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먹고 매 맞아도 까발려야 기자다
욕먹고 매 맞아도 까발려야 기자다
  • 김명서
  • 승인 2019.07.29 11:23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와대 특정언론 공개비판은 언론 자유 침해...독립적 가치 판단과 기준 공격

[김명서 칼럼] 원래 기자들이 하는 일이라는 게 이렇다. 눈 한번 질끈 감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도 미주알고주알 까발리다가 욕을 먹는다. 감시자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수록 더 많은 욕을 먹는다. 맞을 줄 뻔히 알면서도 모난 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기자 팔자요, 언론의 숙명이다.

그러면 기자는 왜 욕먹기를 각오하고 물불 안 가리며 달려들까. 신문윤리강령 제1조에 명기된 대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도와 비판의 기준은 기자에 따라, 언론사별로 차이가 난다. 가치의 지향점이 제각각이고, 그에 따른 판단의 잣대 역시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그 결과물은 보호 받아야 한다. 그 자체가 국민의 알 권리 실현을 위한 최고의 권리인 ‘언론의 자유’이고 ‘언론의 독립’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청와대 고위 인사들이 얼마 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명백히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한 것이다. 독립적 가치 판단과 기준을 정면으로 공격했기 때문이다. 비판의 내용도 시비의 소지가 있지만, 그 방법이나 결과를 놓고 보면 심각한 간섭이고 압박이었다.

비판의 대상은 일본의 경제보복 전후, 정부의 정책과 대응 태세를 문제 삼은 기사와 칼럼의 일본어판 제목이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조선일보의 일본어판 제목 4건, 중앙일보 3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무엇이 한국과 우리 국민을 위한 일인지 답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이보다 하루 앞서 조국 당시 민정수석도 페이스북을 통해 같은 제목을 문제 삼으며 “이런 매국적 제목을 뽑은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거세게 비난했다. 제목 자체를 ‘매국’으로 규정한 것이다.

문제의 제목 7건 가운데 조선일보의 7월4일 일본어판 제목 ‘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에 투자를 기대하나’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여길 만했다. 한글판 원제목은 ‘일본의 한국 투자 1년 새 마이너스 40%, 요즘 한국기업과 접촉도 꺼려’였는데 이렇게 험악한 말투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그 경위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잘못은 얼추 시인하는 것 같다.

청와대 지적한 일본어 제목 대부분 무엇이 잘못인지 불분명해

하지만 조선일보의 나머지 제목 3건, 중앙일보의 제목 3건은 본래 제목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어느 대목이 공개적으로 비판을 받을 만큼 중요한 잘못을 저질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따라서 청와대의 공개 비판은 두 신문의 일본어판 제목보다는 정부가 아파하는 일본 관련 기사와 칼럼까지 일본 포탈에 올린 데 대한 항의와 경고로 추론해도 될 법하다.

고 대변인은 문제의 기사와 칼럼이 국익에 어긋난다는 취지로 두 신문을 비판했다. 그러나 국익 여부를 판단할 권한은 언론에게도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기자와 언론사는 취재와 기사작성 등 일련의 보도행위를 공익과 국익에 부합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공익, 국익에 대한 판단은 ‘언론의 자유’ 영역이다. 기자들은 일단 옳다고 판단하면 욕을 먹더라도, 매를 맞더라도 기사화한다.

이러한 상황은 과거 같았으면 언론계 전체가 들고 일어설 비분강개 대상이다.

공동의 방어진을 치고 권력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등 여론전을 펼치며 강력히 반발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동대응은커녕 당사자인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조차 확전을 피하려는 듯 조심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언론단체들의 침묵도 이례적이다. 신문협회, 신문방송편집인협회, 기자협회 등은 겉치레용으로라도 발표했을 법한 항의 성명조차 내놓지 않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오히려 조선일보의 제목 바꾸기를 비난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청와대에 대해서는 “대변인이 언론보도에 대해 논평을 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언급하는 것으로 끝냈다.

짐작은 된다. 법보다 무섭다는 ‘국민정서’ 때문으로 여겨진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따른 반일 감정은 이제 대세처럼 자리를 잡았다. 여기에 자칫 잘못 토를 달다가는 그야말로 ‘친일’ ‘반일’ 프레임에 말려들어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다. '닥공(닥치고 공격)'으로 일관하는 청와대의 기세도 의식했을 것이다.

언론, 대중정서와 시류에 영합해 제 목소리 못내는 것 경계해야

여기에는 조국 전 수석의 ‘선빵’이 제대로 먹힌 측면도 있다. 일본이 우리 수출산업의 급소인 반도체의 핵심소재를 정밀 공격했듯이, 조 전 수석은 반일 감정이라는 필살기를 사용해 조선과 중앙에 강력한 선제공격을 날렸다. 공격을 받은 쪽은 허둥대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주변에서는 외면 또는 침묵하는 가운데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본인의 주장을 다연발탄처럼 쏴댔다.

판세는 원사이드 게임처럼 펼쳐지고 있다. 그의 목소리는 민정수석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한 언론의 제어장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듯하다.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도 바로 선다는 것은 불변의 원칙이다. 언론이 권력에 아첨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대중의 정서에 영합하고, 시류에 영합하여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다양한 지적과 비판이 존재해야 사회는 건강해진다.

이제는 대세에 묻혀 가는듯한 청와대의 특정언론 공개 비판 문제를 다시 거론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사회가 어려울수록 기자는 욕먹을 짓을, 매 맞는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옳다.

<필자 소개>

김명서(clickmouth@hanmail.net)

-전 서울신문 정치부장, 사회부장, 논설위원

-전 서울신문 편집담당 상무

-전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실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서울이코미디어
  • 등록번호 : 서울 아 03055
  • 등록일자 : 2014-03-21
  • 제호 : 서울이코노미뉴스
  • 부회장 : 김명서
  • 대표·편집국장 : 박선화
  • 발행인·편집인 : 박미연
  •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1107호(여의도동, 삼도빌딩)
  • 발행일자 : 2014-04-16
  • 대표전화 : 02-3775-4176
  • 팩스 : 02-3775-41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미연
  • 서울이코노미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서울이코노미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eouleconews@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