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 은행에는 있는 데, 한국 은행에는 없는 것
유대 은행에는 있는 데, 한국 은행에는 없는 것
  • 권의종
  • 승인 2019.05.0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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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입식창구 도입, 돈 몇 푼 아끼려다 고객서비스 망쳐...'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음

[권의종의 유대인소비학] 유대인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는 금융의 원조다. 11세기 이탈리아 시장에는 원거리 무역상들을 상대로 환전을 해주는 상인들, 즉 뱅커(banka)들이 있었다. 유대인들이었다. 환전서비스를 하려면 수많은 주화의 가치를 평가하고 환율을 산출해 내는 데 상당한 경험과 전문성이 필요했다. 이런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집단은 원근 각지의 커뮤니티와 유대관계를 맺어온 유대인밖에 없었다.

유대인 환전상들은 시장 거리 한 구석에서 긴 의자(banco) 하나를 놓고 영업을 했다. 오늘날 은행업의 효시다. 뱅크(bank)의 어원이 이탈리아어 방코(banco)에서 유래되었다. 긴 의자(banco → banca → bench)가 뱅크(bank)가 된 것이다. 중세 뱅커들은 환전업무만 수행한 게 아니다. 어음업무나 예금업무를 함께 취급했다. 예금자들은 사용이 불편하고 소지가 위험한 돈을 뱅커에게 맡기고 대신 증서를 교부받아 사용했다.

이따금 문제가 발생했다. 예금증서를 갖고 가도 뱅커에게 돈이 없어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곤 했다. 예금주들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화가 난 나머지 뱅커의 영업장소로 들이닥쳐 환전대로 사용되던 긴 의자를 부숴버렸다. 이래서 파산(bankruptcy)이라는 말의 어원이 부서진 의자(bankarotta)에서 나왔다.

뱅크가 동양에서 ‘은행’으로 번역된 데도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중국의 상인 길드인 ‘행(行)’이 원거리 무역의 결제수단으로 ‘은(銀)’을 사용했다. 이 행이 금융업의 주체가 되면서 은행(銀行)이라는 말이 탄생하게 되었다. 어쨌든 은행업은 의자에서 출발했고 의자는 은행의 소중한 영업 밑천이 되었던 셈이다.

은행(bank)은 ‘긴 의자(banco)’, 파산(bankruptcy)은 ‘부서진 의자(bankarotta)서 유래

이 같은 역사적 배경을 지닌 의자가 근자에 이르러 우리나라 은행들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비용 몇 푼 아껴보겠다고 은행들마다 앞 다퉈 일반 창구에서 의자를 치우고 있다. 인터넷 뱅킹과 모바일뱅킹이 보편화되면서 은행 객장을 찾는 주 고객층인 중장년 노인들이 힘겹게 서서 일을 보고 있다. 보다 빠른 업무 처리를 위해 ‘입식창구’ 제도를 도입했다는 게 은행 측의 설명이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다. 속보이는 빤한 거짓말이다.

정 그럴 수밖에 없었다면 고객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게 제대로 된 순서였다. 수익성을 따지다보니 고객 의자를 입출금과 송금 같은 일반 창구에서 부득불 없앨 수밖에 없었노라고 사실대로 말했어야 했다. 고객 불편이 불가피했다면 정직하기라도 했어야 했다. 결국 신뢰성과 도덕성을 모두 잃고 말았다. 금융소비자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마저 망각한 치졸한 처사였다.

입식창구 도입으로 실제로 비용이 얼마나 절감됐는지 은행들이 밝히지 않으니 알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작은 것에 눈이 어두워 그보다 훨씬 큰 것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은행의 핵심 경쟁력인 고객서비스를 망가뜨리는 치명적 자해행위로 작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뿔을 바로잡으려다가 소를 죽이는 어리석음이 될 수 있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경제칼럼니스트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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