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정치자금 '편법제공' 황창규 KT 회장, 경찰 수사 안하나, 못하나?
[심층취재] 정치자금 '편법제공' 황창규 KT 회장, 경찰 수사 안하나, 못하나?
  • 이동준 기자
  • 승인 2018.08.1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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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까지 청구했던 경찰, 어정쩡하게 '개점휴업'..."검찰이 신속한 수사 통해 KT 'CEO리스크' 제거해야"
                                                                    ▲황창규 KT 회장

"돈을 주고 받은 사람은 있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검찰은 황창규를 즉각 구속하고, KT 불법자금을 수수한 국회의원 전원을 처벌하라!"

시민단체 약탈경제반대행동과 KT새노조는 지난 달 19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하 서울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 수사는 사실상 실패했다"며 이 같이 외쳤다. 이들은 기자회견 직후 서울지검에 불법 자금을 반환한 국회의원 10여명 등을 제외한 84명의 재수사를 촉구하는 '고발장'을 제출했다.

정치자금법 위반과 업무상 횡령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가 기각됐던 황창규 KT회장에 대한 경찰수사가 사실상 '개점휴업'이다. 황창규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증거를 보강해야 하는데 상대는 국회의원이다. 그렇다고 불법행위를 흐지부지 덮어버릴 수도 없다. 경찰로선 진퇴양난이고 '뜨거운 감자'다. 경찰의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상품권깡’으로 국회의원 후원한 KT]

KT는 2014년 5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법인자금으로 상품권을 사들인 뒤 되팔아 현금화했다. 이른바 '상품권 깡'이다. 이렇게 해서 조성한 비자금은 11억 5,000여만원에 이른다. KT는 이 가운데 4억 4,190만원을 국회의원들의 후원금으로 썼다.

이에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 6월 18일 정치자금법 위반과 업무상 횡령혐의로 황창규 회장 등 7명을 입건하고, 이 가운데 황 회장 등 KT 전·현직 임원 4명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앞서 황 회장은 경찰에 출두,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경찰이 KT 황창규 회장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은 이틀 뒤인 20일 기각됐다. 검찰은 영장을 기각하면서 금품을 전달받은 상대방(정치권)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황창규 회장에게 ‘보고했다’는 임원진과 ‘보고를 받지 못했다’는 황회장의 진술이 확연하게 엇갈리므로 증거를 보강하라며 수사지휘를 내렸다.

[후원금은 과연 누가 받았나]

KT로부터 후원금을 직간접적으로 건네받은 국회의원은 19대와 20대를 합쳐 총 99명(후보자 2명 포함)으로 전체 국회의원의 3분의 1에 달한다. 적지 않은 숫자다. KT로부터 1,000만원 이상 후원금을 받은 의원은 권성동, 유의동, 우상호, 김경진, 조해진, 박홍근, 이학영, 이재영 등 8명이다. 이들 외의 대부분 의원에게는 200만~500만원씩 전달됐다.

당시 후원금은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정무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등 KT와 관련된 사안을 처리하는 상임위원회에 속해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집중됐다. KT가 후원금을 건넨 시기는 신규가입자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요인으로 작용했던 합산규제법,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의 합병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이 있었던 때와 겹친다. 또 정무위원회에서는 KT가 대주주로 있는 K뱅크의 은행법 개정논의를 활발히 하고 있었다.

          ▲경찰이 조사한 KT의 국회의원 후원금 내역 <SBS 뉴스 화면 캡처>

['어정쩡'한 경찰의 속내와 고민]

경찰은 구속영장 기각 이후 황창규 KT 회장과 경영진에 대해 불구속 상태로 보강수사를 벌이고 있다. 증거를 보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여의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표면적으로 “구속영장 기각 사유로 황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측을 조사하라고 요청받은 만큼 이와 관련해 집중해서 살펴보고 있다”고 밝히고 있으나 뚜렷한 움직임은 없다. 금품 수수자들에 대한 소환조사 등 향후 일정을 묻자 구체적으로 밝히기 어렵다며 함구하고 있다.

