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에 생각나는 일
스승의 날에 생각나는 일
  • 박석무
  • 승인 2019.05.24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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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 칼럼] 5월은 참 좋은 계절입니다. 잎이 진 삭막한 산야에 신록이 우거지고, 못다 진 봄꽃들이 울긋불긋 피어나는 때가 바로 5월입니다. 아카시아꽃이 밤꽃과 함께 짙은 향기를 내뱉으며 우리 모두를 유혹하는 때도 5월입니다.

더구나 5월에는 어린이날도 있지만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있어 즐겁고 기쁨을 함께 주는 달이기도 하지만 잔인한 5·18이 있는 달입니다. 근래에는 이상기온으로 낮 기온이 너무 높아 봄 같지 않지만 그래도 5월은 봄이 한창인 신록의 계절입니다.

어쨌든 중·고등학교에서 수업을 했던 교사 시절도 있었고, 대학에서 오래도록 강의도 했기 때문에 행여나 나도 스승이 아닌가 착각하면서 스승의 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다산은 그가 편찬했던 탁월한 속담집 『이담속찬(耳談續纂)』이라는 책에서 “경전의 스승이야 쉽게 만날 수 있으나, 인간의 스승이야 만나기가 어렵다(經師易得 人師難得)”라는 속담을 넣었습니다.

간단한 이야기 같지만 음미해보면 참 깊은 뜻이 담긴 내용입니다. 조선시대에야 사서육경(四書六經)을 달달 외우고 또 그 깊은 뜻을 이해하며 제자백가(諸子百家)나 온갖 사서(史書)까지 모두 가르치는 경전의 스승이 어디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다운 인간을 길러내는 스승을 구하기는 참으로 더 어렵다는 뜻입니다.

하물며 요즘 전공과목 하나만 달달 외워 가르치는 스승이야 어디서나 만날 수 있지만, 높은 인격과 훌륭한 품성으로 인간을 변화시켜 줄 스승은 구하기 어렵다고 여기면 쉽게 이해되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불행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알량한 지식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스승이야 많지만, 사람을 가르쳐 준 스승이 많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다산은 이런 문제에도 여러 이야기를 했습니다. “불교에는 교법(敎法)과 선법(禪法)이 있기 때문에 경전의 스승들은 만년에 모두 좌선을 통해 연구하는 수가 있습니다.

나도 좌선공부나 하고 싶은데 좌선이 경전공부보다 어려우니 감당할 수가 있을지 걱정입니다. 주자(朱子)는 경사(經師)였고 육상산(陸象山)은 선사(禪師)였습니다. 경사는 우(禹)나 직(稷)에 가깝고 선사는 안회(顔回)나 양주(楊朱)에 가까운 분이라고 하겠습니다.”(答仲氏)

이렇게 보면 아무나 스승일 수가 없습니다. 안회처럼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철저한 견인주의자가 선사라고 했으니 경전을 통해 진리를 찾는 경사보다는 견인주의적 인내와 고뇌를 통해 도를 얻는 선사가 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진짜 경전에 밝은 학자도 참 스승일 수 있지만 선사에 오른 참다운 수양공부가 된 스승이 더 진짜 스승일 수 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나 대학 시절에는 참 높은 인격의 스승들을 몇 분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저 같은 사람이야 거론할 필요도 없지만 참다운 인사(人師)나 선사(禪師)가 없는데 스승의 날이라고 정해 놓기만 해서야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람을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 이제부터라도 다산이 요구했던 인사(人師)가 될 수 있도록 좌선에라도 빠져보면 어떨까요.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다산칼럼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필자소개

박석무

· (사)다산연구소 이사장

· 실학박물관 석좌교수

· 전 성균관대 석좌교수

· 고산서원 원장

저서

『다산 정약용 평전』, 민음사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역주), 창비

『다산 산문선』(역주), 창비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한길사

『조선의 의인들』, 한길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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