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병 앓는 대학들... 그들이 흔들리면 미래가 흔들린다
중병 앓는 대학들... 그들이 흔들리면 미래가 흔들린다
  • 권의종
  • 승인 2019.12.2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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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학생, 20세기 대학, 19세기 관(官) 통제의 토양에서 국제 수준의 대학 탄생될 수 없어

[권의종 칼럼] 사면초가(四面楚歌)는 대학 현실을 두고 하는 말 같다. 겪는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고립무원의 고통을 이어간다. 끝없는 학령인구 감소, 11년째 등록금 동결, 불합리한 정부 규제가 촘촘히 주위를 에워싼다. 장애와 악재가 여기저기 그득하다. 지금의 대학 형편은 초나라 항우가 한(漢)나라 군사에게 포위되었던 상황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성싶다.

대학 자체적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요인이라는 게 문제다. 정원감축, 경비절감, 구조조정 등 자구노력만으로 감당키 힘든 구조적 사안이 대부분이다. 정부 돈으로 살아가는 국공립대야 걱정할 게 없다지만, 대다수 사립대는 당장의 생계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벚꽃 피는 순서로 대학이 망한다’는 자조적 표현, 우스갯소리로 넘길 일이 아니다.

대학 돈줄이 마르고 있다. 재정수입의 핵심인 등록금이 2009년부터 올해까지 11년간 동결된 결과다. 편입 등으로 학생 수마저 줄고 있다. 교직원 인건비 지급이 버겁고, 교육 기자재의 교체가 힘들다. 등록금 책정이 명목상으로는 대학의 자율 권한이나 실제는 딴판이다. 교육부의 동결 방침이 10년 넘게 강요돼 왔다. 대학이 정부가 내놓는 각종 사업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이유다. 너나없이 경쟁에 뛰어들어 사업비 확보에 이전투구를 벌여야 한다. 이런 처절함이 없다.

이쯤 되면 사립대라고 사립대가 아니다. ‘국공립화 대학’의 별칭이 어울린다. 정부 돈을 안 받기도 부담스럽다. 털어 먼지 안 나는 곳 없다고, 혹시라도 밉보여 감사를 자초할까 께름칙하다. 적발되면 비리사학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 재정지원 제한대학으로 지목되는 날에는 정부사업 참여와 장학금 지원이 끊긴다. 이래저래 옴짝달싹하기 힘든 구조다.

사면초가의 대학...학령인구 감소, 11년째 등록금 동결, 불합리한 정부 규제 등 포위망 촘촘

힘이 될 정부는 되레 규제·감독을 강화하는 듯하다. 가뜩이나 힘든 대학들을 정부가 입시, 재정, 감사, 평가의 4각 규제로 옥죄고 있다. 전방위적 압박이 10년 넘게 이어지다보니 자율과 혁신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소극적이고 방어적 태도가 점차 체질화되고 있다.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경영은 꿈도 꾸기 어렵다.

입학 정원부터 등록금 결정까지 정부의 간섭이 세세하고 치밀하다. 각종 사업과 평가를 통해 사사건건 통제와 감독을 받는다. 올해만 해도 그렇다. 정시 비율을 늘리고 학생부종합전형선발 비율을 높이라는 성화가 반강제적이다. 학종 선발 비율이 높은 8개 대학에 대해서는 감사까지 실시했다. 평가받고, 보고서 쓰고, 감사 받다보면 한 해가 훌쩍 지나간다. 대학의 일 년은 그렇게 짧다.

규제 강화는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오비이락일까, 공교롭게도 등록금이 동결된 2010년대 들어 한국 대학교육의 국제 순위는 하락세다. 2011년 59개국 가운데 39위였던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한국 대학교육경쟁력 순위가 2017년에는 63개국 중 53위로 추락했다. 세계경제포럼(WEF) 고등교육 국가경쟁력도 같은 기간 중 147개국 가운데 17위에서, 137개국 중 25위로 떨어졌다.

대학을 나와도 갈 곳이 없다. 졸업장이 힘이 되는 게 아니라 짐이 되는 세상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하향취업현황 보고서 내용은 섬뜩하다. 대학졸업자의 30.5%가 굳이 대졸 학력이 필요치 않은 서비스·판매직, 단순노무직에 종사하고 있다. 분석을 시작한 2000년만 해도 하향취업률이 23.6%에 그쳤던 게 그간 시나브로 커진 것이다. 그나마 일자리도 못 구해 애태우는 청년들은 더 많다.

지금 대학 살리기만큼 긴급 과제 없어...학령인구 감소 대처, 4차 산업혁명시대 인재육성 올인해야

실제로 대졸자 수에 걸 맞는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2000~2018년 중 대졸자는 연평균 4.3% 증가했으나, 적정 일자리는 2.8% 느는 데 그쳤다. 경기침체 탓도 있고, 대졸자가 많이 배출되는 교육구조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인적자본 활용이 비효율적이라는 의미도 된다. 경제 전체로 보면 생산성 둔화를 초래하는 안타까운 결과다.

인재 양성과 국가경쟁력 창출의 산실인 대학이 중병을 앓고 있다. 걱정하고 고치려는 노력은 안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도 교육부는 사학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천만 원 이상 횡령·배임을 저지른 사학법인 임원은 바로 퇴출하고, 업무추진비 공개 대상도 대학 총장에서 법인 이사장 및 상임이사로 확대키로 하는 내용을 사학혁신방안으로 내놨다. 도움은커녕 부담만 주고 있다.

대학 살리기만큼 중요하고 긴급한 과제가 없다. 학령인구 감소에 대처하고 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 맞는 인재 육성에 올인 해야 할 때다. 대학 경쟁력 저하의 주범으로 꼽히는 규제부터 뿌리 뽑아야 한다. 사립대에 대한 지나친 간섭을 멈춰야 한다. 정부가 고등교육의 77.7%를 책임지고 있는 사립대를 제대로 대우해야 한다. 주종의 관계가 아닌 동반자 관계를 통해 상생의 순기능을 이끌어내야 한다.

교육 분야 비리를 엄단하고 투명성을 높이자는 정부 방침에 토를 달 자 없다. 다만, 대학의 공공성 강화를 명분으로 대학의 자율성이 침해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미래세대 육성과 국가경쟁력 제고라는 교육 본연의 역할에 매진해야 한다. 21세기 학생, 20세기 대학이, 19세기 관(官) 통제의 토양에서는 국제 수준의 대학이 자라나기 힘들다. 대학이 흔들리면 미래가 흔들린다. 대학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이 세대가 받들 시대적 소명이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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