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초비상...‘정책실패’는 용납돼도 ‘정직실패’는 용서 안 돼
수출 초비상...‘정책실패’는 용납돼도 ‘정직실패’는 용서 안 돼
  • 권의종
  • 승인 2019.11.05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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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은 신뢰가 생명... 입안, 집행, 피드백 등 모든 과정서 정부는 국민과 긴밀히 소통해야

[권의종 칼럼] 수출이 큰 걱정이다. 대한민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무역의존도가 68.8%나 된다. 네덜란드, 독일, 멕시코에 이어 세계 네 번 째다. 일본의 2.4배다. 이런 수출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0월까지 내리 11개월 째 추락이다. 지난 6월부터는 5개월째 감소폭이 두 자릿수를 기록 중이다. 10월 수출 –14.7%는 2016년 1월(-19.6%) 이후 3년 9개월 만에 최대의 감소치다. 국가 별로는 중국 수출이 16.9%, 미국 수출이 8.4% 줄었다.

올해 연간 수출로도 2016년(-5.9%) 이후 3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이 확실시된다. 중간재 수출 급감이 특히 뼈아프다. 10월만 해도 반도체 수출이 32.1% 줄어 감소폭이 그중 크다. 석유화학(-22.6%), 석유제품(-26.2%) 수출이 20% 넘게 줄었다. 자동차(-2.3%), 일반기계(-12.1%), 철강(-11.8%), 디스플레이(-22.5%) 수출도 하락했다. 선박(25.7%), 컴퓨터(7.7%), 바이오헬스(7.8%), 화장품(9.2%), 농수산식품(3.0%)의 수출이 늘었으나, 총량 감소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태연자약하다. 미・중 무역분쟁, 일본 수출규제 등 대외 리스크와 반도체 업황 회복 지연, 유가 하락 등에 따른 결과라는 산업통상자원부의 해석은 지극히 한가롭다. 사돈 남 말하듯 한다. 정부나 정책에는 잘못이 없고, 대외환경을 탓하기 급급한 모양새다. 한국 경제를 글로벌 경기 회복이나 고대하는 천수답 경제로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자존심도 없나보다.

올해 연간 수출, 3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 확실시... 정부는 대외환경 탓으로 책임 돌리기 급급

미안해하는 구석도 없다. 세계 경기를 이끄는 미국·중국·독일의 경기 부진에 따라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10대 주요 수출국들도 동반 감소 추세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바쁘다. 어이가 없다. 이쯤 되면 참았던 분노가 폭발한다. 다른 나라 경기가 나쁘면 우리도 덩달아 안 좋아야 한다는 말인가. 그런 말을 하려거든 미국과 일본이 호황일 때 우리 경기가 그들처럼 좋지 못했던 이유부터 해명하는 게 순서이리라.

수출 전망에 대한 정부 시각도 낙관적이다. “수출액 감소에도 수출 물량은 줄지 않고 있으며, 반도체 가격 하락도 둔화되고 있어 우리 수출은 10월을 저점으로 개선되는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는 주무부처 장관의 설명이다. 책임도 근심 걱정도 없어 보인다. 제발 그랬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할 공산이 큰 게 걱정이다. 대책도 없이 막연한 낙관론으로 현실을 호도하는 것만큼 위험천만한 일도 없다.

그래도 걱정은 되었던지 정부가 수출 대책을 내놓았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주재로 수출상황 점검 회의가 열렸다. 수출 분위기 반전을 위해 무역금융에 60조원을 지원하고, 미래 핵심 산업 분야에 350조원 규모의 투자를 추진하는 등 정책 역량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혔다. 규모 면에서 단연 역대급이다. 지난해 국가예산이 429조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한해 예산에 필적하는 천문학적 지원이다. 

어쩐지 금액이 크다 했다. 감격과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발표한 정책이 새로운 게 아니었다. 이미 시행 중인 내용을 다시 써먹은 ‘재탕’ 정책이라는 사실이 언론으로 보도되었다. 대기업들이 계획 중인 투자금액을 합산했고, 수출 진흥책으로 시행되어 효과가 미진했던 대책을 새로운 지원책인 양 짜깁기했다고 한다. 400조원이 넘는 수출지원 방안이 그런 식으로 급조된 것이었다. 놀라울 따름이다.

400조원 역대급 수출 지원책, 새로운 것 없고 이미 써먹은 ‘재탕’ 정책...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

보도에 따르면, 무역금융 60조원은 올해 확보된 무역금융 예산 235조원 중 이미 집행된 175조원을 제하고 남은 돈이다. 투자 350조원은 최근 1~2년 새 민간 기업들이 밝힌 투자 규모를 합산한 수치다. 삼성전자 시스템 반도체 투자(133조원), SK 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건설(120조원) 등이 포함돼 있다. 그중 일부는 투자 종료 시점이 2030년 이후인 것들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올 연말까지 해외전시회·무역사절단 등 해외 마케팅 84회를 집중 지원키로 한 것도 새로울 게 없다. 이 또한 당초 예정돼 있던 행사들을 합해 놓은 결과다. 산업의 난제를 해결하는 알키미스트 프로젝트(alchemist project)에도 2조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는 아직 예비 타당성조사도 통과치 못한 상태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예삿일이 아니다. 새로운 정책으로 반겼던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기업들을 두 번 울리는 행동이다.

정책이 실효를 못 거두는 데는 다 그럴만한 사유가 있다. 무역금융만 하더라도 수요가 없어 실적이 부진한 게 아니다. 기업으로 금융이 흘러가지 못하도록 온갖 제도와 규제가 막고 있다. 수입자 신용에 기초하는 무역금융에서 수출자의 신용을 따지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금융원리에도 반한다. 수출대전으로 자동 결제되어 미상환 위험도 낮은 편이다. 신용도 취약, 회생절차 진행 기업에 대해 무역금융 지원을 마다할 하등의 이유가 없어 보인다.

정책은 신뢰가 생명이다. 그러려면 정부가 정책을 입안, 집행, 피드백하는 과정에서 국민과 긴밀히 소통해야 한다. 기업과도 막히지 않고 잘 통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이 성공할 수 있다. 정부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는 ‘정책실패’는 용납될 수 있다. 반면 위기 때마다 적당히 핑계나 대며 얼렁뚱땅 넘기려는 정부의 ‘정직실패’는 용서받기 어렵다. 정직은 정책에서도 최선의 방책이 되어야 한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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