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과 비참함
화려함과 비참함
  • 유지나
  • 승인 2019.03.19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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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나 칼럼] 연일 충격적인 뉴스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과 아레나에서 벌어진 정황이 그렇다. 답답하고 지루한 일상의 반복, 미세먼지까지 더해지는 스트레스. 그런 일상적 스트레스를 풀고픈 욕망의 에너지로 화려하게 불타오르는 유흥문화가 어느 한구석에 존재하고 있다. 그런 유흥 놀이판에선 “남자는 돈, 여자는 외모”란 간단명료한 등급이 매겨진다. 그런 성별 등급 평가 이전에 입장 가능 신분으로 나이 등급은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하룻밤에 억대 돈을 뿌릴 정도의 재력남이라면 VIP 네트워크로 통하기에 이 놀이판에선 만사형통이다.

돈과 빽이 어른거리는 카르텔과 사건들

그들만의 여러 단톡방에서 드러나듯이 저마다의 욕망과 목표는 달라도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며 유지되는 이런 카르텔은 비호세력을 보호막으로 두르고 있다. 이 화려한 세상은 인권과 법을 유린해도 관행으로 여기며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보호해 온 역사를 갖고 있다. 이런 세계에서는 탈법, 불법적 행위를 해도 권력이 유지되는 스릴감 넘치는 영화세상의 현실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카르텔의 눈부신 조명과 보호막이 깨지고 여성은 물론 돈 없는 남성 모두 평등하게 대하는 법 집행이 이루어지면 추잡한 민낯과 위선이 드러난다. 화려함과 비참함의 공존이다.

강간과 폭력, 물뽕이라 불리는 마약과 탈세 등등…. 현재 진행 중인 수사로 드러나는 유흥클럽 게이트 사건은 부조리한 세상을 목격하며 분노하는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특히 승리, 정준영, 최종훈 등 유명 연예인들이 주범으로 등장해 인간 이중성의 비참한 풍경이 펼쳐지는 중이다. 그들만의 대화에서 드러나듯이 그들은 범죄인 줄 알면서도 여성을 일회용 물건으로 취급하며 지위를 누린 셈이다. 클럽 이름 ‘버닝썬’답게 타오르는 태양처럼 화려하게 불타오르던 그들은 그간 경험해온 권력의 보호막을 믿었던 것 같다. 이런 요지경을 중계하는 온갖 기사들이 조회 수에서 폭발적 상승세를 기록 중이다.

상황이 이렇게 급진전되다 보니 또 다른 우려가 동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과거사위원회의 핵심사안인 고(故) 장자연 씨 사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얽힌 성폭력 사건이 유야무야 덮혀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이 그것이다. 수차례 과거사 조사기간 연장을 했지만 이번 3월말이 마감이라 더욱 그렇고, 심지어 피로감까지 있다는 불평도 들린다. 고 장자연 사건의 경우 성접대 현장 목격자 윤지오씨가 참고인으로 출석해 새로운 추가 증언으로 정관계, 언론 권력에 대한 조사가 더욱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학의 사건 피해자도 두려움을 용기로 변화시켜 증언하고 있다. 그 현장인 성폭력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이 지난 3월 15일 오전 10시 30분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시작됐고, 나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여성의 전화 및 1,033개 단체가 발표했듯이 그들만의 세상에선 놀이란 명목의 비즈니스 접대가 태양 아래 나오면 성폭력이자 불법 음란촬영물 유포 등 진상규명에 따른 심각한 중대 범죄 행위들이다.

이들 권력망의 민낯을 제대로 조사하면 여성과 남성, 진보와 보수의 경계를 넘어 일련의 사건들은 성폭력 권력의 카르텔이란 하나의 맥락으로 통한다. 아시다시피 #미투 운동은 2017년 와인스타인이라는 할리우드 제작자가 오랫동안 보호막에서 누려온 성폭력 관행을 여성 연예인들이 고발한 데서 비롯됐다. 보호막의 그늘 아래서 화려하게 누려온 남성 제작자들이 여배우들을 거느리고 과시하는 영화사의 전통은 아파도 인정해야만(나 같은 전공자에겐 더욱) 하는 진실이다. 그래서 고다르 감독이 〈영화사(들)〉이란 다큐연작에서 “영화산업은 여자와 총”이라고 수차례 언급하며 그걸 입증하는 자료 화면을 영화사적 전통으로 제시한 바 있다.

돈 없고 빽 없으면 죽어야 하나

이제 스마트폰을 손안에 쥐고 자신이 당한 부당함을 고발하는 여성들, 그리고 그 여성을 도우려다 오히려 폭행을 당한 정의로운 남성 시민 제보자도 존재하는 코스모폴리탄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특권층 내부 비리를 폭로해 흥행에 성공한 범죄 스릴러 〈내부자들〉(2015, 우민호)에서 “돈 없고 빽 없으면 나가 뒈지세요. 참 좋은 나라야, 대한민국”이라고 했던 우장훈 검사(조승우)의 존재는 단순한 패러디가 아니다. 현실의 자양분을 먹고 사는 영화세상이기에 더 이상 그런 권력의 카르텔이 작동하지 않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현실이다. 마침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혐오·차별 대응을 위한 대국민 정책선언을 준비한다는 최영애 위원장 인터뷰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고 장자연 사건 이후 지난 10년도 넘게 여성 인권단체가 해왔던 여성연예인 인권보호 법제화 방안이 무산된 현시점에서 인권위의 정책선언이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실행안으로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며 봄바람을 맞는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다산칼럼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글쓴이 / 유지나
· 이화여대 불문과
· 파리 제7대학 기호학전공. 문학박사
· 영화평론가.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 세계문화다양성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학술훈장 수상
·〈2005 동국대 명강의상〉수상

· 저서
〈유지나의 여성영화산책〉등
· 2008년부터 ‘유지나의 씨네컨서트’, ‘유지나의 씨네토크’를 영화, 음악, 시가
어우러진 퓨전컨서트 형태로 창작하여 다양한 무대에서 펼쳐 보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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