경찰이 딜레마에 빠진 것은 100명 가까운 국회의원과 보좌관들을 조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관계자는 “국회의원 당사자를 불러야 응하지 않을 것이 뻔하고, 서면으로 질의해봐야 ‘모르는 일’이라고 할 가능성이 높다”며 “보좌관들도 ‘어떻게 통장번호를 알았는지 모르겠다’고 잡아뗀다면 경찰로서는 추가 수사를 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현실적인 장벽 때문에 경찰은 KT에 당시 임원들의 카드 사용 내역을 요구하는 등 본질과 동떨어진 주변 수사만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황창규 KT 회장, 후원금 쪼개기 알았나 몰랐나]

경찰은 황 회장에게 직접 보고했다는 임원진의 진술에 대한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있다.

대그룹 회장실에서 10여년 재직했다는 한 임원은 “일반적으로 매출이 조 단위인 기업들의 경우 본부장급 임원들이 회장에게 보고할 때는 큰 윤곽만 보고하기 마련”이라며 “KT 책임자가 ‘관련 국회의원들을 잘 캐어하겠다’ 정도로 보고하고 나머지 세부적인 내용을 알아서 집행했다면 황 회장은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기업의 비서실 관계자는 “언론보도를 보니 집행 임원들이 후원금 지급 임원들 명단에서 황 회장의 비서실장, 홍보실장 등 측근들을 뺐다고 했는데 이는 황 회장이 구체적인 후원 내역을 보고받지 못했다는 증거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그는 “비서실장은 모든 사항을 회장에게 보고하게 돼 있는데, 후원금 지급 임원들 명단에서 비서실장을 제외시킨 사항이라면 그동안 해당 부문이 관행적으로 했던 것을 회장 몰래 진행한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황창규 회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 사진

[황창규 KT 회장의 '숨겨진' 행보]

KT는 지난 2월 말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수석을 지낸 고위층 인사 2명을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노 대통령 밑에서 사회문화수석을 지낸 이강철씨와 경제수석을 지낸 김대유 원익투자파트너스 부회장이다. 이강철 사외이사는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의 조직특보를 맡았으며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을 거쳐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 등을 역임했다. 김대유 사외이사는 행정고시 18회로 노무현 정부 시절 통계청장과 대통령 비서실 경제정책수석비서관 등을 지냈다. 두 사람을 영입한 것은 KT 경영진과 현 정부 간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얼마 전 주간조선은 IT업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조양일 전 연합뉴스 논설고문이 KT계열사인 스카이라이프 대표직을 제안 받았으나 고사했다”고 보도했다. 조 전 연합뉴스 논설고문은 문재인 대통령과 경남고 동기로 막역한 사이라고 한다. 업계 사정에 밝은 인사는 “올 초 KT 측에서 조양일씨 측에 계열사 대표이사를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황창규 회장 교체론이 나오고 있는데다 정치권에 쪼개기 후원금을 제공한 혐의로 황 회장이 경찰 조사를 받는 상황을 감안해 조씨가 거절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청와대에서는 황창규 회장이 문 대통령 친구를 계열사 사장에 임명함으로써 일종의 ‘보험’을 들려 한 게 아니냐면서 불쾌해했다고 한다. 주간조선 보도를 좀 더 인용하면 조씨는 KT 측에서 자리를 제안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황창규 회장이 자신의 이러한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 쪽 인사들과 부지런히 선을 닿는 노력을 해왔을 개연성을 부인할 수 없다. 황창규 회장도 부산출신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경남고와 쌍벽을 이루는 부산고를 나왔다. 두 사람은 1953년생으로 나이는 똑같지만 문 대통령이 1월 생이어서 고등학교를 1년 먼저 졸업했다. 하지만 경남고와 부산고 선후배 인맥을 동원하면 황회장은 어렵지 않게 청와대와 인맥을 형성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KT새노조, "검찰은 황창규 회장 즉각 구속하라"]

