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팔고 보자"...불완전 판매로 덩치 값 못하는 한국 금융의 품격
"일단 팔고 보자"...불완전 판매로 덩치 값 못하는 한국 금융의 품격
  • 권의종
  • 승인 2020.02.0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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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금융관행 근절 위한 대책 마련 필요... 투자자 금융지식 넓히는 능력 배양 긴요

[권의종 칼럼] 유대인은 장사할 때 ‘키도시 하셈’을 따른다.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이름을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자신과 가문은 물론 동족의 이름도 욕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넓게 해석한다. 이는 상인이 해서는 안 되는 세 가지를 가리킨다. 첫째는 상품을 과대 선전하지 말 것, 둘째는 값을 올리기 위해 저장해 두지 말 것, 셋째는 상품을 재는 자나 말 같은 계량을 속이지 말 것이다.

미쉬나 탈무드 시대부터 유대 사회에서는 계량기를 감독하는 관리가 있었다. 하절기와 동절기에는 크기를 재는 줄도 다른 것으로 사용했다. 줄도 날씨에 따라 늘거나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랍비 라바라는 인간이 죽어 하늘나라에 가면 제일 먼저 묻는 말이 “그대는 장사꾼으로 정직했는가?”라고 가르쳤다. 유대인은 키도시 하셈을 염두에 두고 장사를 하므로 좀처럼 남을 속이는 법이 없다.

우리의 상거래 질서도 유대인 못지않다. 많이 투명해지고 정직해졌다. 과장 광고, 매점 매석, 중량 속임이 사라진지 오래다. 그렇다고 다 없어진 것은 아니다. 아직도 예외 지대가 남아있다. 다름 아닌 금융산업이다. 거의 모든 금융권에서 기본 내용이나 투자위험성 등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상품을 팔고 있다. 이로 인해 소비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금융사고가 빈발한다. 흔히 말하는 바 불완전판매(mis-selling)다.

불완전판매는 금융 관련 법규상의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다. 자본시장법 등에서는 금융회사가 투자자에게 적합하고 적절한 상품을 판매해야 한다는 ‘적합성 및 적절성 원칙’을 규정한다. 상품 위험성도 사전에 알려야 한다는 ‘설명 의무’도 마련되어 있다. 이 같은 규정들을 어기게 되면 불완전판매가 되는 것이다.

유대인 3금(禁) 상술, 과대 광고, 매점 매석, 계량 속임... 한국 금융산업 고질병, ‘불완전판매’

노인이나 가정주부와 같이 금융역량이 취약한 계층이 피해자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설명을 잘 해도 개인적 인식의 차이가 클뿐더러 충분한 주지(周知)가 어렵다. 금융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정보와 교섭력 등의 우위를 이용, 이익을 편취하는 불공정거래가 가능하다. 간단없이 터지는 금융사고의 이면에는 대개 불완전판매의 괴물이 똬리를 틀고 있다.

한국 금융사에서 불완전판매의 뿌리는 깊다. 키코(KIKO) 사태가 원조 격이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하면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으나 범위를 벗어나면 큰 손실을 보는 구조의 파생상품이다. 수출 중소기업들이 환 헤지 목적으로 대거 가입했다. 2008년 금융위기로 환율이 치솟으면서 기업들이 큰 피해를 봤다. 판매사들은 외화유출입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상품을 권유했다.

‘동양사태’라 불리는 동양그룹 기업어음(CP) 사건도 불완전판매의 대표적 사례다. 2013년 현재현 당시 동양그룹 회장의 경영권 유지를 목적으로 부실 계열사 회사채와 CP를 판매한 사건이다. 동양증권은 해당 기업의 부실 정도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투자자들에게 판매, 대규모 피해를 불러 일으켰다.

