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혁신과 골든타임...클린턴 정부의 ‘해머’, 문재인 정부의 ‘망치’
규제 혁신과 골든타임...클린턴 정부의 ‘해머’, 문재인 정부의 ‘망치’
  • 권의종
  • 승인 2019.12.16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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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생물...숨통 죄는 규제 올무, 걷어내지 못하면 성장은 커녕 생존조차 부지키 어려워

[권의종 칼럼]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해가 한결 쉽다. 정부가 규제 개혁의 당위성을 언급할 때 단골로 끌어다 쓰는 사례가 있다. 19세기 영국 차(車)산업의 발목을 잡은 ‘붉은 깃발법(Red Flag Act)’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8월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시대착오적 규제로 인용하면서 널리 알려진 화제의 법률이다.

몇 번씩 들어도 내용이 늘 흥미롭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절이던 1865년 자동차의 등장으로 피해를 보게 된 마차 사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정식 명칭은 The Locomotives on Highways Act, 약칭은 Locomotive Act이다. 당시 증기자동차가 출시되면서 마차업자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제정되었다.

기존의 마차 사업을 보호하고 마부들의 일자리 수호를 위한 조치였다. 한 대의 자동차를 움직이려면 반드시 운전사, 기관원, 기수 등 3명의 인력을 두어야 했다. 자동차의 최고 속도는 6.4km/h, 시가지에서는 3.2km/h로 제한되었다. 자동차 속도를 마차의 속도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기수가 낮에는 붉은 깃발, 밤에는 붉은 등을 들고 자동차의 55m 앞에서 차를 앞장서서 안내했다.

자동차 운행을 위해 붉은 깃발을 앞세워 자동차가 마차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없게 한 것이다. 이 법이 1896년까지 무려 30년 넘게 유지되었다. 소비자의 자동차 구매 욕구를 감퇴시키는 결정적 패인으로 작용했다. 산업혁명의 발상지였던 영국은 자동차를 가장 먼저 만들어내고도, 이후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독일, 미국, 프랑스 등에 내주는 뼈아픈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19세기 영국 車산업 발목 잡은 ‘붉은 깃발법’...규제 혁신-낡은 관행 타파에 요긴한 반면교사

정부는 기업 활력을 떨어뜨리는 나쁜 규제를 줄이는 데 무진 애를 써왔다. 연말이 되면 규제 개혁에 앞장선 공무원과 유관기관, 중소기업의 성과를 격려하고 표창한다. 규제의 장벽을 부순다는 뜻에서 규제혁신 대상, 일명 ‘망치상(賞)’까지 제정했다. 수상자들에게 망치를 하나씩 만들어 부상으로 선물한다. 클린턴 행정부가 공무원의 적극 행정을 유도키 위해 제정한 ‘해머상(Hammer Award)을 본뜬 것이긴 하나, 공공부문의 아이디어치고는 참신하고 기발하다.

“나쁜 규제를 없애면 좋은 기업이 늘어난다”는 박주봉 중소기업 옴부즈만의 발언은 호소에 가깝다. 규제 남발의 절박한 현실을 대변하는 듯하다. ‘타다 금지법’으로 불리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을 두고 소란하다. 타다가 ‘유사 콜택시’인지, ‘혁신 서비스’인지 여론과 전문가 의견도 두 갈레다. 타다의 사업 근거가 됐던 시행령 내용을 법 조항으로 올리고 관광 목적으로만 이용할 수 있게 제한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고부터다.

개정안의 취지는 단호하다. 타다가 여태껏 11~15인승인 승합차 렌터카의 경우 운전자를 알선할 수 있는 예외 조항, 여객운송법 시행령 18조 1항에 근거해 사업을 이어온 것으로 간주한다. 개정안은 그 빈틈을 메워 법 테두리 안에서 다른 업종과 공정하게 경쟁하는 취지의 규정을 반영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타다가 불법과 합법 사이에 위치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타다의 생각은 많이 다르다. 공정한 경쟁을 위한 법이 아닌 타다의 영업을 사실상 금지하는 규제 법안으로 이해한다.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시행되면 현재 방식으로 영업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에 절규한다.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국토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기여금도 내야 하는 억울함을 토로한다. 차량을 마음대로 늘릴 수도 없는 것에도 분을 못 삭인다. 혁신을 가로막는 법 개정 움직임에 여론호소, 법적투쟁을 불사할 태세다.

“서 있으면 그저 땅, 걸으면 길”...정부가 신작로 뚫어 기업이 무한 질주할 때 나라경제 부강

복잡할수록 원점에서의 고려가 요긴하다. 혁신의 본질에 대한 심사숙고가 긴요하다. 규제라는 게 만들어질 때는 필요에 의했을 게 분명하다. 훗날 사회 경제적 상황이 변해 타당성이 상실되면 완화 내지는 폐지가 답이다. 당초 목적이 달성되거나 달성에 실패한 경우, 상황 변화로 존재 이유가 사라진 경우, 규제의 존속은 부작용만 양산한다.

개혁은 방향성이 중요하다. 규제 혁신은 산업 발전과 국민 편익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기득권과 새로운 이익집단 간의 충돌을 막고 이해를 조정하는 배려가 필수적이다. 혁신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고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는 게 쉬울 리 없다. 그렇다고 정부가 미루거나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발군의 정책 역량과 기능 발휘가 간절하게 요구되는 이유다.

혁신에는 범위와 타이밍도 중요 변수다. 풀 수 있는 규제는 다 푸는 혁명적 수준의 조치를 요한다. 풀어도 ‘골든타임’을 놓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정부가 기업 경영을 방해하고 사사건건 간섭하면 되는 일이 없다. 올해 들어 규제 샌드박스를 시행하고 규제 프리존을 지정, 기업이 움직일 수 있도록 길을 튼 것은 잘한 일이다. 큰 박수감이다. 내친김에 1997년부터 운용해온 규제일몰제도를 보다 내실 있게 운용하는 등 규제 혁파에 총력전을 펼쳐야 할 시기다.

경제도 생물이다. 호흡이 끊기면 사망에 이른다. 숨통을 옥죄는 지긋지긋한 규제의 올무, 걷어내지 못하면 성장은 커녕 생존조차 부지하기 힘들다. 혁신은 행사가 아니라 행동이다. 서 있으면 그저 땅일 뿐이나, 걸으면 길이 된다. 정부가 널따란 신작로를 시원하게 뚫어 기업들이 무한 질주케 해야 한다. 기업과 국민, 나라경제가 고난을 헤치고 살아나갈 수 있는 활로이기 때문이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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