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왕의 검소함과 노블리스 오블리쥬
정조대왕의 검소함과 노블리스 오블리쥬
  • 김준혁
  • 승인 2020.01.1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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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 칼럼] 1776년(정조 즉위년) 3월 16일, 정조는 자신이 등극하기 전에 궁중에 있던 내시와 액정서 소속의 인원 108명과 궁녀들을 줄이라는 뜻밖의 하교를 하였다. 군주가 자신을 도와주는 내시와 액정서 소속의 인원, 여기에 더해 궁녀를 줄이라고 명령하는 것은 조선시대 왕실에서 매우 특별한 일이다. 군주가 이런 일까지 신경 쓸 이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국왕의 일거수일투족을 도와주는 내시와 궁녀는 많을수록 편한 것인데, 이들을 궁에서 대거 내보낸 것이다. 이때 정조가 내보낸 궁녀가 무려 300여 명이었으니 이는 왕실 궁녀의 반 가까이 해당되는 인원이었다.

내시와 궁녀의 수를 줄이다

정조가 이렇게 내시와 궁녀를 많이 내보낸 이유는 다름 아닌 국가 재정 때문이었다. 숙종대부터 시작된 기후 이상이 영조대까지 이어졌고, 그래서 영조는 재위 52년 중 40년을 금주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백성들이 먹을 쌀도 부족한데 그 귀한 쌀로 술을 빚어 먹으면 안된다는 것이 영조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영조는 잔혹하리만치 조정의 명을 어기고 술을 빚어 먹은 이들을 사형죄로 다스리기도 하였다.

이런 모습을 보았던 정조는 국가 재정을 안정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국가 전체로 보면 구조적인 문제가 분명히 있었다. 정조가 즉위하고 국가 재정에 대한 전반적인 보고를 받았는데, 당시 호조 예산의 56%가 국방비로 사용되고 있었다. 쓸모없는 군대의 장수들 급여로 나가는 것을 정조는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양 일대의 군대 통폐합을 단행하는 구조조정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만가지고 국가의 재정을 안정시키는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공적인 것은 공적인 것대로 해야 하지만 군주가 스스로 모범을 보여 재정 낭비를 막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이 솔선수범하여 국가 재정을 줄이는 검소함을 보이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첫 번째 지시한 것이 바로 내시와 궁녀를 대궐 밖으로 내보내 이들에게 지출되는 경비를 줄인 것이다. 내시와 궁녀들은 거의 정3품에 해당되는 관원들의 급여를 받았기 때문에 이들을 대폭 감축하는 것은 국왕에게는 불편한 일이지만 재정적 측면에서는 효과를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정조는 얼마 뒤에 하루에 2끼, 그리고 한 끼에 반찬을 5가지만 먹겠다고 선언하였다. 국왕의 아침과 저녁 수라는 고기와 반찬 11가지 이상이 들어가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소주방(燒廚房)에서 국왕의 건강을 생각해서 최고의 음식을 마련하는 것이 상례인데, 정조는 이를 거절하고 최소한의 식사만을 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정조가 국왕으로 있는 24년간 내내 지켜졌다.

정조는 여기에 더해 비단옷을 입지 않기로 했다. 스스로 비단옷이 곤룡포와 강사포 말고는 없었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정조는 무명옷을 입고 살았다. 뿐 만 아니라 옷이 해지거나 버선에 구멍이 나면 이를 버리지 않고 실로 꿰매 입었다. 한 나라의 군주가 옷과 버선을 꿰매 입는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사회 지도층이 검소하게 살아야

정조의 검소함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자신이 거처하는 작은 방을 화려하게 하지 않고, 냇가에서 나는 부들로 만든 돗자리를 깔고 살았다. 창경궁 안에 있는 영춘헌이 하도 오래되어 비가 오면 빗물이 방안으로 스며들어 곰팡이까지 슬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조는 이를 개의치 않고, 신하들에게 “나는 천성이 검소한 것을 좋아한다”라고 하며 새로 도배를 하게 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국왕이 검소하게 생활하니 자연스럽게 궁중의 모든 이들이 검소하게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정조는 이렇게 모은 돈은 궁중 재산으로 두지 않고 이를 모두 호조로 보내 백성들을 위해 사용하게 하였다. 왕실 재산을 고리로 조정에 대여하여 이익을 얻은 한말의 군주 고종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행동이다. 정조의 검소함을 가까이서 늘 눈으로 지켜본 정약용은 훗날 자신의 자식들에게 “거친 음식과 해진 옷을 부끄러워 하는 이들과 친구를 맺지 말라”고 하였다.

2020년 새해가 밝았지만 경제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사실 그러한 모습이 눈에 보이고 있는 것도 있다. 이렇게 어려운 때에 사치가 만연하면 국가와 사회는 올바르게 발전할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사회 지도층이 정조처럼 더욱 검소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검소함을 통해 얻은 이익을 어려운 이들과 함께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노블리스 오블리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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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다산칼럼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글쓴이 / 김 준 혁
· 한신대학교 평화교양대학 교수(한국사 전공)
· 국제기념물유적협회(ICMOS) 한국위원회 위원

· 저서
〈이산 정조 꿈의 도시 화성을 세우다〉(여유당출판사)
〈정조와 다산의 꿈이 어우러진 대동의 도시 화성〉(더봄)
〈한반도의 운명을 바꾼 전투〉(한신대학교 출판부)
〈조선의 최강 군대 장용영〉(더봄)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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