지난해 터진 해외금리 연계형 DLF 사태도 불완전판매의 연장선 위에 있다. DLF는 수익률은 사전 약정 수준으로 제한돼 있지만 손실이 나면 원금 전액이 잃을 수 있는 고위험 상품이다. 하방이 뻥 뚫린 위험 상품을 팔면서도 판매사들은 원금 손실 가능성이 없다는 식으로 판매한 것이다. ‘라임사태’도 다를 바 없다. “상품의 위험성을 사전에 안내받지 못했다”는 게 다수 피해자들의 이구동성이다.

솜방망이 처벌, 불완전판매 내성 키우고 투자자 불신 가중... 정책불신, 정부불신으로 이어져

돈에 눈이 먼 금융판매자들은 염치도 양심도 없어 보인다. 상품의 내용과 위험을 알리지 않는 악습을 고치려는 노력은 커녕 의지 조차 안 보인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지 않다보니 더 많은 소를 잃고 있다. 리스크 관리 보다는 목전의 수익을 위해 ‘일단 팔고 보자’식의 무리한 마케팅을 겁도 없이 벌인다. 하도 오래 해오다보니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어언 고치기 힘든 지병(持病)이 되었다.

시대착오적 불완전판매의 근절을 위해서는 처벌 강도를 높이는 근본 대책이 시급하다. 임기응변식 대처는 부작용만 양산한다. 솜방망이 처벌이 불완전판매의 내성을 키우고 금융사에 대한 투자자의 불신만 가중시켜왔다. 정책 불신, 정부 불신으로까지 이어진다. 불완전판매의 제재 강도를 높이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은 국회에 장기 계류 중이다. 2011년 첫 발의된 이후 9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진척이 없다.

투자자도 변해야 한다. 높은 금리만 보고 덤볐다간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장미에는 가시가 있다. 고수익에는 늘 고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더구나 금융시장은 실물시장과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공급자 우위, 상품 차별화, 판매채널 다양화 등 소비자가 넘기 힘든 장애물이 곳곳에 버티고 있다. 또 정보가 완전하게 주어지지 않아 불완전판매의 가능성이 크다. 요즘처럼 저금리가 고착화하고 투자 상품들이 복잡 다양해질수록 금융사고의 개연성은 더 높아진다.

투자자가 판매자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능력 배양으로 무장하는 수 밖에 없다. 금융지식의 저변을 넓혀야 한다. 투자자에게 금융 상품에 대한 이해도와 위험성을 알리기 위한 실효성 있는 교육시스템 마련이 절실한 이유다. 금융에도 품격이 있다. ‘attitude to altitude’, 금융에 대한 태도가 고도를 결정한다. 한국 금융도 커진 덩치에 걸맞게 품위 제고에 나설 때도 되었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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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위한 외침 2020-02-10 23:02:30
시대착오적 불완전판매의 근절을 위해서 강도 높은처벌과 근본적 대책이 세워져야 합니다. 키코를 재수사해서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징벌적 보상까지 해주어야 합니다.

스마트 2020-02-10 06:44:37
키코는 재조사를 해야 한다
여기에 은행의 품격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이재범 2020-02-09 21:35:36
키코는 100프로 사기사건입니다
검찰에서 재수사해서 금융적폐청산 및 피해기업들및주주들에게 백프로 보상해줘야합니다

담당자 2020-02-09 20:30:46
한국의 은행은 양아치 집합소다 ㆍ
창구에 폼잡고앉아 약자를 상대로 돈가지고 장난치는것을보면 구역질난다 ㆍ
키코로 사기친것을 보라 ᆢ그게 어디 인간으로서 할짓인가 ᆢ
ᆢ이런 금융조폭들을 싸그리 감방에 처넣어야 한다

유정숙 2020-02-09 20:23:48
은행들을 믿을수없는 세상이 되었다.
DLF도 키코사기도 검찰에서 재수사하고... 전액 배상해야 한다.
징벌적 배상과 함께 형사적 책임도 물어야 한다.
그래야 이런 사기짓을 다시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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