로 추정된다. 이사회에는 즉시연금 관련 안건이 올라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교보생명은 분조위 조정 대상에 오르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삼성생명 이사회가 이날 즉시연금 미지급금 일괄구제안을 부결시킴에 따라 금융감독원이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금감원 관계자는 "삼성생명이 일괄지급을 거부하고 일부 분쟁건에 대해 소송을 진행하기로 함에 따라 분쟁조정위원회도 준비를 시작할 것"이라며 "소비자소송지원제도를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부결 배경 등에 대해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달 '금융감독혁신과제' 발표를 위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브리핑룸으로 입장하고 있다

금감원은 이미 분조위에서 결론을 내린 사안을 삼성생명이 자살보험금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배임 문제를 들며 지급을 거부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자살보험금 논란 당시에도 배임 고발은 전혀 없었었으며, 결국 빅3 생보사 모두 자살보험금을 지급한 사례가 있는 만큼 이번도 자신 있다는 것이다.

윤석헌 원장도 이번 즉시연금 미지급금 논란에 대해서는 일괄구제 해야 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윤 원장은 전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보험사들이 분쟁조정에 동의하지 않고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검사를 하는 등 불이익을 주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이에 대한 1차 피해는 상품을 판매한 보험사에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의무도 없는 일괄구제제도로 생명보험사에 요구하는 것은 직권남용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윤 원장은 "금융소비자와 금융사는 비대칭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규제를 통해 소비자를 보호하고 이를 통해 금융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살보험금 사태처럼 '장기간 법정싸움' 이어질 가능성...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갈 듯

금감원의 강경한 입장에도 삼성생명은 '분조위의 결정에 따라 일괄지급해야 할 근거가 없다'는 법률 조언을 받아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자살보험금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장기간의 법정싸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그렇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자살보험금 미지급 사태 때도 보험사들은 소멸시효가 지나 보험금을 줄 필요가 없는 법원의 판결을 미지급의 정당성으로 내세웠다. 그러다가 금융당국이 중징계를 예고하면서 결국 전액지급으로 돌아섰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일괄구제하면 경영진에 대한 배임 문제가 나올 수 있다"며 "삼성생명 입장에서는 법정 소송을 가더라도 최저보증이율만큼은 일부 지급하는 최대한의 절충안을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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