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 '직장 괴롭힘' 호응 높네..."설명 들어도 알쏭달쏭"
[가이드] '직장 괴롭힘' 호응 높네..."설명 들어도 알쏭달쏭"
  • 윤석현 기자
  • 승인 2019.07.1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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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성과급, 술한잔 쏴라" "왜 톡 씹냐" 등 사례 소개... 접수전담 근로감독관 167명 편성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첫날인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직장갑질 119가 설치한 ‘금지되는 직장내 괴롭힘 유형과 사례’ 안내판 앞을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첫날인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직장갑질 119가 설치한 ‘금지되는 직장내 괴롭힘 유형과 사례’ 안내판 앞을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이코노미뉴스 윤석현기자]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 첫날부터 9건의 신고가 접수되는 등 직장인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일선 현장에서 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전국 지방노동관서에 167명의 전담 근로감독관을 편성했다.

새로운 법이 시행되면서 직장인들 사이에 ‘이것도 괴롭힘에 해당되냐’는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오래된 위계문화와, 직장생활을 하며 익숙해진 관행을 법으로 규제한다니 뭐가 되고 뭐가 안 되는지 혼란스러운 건 제도 도입기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고용부는 시행 이틀째인 17일 직장 내 괴롭힘의 판단 기준을 몇개 사례를 통해 설명했다. 고용부는 우선 두가지 사례를 소개했다.

어린 시절 외국에서 자라 영어를 잘하는 직장인 A씨는 회사 선배들로부터 영어를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선배들은 A씨에게 이 사실을 비밀로 하라고 지시했다. A씨는 업무 시간에 남몰래 회의실에서 선배 몇 명을 앉혀 놓고 영어를 가르쳤다.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선배들의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A씨의 부담은 점점 커졌다. 400쪽이 넘는 영어 교재를 스캔하기도 했다. 남들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는 게 다반사가 됐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B씨는 거래팀에서 보조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어느 날 팀장이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내일 거래처와 계약을 체결하게 됐다"며 계약 서류 작성을 B씨에게 지시했다. B씨의 업무가 아닌데도 계약 담당자가 연차휴가 중인 탓에 생소한 일을 떠맡게 된 것이다. 정시 퇴근을 하고 가족과 외식을 할 계획이었던 B씨는 졸지에 야근을 하게 돼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노동부에 따르면 A씨의 사례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만, B씨는 해당하지 않는다.

두 사람 다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 등에 정해진 업무가 아닌 일을 떠맡았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그러나 노동부는 A씨의 영어 교육은 업무상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렵지만, B씨의 계약 서류 작성은 정황으로 미뤄 '업무상 적정 범위' 안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사적인 지시를 하거나 사생활에 관해 묻는 것도 원칙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지만, 상황에 따라 다르다.

시행 첫날부터 9건 접수...선배가 "업무시간에 영어 가르쳐줘" 지시했다면 '직장 갑질'

직장인 C씨는 회사 선배로부터 술자리를 만들라는 반복적인 요구에 시달렸다. 선배는 "아직 날짜를 못 잡았냐", "사유서를 써라", "성과급의 30%는 선배 접대용이다" 등의 말로 C씨를 압박했고 실제로 술자리를 만들라는 지시 이행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시말서를 쓰게 했다.

D씨는 직장 동료들과 점심식사를 하던 중 "최근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털어놨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상사는 D씨와 마주치자 "애인 생겼냐", "뭐하는 사람이냐" 등 연애에 관해 물었다.

C씨의 사례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은 사적 용무 지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D씨의 사례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기 어렵다. 상사가 성적인 언동으로 볼 만한 짓궂은 질문을 한 것도 아닌 만큼, 직장 생활 중 발생하는 통상적인 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근무시간 외에 회사 밖에서 일어난 일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다.

E씨의 상사는 일과가 끝난 밤중에 술에 취해 팀원들이 쓰는 모바일 메신저에 자기 사정을 하소연하는 글을 올리곤 했다. 팀원들이 답을 안 하면 그는 "왜 답을 안 하느냐"는 문자를 올리며 다그쳤다.

F씨는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우연히 회사 동료를 만났다. 서로 동창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두 사람은 옛날얘기를 하다가 말다툼을 하게 됐다. E씨의 사례는 퇴근 이후 온라인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만 F씨는 순전히 개인적인 갈등이기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고 해도 직장 내 괴롭힘은 아니다.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는 반드시 상급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동등한 직급이라고 하더라도 여러 측면의 사회적 관계의 우위를 이용했다면 직장 내 괴롭힘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학교 출신이 다수인 회사에서 다른 학교 출신인 사람을 따돌린다면 사회적 관계의 우위를 이용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하급자도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업무 능력을 널리 인정받는 하급자가 사내 평가의 우위를 이용해 상급자의 지시를 사사건건 무시한다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노동부는 "(하급자가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로 인정되려면) 상대방이 저항하기 어려울 개연성이 큰 수준의 '관계의 우위'가 인정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개정법상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접수하고 대응 조치를 해야 할 사람은 사용자다. 이에 따라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일 경우 해결 방법이 없는 게 아니는 지적이 나온다.

진정을 접수한 지방노동관서는 사업장의 법 위반 여부 등이 확인되면 일정 기간을 두고 '개선 지도'를 하게 된다. 사업장이 개선 지도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근로감독 대상이 될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는 사내 사건 처리 결과가 불합리하다고 판단돼도 지방노동관서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다. 가해자도 사업주의 징계 조치 등에 불만이 있으면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하면 된다.

취업규칙 반영안한 사업장에 25일간 시정기간 …전문가 참여 위원회도 구성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 첫날 모두 9건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접수됐다.

최태호 근로기준정책과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한 브리핑에서 "시행 첫날인 16일 지방노동관서로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총 9건이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MBC 아나운서들의 진정 외에 한국석유공사 직원들의 진정도 포함됐다. 개정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지만, 이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 다만, 상시 노동자 10인 이상 사업장이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과 징계 등의 내용을 기재하도록 의무화했다.

최 과장은 "신고 사건에 대해서는 해당 사업장이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예방·대응 체계를 취업규칙에 담고 있는지 확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동부는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관련 내용을 반영하지 않은 사업장에 대해서는 최장 25일의 시정기간을 주기로 했다. 시정기간에도 취업규칙 제·개정을 하지 않으면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와 관련해 산업 현장에서 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전국 지방노동관서에 167명의 직장 내 괴롭힘 전담 근로감독관을 편성했다. 또 지방관서별로 전문가가 참여하는 '직장 내 괴롭힘 판단 전문위원회'를 구성해 직장 내 괴롭힘 여부가 모호한 사건을 다루도록 했다.

이 밖에도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전문적인 상담과 교육 지원을 위해 민간 상담센터와 연계한 시범사업을 하반기에 진행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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