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죽음의 계곡(death valley)'...홈런보다 안타가 절실
한국 경제 ‘죽음의 계곡(death valley)'...홈런보다 안타가 절실
  • 권의종
  • 승인 2019.09.29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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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대는 기업, 흔들리는 금융...이자도 못내 허덕이는 한계기업 3,236곳 등 수익성 급속히 악화

[권의종 칼럼] 국내 기업의 수익성이 나빠지고 있다. 경기침체가 가시화되고 미중 무역 분쟁, 한일 무역 갈등의 대외 악재까지 겹치면서 빚 못 갚는 기업이 시나브로 늘고 있다. 이자비용 대비 영업이익 비율인 이자보상배율이 4.7배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9.5배와 견줘 큰 폭의 하락이다. 기업 100곳 중 15곳은 3년간 벌어 이자도 못 갚는 상황에 이르렀다.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감사를 받는 기업 2만 2,869개 중 3,236곳이 그런 한계기업이다. 비중이 자그마치 14.2%나 된다. 2017년의 3,112개, 13.7% 대비 124개, 0.5%포인트 상승했다. 기업규모별로는 대기업 중에 10.6%, 중소기업 중에 14.9%나 된다.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상태가 2년 연속 지속된 기업의 비중도 지난해 20.4%로, 전년보다 1.4%포인트 늘었다.

한계기업군에 새로 진입하거나 잔류하는 기업은 늘어나는 반면, 탈출에 성공하는 기업은 줄어들고 있다. 이게 더 큰 걱정거리다. 이들 기업에 대한 여신 규모도 꾸준히 늘고 있다. 107조 9,000억 원으로 전년말 대비 7조 8,000억 원 증가했다. 외감기업 전체 여신 중 13.8%에 해당한다. 지난해 말보다 0.4%포인트 상승했다. 대한민국 좀비기업의 초라한 군상(群像)이 서글프다.

가계부채 건전성 역시 악화일로 추세다. 2017년 이후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특히 비(非)수도권 가계대출 중 연체대출 비중이 2017년 말 2.5%에서 올해 2분기 말 3.1%로 높아졌다. 다중채무자이면서 소득 하위 30% 또는 저신용 취약 차주의 연체대출 비중이 2016년 말 20.5%를 기록한 이래 계속 늘고 있다.

국내 기업 수익성, 가계부채 건전성 악화 일로... 실물경제 부진이 금융권으로 파급되는 양상

지방 가계부채가 높은 것은 대출자의 소득과 신용도가 수도권보다 낮고, 은행이 아닌 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에서 빌린 경우가 많은 때문이다. 이런 지방의 가계부채 문제가 금융시스템 전체 위험으로 전이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상환 능력이 취약한 지방의 가계 대출자들에 대한 대출 비중이 높은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크다.

실물경제의 부진이 금융권으로 파급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금융 안정에 빨간불이 켜졌다. 주요 경제주체인 가계와 기업 모두에서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한국은행이 보고한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 나타난 내용만 봐도 예사롭지 않다. 지난 8월의 금융안정지수가 8.3을 기록, ‘주의 단계’에 들어섰다. 

한은은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다. 미·중 무역 분쟁, 일본 수출규제 등 대외여건 악화에 따른 경제주체의 심리 위축, 자산시장에서의 불확실성 증대 정도로 가볍게 여기는 분위기다. 위험 증대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스템의 복원력은 여전히 양호한 상태라는 입장이다. 그래도 못내 불안했던지 주장의 말미에 단서를 달았다. 예상치 못한 충격 발생에 대비해 기업 신용 위험과 가계부채 부실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전제를 깔았다. 안심하기 힘들다는 속내가 엿보인다.

경기 침체로 기업의 채무상환능력이 떨어지면서 금융 부실위험이 커지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는 경기를 살리는 게 정답이다. 경기가 살아나야 기업과 가계의 위험이 낮아진다. 금융 안정도 가능하다. 합당한 재정정책, 통화정책, 금융정책이 긴요하다. 허나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우리만의 노력으로 해결이 쉬운 일인가. 그럴 바에야 차라리 기업이나 가계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시대착오적 금융방식부터 손보는 게 차선의 선택일 수 있다.

경제의 당면 어려움, 작은 것에서도 유효한 해결책 찾을 수 있어... “홈런보다 안타가 낫다”

정책 실패, 제도 실패 못지않게 운영 실패의 탓도 크다. 힘들다고 금융을 마구 지원하게 되면 기업과 가계에 득이 안 될 수 있다. 우선 당장은 도움이 될 수 있을지언정 결국은 독이 되고 만다.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 될 수 있다. 빚은 언제 갚아도 갚아야 한다. 그런 까닭에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면 견디기 힘든 짐이 된다. 연체나 상환불능에 빠질 수 있다. 지금까지 정책금융의 과정과 결과가 그런 식이 아니었던가.

1년 만기 일시상환의 대출방식의 문제가 의외로 크다. 금융부실화의 숨은 주범으로 지목된다. 사소한 문제 같지만 폐해가 의외로 깊고 크다. 아무리 좋은 기업도 1년간 번 돈으로 대출금을 갚기 어렵다. 해마다 만기 연장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다. 빚이 갚아지기는커녕 계속 쌓이게 된다. 결국 빚에 치여 죽게 된다. ‘살리는 금융’이 아니라 ‘죽이는 금융’으로 돌변한다. 대출기간을 장기로 운영하고 원리금 동시상환 방식으로 바꿔야하는 절박하고 현실적인 이유다.

이를 금융회사가 모를 리 없다. 필요성을 알지만 되레 악용하는 형국이다. 만기를 단기로 운용해야 교섭력이 약한 금융소비자를 요리하기 편하다. ‘갑’으로서의 권리행사가 쉬워진다. 만기 연장을 무기로 금리 인상, 예·적·연금 권유, 보험과 파생상품 등 고수익 상품 강매가 가능하다. 돈 빌리는 기업이나 가계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원리금 동시상환보다 이자만 내는 대출 방식을 선호한다. 도대체 빚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성장단계별 지원도 립서비스 수준이다. 창업기업 지원을 투자 중심이 아닌 대출 위주로 하고 있다. 금융 원리와 반하는 어이없는 행태다. 대출은 기표하는 날부터 이자가 발생한다. 수익성이 낮은 창업기업에게는 부담이다. 빚내서 빚을 갚아야 한다. 스타트업이 직면하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넘기 힘들다. 창업초기의 가장 큰 실패 요인이다. 난해해야만 해법이 되는 건 아니다. 작은 것도 얼마든지 유효한 방책이 될 수 있다. 지금은 홈런보다 안타가 절실한 때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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