KT 새노조와 시민단체 약탈경제반대행동은 지난 달 19일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은 황창규 회장을 즉각 구속하고, 불법 자금을 수수한 국회의원 전원을 수사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KT 새노조 관계자는 “황창규 회장이 다수의 국회의원에게 후원금을 건넨 것은 규모로 봤을 때 처음 있는 일로 보인다”면서 “검찰의 수사가 철저하게 이뤄져 황창규 회장을 구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법인단체의 정치자금 기부는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개인이 기부할 경우 300만원을 넘어야 외부에 공개된다. 경찰은 이 부문을 주목하고 있다. KT가 이런 허점을 노려 ‘쪼개기 후원’을 해온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받은 사람에 대한 수사가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상대가 국회의원이다. 그것도 1~2명이 아니라 100명 가까이 된다. 더구나 우원식 의원은 전 민주당 원내대표, 우상호 의원은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도전했을 정도로 여권내 입지가 강하다. 특히 우상호(1,300만원) 의원은 1000만원 이상을 받은 8명 중 1명이다. 우상호 의원은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고교 동문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를 출범시켜 이른바 ‘3철’로 불리는 전해철 의원도 들어있다. 김영주 노동부장관, 박지원 의원의 이름도 보인다.

 ▲황창규 KT 회장이 지난 4월 정치자금법 위반 피의자 신분으로 서대문 미근동의 경찰청사에 출석하고 있다.

[업계 "검찰이 신속한 수사 통해 KT의 'CEO리스크' 제거해야"]

경찰로서는 그러나 이 사건을 그대로 덮어둘 수도 없다. 대기업이 임직원 명의로 의원들에게 후원금을 지원한 것은 관행이지만 틈새를 노린 쪼개기는 신종수법이자 명백한 불법행위인 탓이다.
 
후원금을 받은 의원 99명 중 18명은 반납했다. 7명은 전액을, 나머지는 일부 반환했다. 전액 반환한 의원은 문미옥(사퇴) 현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300만 원), 신경민 의원(300만 원), 윤종오(상실) 전 의원(300만 원), 전해철 의원(500만 원), 지상욱 의원(500만 원), 최명길(상실) 전 의원(200만 원), 최운열 의원(500만 원) 등이다. 이 가운데 신 의원은 10만 원 단위로 들어온 후원금까지 모두 돌려보냈다.

일부 반환한 의원은 김광림 의원(900만 원 중 500만 원),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500만 원 중 290만 원), 김용태 의원(500만 원 중 400만 원), 김종석 의원(500만 원 중 200만 원), 김한표 의원(400만 원 중 300만 원), 박민식 의원(700만 원 중 200만 원), 박지원 의원(500만 원 중 200만 원), 박홍근 의원(1,100만 원 중 100만 원), 유의동 의원(1,400만 원 중 200만 원), 이채익 의원(900만 원 중 800만 원), 조해진 의원(1,500만 원 중 200만 원) 등이다.

업계에서는 "황창규 회장의 정치자금 공여 의혹 사건이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수사를 통해 죄의 경중을 가려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을 요구하는 촛불정신으로 탄생한 정부이다. 흐지부지 덮어선 안 된다는 여론이 많다. 그러려면 이제 검찰이 나서는 방법 밖에는 사실상 없는 셈이다. 경찰로선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검찰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직접 수사에 나서 깔끔히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찰은 그동안 수사해온 자료를 검찰에 넘기고 검찰수사에 협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정보통신기업인 KT수장인 황창규 회장은 경찰수사로 경영상 운신의 폭이 좁을 수 밖에 없다"면서 "그러나 KT는 5G투자 등 굵직 굵직한 현안이 산적해 있는 만큼 이제 검찰이 나서서 신속한 수사를 통해 KT를 둘러싼 'CEO리스크'를 제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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