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무역 갈등 해법과 유대인 요하난 벤 자카이의 지혜
한일 무역 갈등 해법과 유대인 요하난 벤 자카이의 지혜
  • 권의종
  • 승인 2019.07.2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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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수출 규제, 양국이 외교적 노력으로 풀어야...협상, WTO 제소, 중재 등 수단과 방법 총동원할 때

[권의종 칼럼] 요하난 벤 자카이(Johanan ben Zakkai)는 유대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다. 유대교를 지키고 유대주의를 발전시킨 위대한 학자로 손꼽힌다. 68년 1차 유대-로마 전쟁이 시작되고 3년째 되던 해 로마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은 유대 왕국을 점령했다. 하지만 유대인의 완강한 저항으로 예루살렘은 함락시킬 수 없었다. 도성을 포위하고 주민들이 굶주려 항복하기만을 기다렸다.

요하난 벤 자카이는 강경파 열심당의 무장투쟁이 성공치 못할 것을 예감했다. 결국 전쟁이 대학살로 끝나고 유대인이 뿔뿔이 흩어질 것을 걱정했다. 민족의 독립보다 유대인의 보존이 우선이라는 판단을 내려야 했다. 유대 민족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는 것만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로마군 사령관과 모종의 타협을 피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포위된 예루살렘은 아비규환이었다. 기아와 질병으로 수천 명씩 사망하는 데도 아무도 예루살렘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요하난 벤 자카이는 제자들과 예루살렘 탈출 계획을 세웠다. 흑사병에 걸린 척 위장한 그는 열심당원의 눈길을 피해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의 막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장군을 만난 그는 머지않아 장군이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될 것을 예언했다. 황제가 되면 자신들이 유대 경전을 학습할 작은 학교를 예루살렘 근교에 허락해 줄 것을 간청했다. 예언이 성취되면 그러겠노라고 장군은 약조했다.

예언은 적중했다. 69년 로마 원로원이 베스파시아누스를 황제로 추대했다. 황제는 예언이 성취된 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개 유대교 랍비가 로마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꿰뚫어본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약속한 대로 예루살렘 근교 도시에 유대학교 ‘예시바’가 세워졌다. 유대 문화유산이 소멸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요란한 말보다 조용한 실천이 거둔 위대한 승리였다.

한국경제 고사시키려는 일본 의도, 예루살렘이 굻어죽기를 기다린 로마 본색과 하등 다를 바 없어

2천 년 전 일을 뜬금없이 거론한 것은 작금의 수상(愁傷)한 시국 때문이다. 한일 간 무역 갈등은 유대인의 로마 항쟁과 족히 비견할 만하다. 무역 갈등이 아니라 경제 전쟁으로 표현하는 게 온당할 정도다. 사태가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다. 반도체 핵심 소재 등의 에 수출 규제로 한국 경제를 고사시키려는 일본의 의도다. 예루살렘이 굻어죽기를 고대하던 1세기 로마 제국의 본색과 하등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가시적 해결책이 안 보이는 게 답답하다. 도처에서 말들만 무성한 게 더 안타깝다. 백가쟁명을 방불케 하는 말의 홍수를 이루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말 속에는 가시가 돋쳐 있다. “한국 측이 제대로 답을 가져오지 않으면 건설적인 논의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협박처럼 들린다. 이참에 본때를 보여줄 기세다. 대한민국이라고 만만할 리 없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제대로 된 답변을 안 했다는 이야기냐”며 청와대가 대변인 브리핑으로 즉각 되받아쳤다. 일촉즉발의 대치 국면이다.

민정수석의 SNS 행보도 도마에 올랐다. 9일 동안 40여 건의 글을 쏟아냈다. 강제징용 관련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는 사람은 마땅히 ‘친일파’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경제 전쟁이 발발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애국이냐 이적이냐’라는 이분법까지 내세웠다. 일본 제품 불매 움직임도 거세다. '일제 불매는 제2의 항일 독립운동'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우리 사법부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일본 정부가 불만을 토로하는 건 내정 간섭”이라는 분노가 쏟아지고 있다.

‘친일’, ‘반일’의 편 가름이나 소모적 말싸움 멈춰야...사태 해결은 커녕 해법 모색에 방해만 될 뿐

국제사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그동안 신중 모드를 취해온 미국 등에서 업계와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글로벌 경제에 미칠 부작용을 들어 일본에 대해 규제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는 최근 '일본, 한국에서 물러서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화웨이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연구원 칼럼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다들 일리 있는 주장이다. 한일 간 무역 갈등으로 경제가 위태로운 때 각자가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국민의 마땅한 도리다. 3·1 혁명 100년을 맞는 올해 일본의 경거망동을 선열의 정신과 뜻으로 매섭게 꾸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다만, 말이 너무 많아지고 지나치게 앞서다 보면 궁지에 몰릴까 그게 걱정이다. 일찍이 노자는 다언삭궁(多言數窮)이라는 말로 이를 엄히 경고했다.

말을 많이 한다고 설득이 쉬워지는 게 아니다. 생각과 의도를 환히 드러내다 보면 꼬투리가 잡히기 십상이다. 되레 말을 아끼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지도자가 말을 많이 하게 되면 자칫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영향력이 지대한 고위층일수록 민감한 사안에 대해 의견 피력을 삼가는 게 좋다. 사적 발언이 공식 입장으로 곡해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는 한일 양국이 외교적 노력으로 풀어나가는 게 최선의 해법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렇게 할 것임을 천명했다. 기업인을 앞세우거나 다른 나라의 힘을 빌려 가볍게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협상이건, WTO 제소건, 중재이건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다. 친일’, ‘반일’의 편 가름이나 소모적 말싸움으로 외교를 어렵게 해서는 안 된다. 사태 해결은 커녕 해법 모색에 방해만 될 뿐이다. 요하난 벤 자카이 식(式) 해법이 새삼 간절해지는 이유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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