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 그나마 효자 노릇하는 국민연금을 '불효자' 만드나
문재인 정권, 그나마 효자 노릇하는 국민연금을 '불효자' 만드나
  • 권의종
  • 승인 2020.02.2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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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본연의 목적과 동떨어진 정책 도구로 사용하면 위험천만...‘꼬리가 몸통 흔드는 격’

[권의종 칼럼] 알고 보면 국민연금만한 효자도 없다. 매달 25일 0시를 넘는 순간 어김없이 통장에 돈이 꽂힌다. 입금을 알리는 휴대전화 알람소리에 밤잠을 설친다는 원성 탓인지 은행의 입금 메시지는 아침 6시나 돼야 날아든다. 자식들 잘 가르쳐 성공시켜본들 꼭두새벽부터 부모에게 돈 보내준다는 미담은 들어본 바 없다. 돈 달라 손이나 안 벌리면 다행이다.

“정부가 고맙다”는 사람이 종종 있다. 사정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국민연금은 정부 돈으로 주는 게 아니다. 기초연금이나 공무원 연금과 다르다. 근로자와 사용자가 재직기간동안 매달 절반씩 꼬박꼬박 낸 보험료로 조성된 재원에서 지급된다. 2018년 근로자, 기업, 지역가입자 등이 낸 보험료는 43조 4,491억 원에 이른다. 정부가 부담하는 돈은 국민연금공단 운영비 102억 원이 고작이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역대급 수익률을 거뒀다. 수익금 73조 3천억원, 수익률 11.3%다. 저금리 여건을 감안할 때 대박이다. 이 정도의 고(高) 수익률은 전례가 드물다. 2001년 12% 이후 가장 높다. 장기 추세를 보면 국민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비슷하다. 지난 20년(2000~19년)동안 국민연금의 연 평균 운용수익률은 6.03%로, 명목 GDP 성장률 6.08%와 별반 차이가 없다.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은 공적 연기금 규모로는 세계 5위로 성장했다. 2019년 10월 기준으로 711조 원의 금융자산을 운용한다. 채권에 49%, 주식에 39%를 배분하고 있다. 해외주식 비중은 2010년 6%에서 2019년 10월 22%로 늘었다. 금액상으로 20조원에서 156조원으로 거의 8배 가까이 증가했다.

한국, 연금 수익률 주요국 대비 저조...지난 해 만 반짝 올랐을 뿐, 2018년엔 0.92% 손실

지난해 수익률의 구체적 근거는 발표되지 않았다. 추정컨대 해외주식 투자에서 30% 정도의 수익률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수익 중 절반 이상이 해외 주식 투자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세계 주가는 24%(MSCI 기준) 올랐다. 원화가치가 6% 떨어져 환차익 덕도 봤을 것이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은 17%로 2018년부터 해외 비중보다 낮아졌다. 2011년 이후 국내 주식시장이 정체된 반면, 해외 주식은 미국을 중심으로 상승했다.

연금 고갈이 우려된다. 고령화가 빨라지면서 보험료 지출이 급증하고 있다.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에 따르면 국민연금 적립기금은 2041년 1,778조원을 정점으로 줄어들기 시작, 2057년이면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이보다 3년 빠른 2054년이 되면 바닥날 것으로 내다본다. 연금 낼 사람은 줄어드는 반면 받을 사람은 늘어나고 있다. 경제성장 하락에 따른 운용수익 저하도 걱정이다.

자산운용 수익률은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고갈 시기를 앞당길 수도, 늦출 수도 있는 최대 변수다. 수익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리스크 관리다. 국민연금은 국민 노후자금을 장기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 이상의 역할이 존재할 리 없다. 그런 점에서 돈도 안 내는 정부가 주인 행세를 하려는 게 보기에 민망하다. 염치없어 보인다.

국민연금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위상을 대폭 강화했다. 수탁위가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진 313개 주요 상장사에 대한 경영 개입에 사실상 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전에는 기금운용본부가 의결권 행사 방향 등에 대해 수탁위에 의견을 물은 뒤 이를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구조였다. 수탁위가 기금운용본부의 요청 없이도 자체적으로 안건을 찾아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수익률 못지않게 중요한 리스크 관리...기업 경영권 개입, 공공투자 재원 활용 심사숙고해야

국민연금측은 전문적인 주주권 행사가 가능해졌다는 자화자찬을 늘어놓는다. 당하는 기업들 생각은 다르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의 경영 개입을 본격화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는다. 연금재정이 바닥날 위기인데도 제도 개혁, 수익률 제고의 노력보다 ‘정책 도구’로 써먹을 생각부터 하는 정부가 못마땅하다. 대놓고 말은 못해도 ‘연금 사회주의’라는 속내까지 내비친다. 

4월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행태는 아예 노골적이다. 국민연금이 사업비를 대는 20평 아파트 100만 가구를 1억 원에 공급하겠다는 선심성 공약을 선보였다. 적립금을 헐어 보육, 임대주택, 요양 등의 공공사업에 쓰자는 논의도 무성하다. 국민연금을 임자 없는 눈먼 돈으로 여기는 시각이 구태의연하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잘못된 주주권 행사로 국민 노후자금을 허비한 게 엊그제 일이다. 수사와 처벌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국민연금 수익률이 높은 게 아니다. 지난해만 반짝 올랐다 뿐이지, 한 해 전인 2018년에는 0.92% 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근년의 추세만 봐도 주요국 대비 저조한 편이다. 일본공적연금기금(GPIF), 노르웨이국부펀드(GPFG), 네덜란드공적연금(ABP), 캐나다공적연금(CPP) 등 외국 주요 연기금의 5년(2014~2018년) 평균 수익률은 연 4.4~10.7% 수준인데 국민연금은 4.2%에 불과하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 순 없다. 국민연금 본연의 역할과 동떨어진 정책 도구로의 활용은 위험천만할 수 있다. 기업 경영권 개입, 공공투자 재원 활용 등은 심사숙고를 거듭해야 하는 사안이다. 돌 한 개를 던져 새 두 마리를 잡는 게 좋은 줄 모르는 바 아니다. 일석이조는 말처럼 쉽지 않다. 현실은 속담과 판이하다. 한 마리의 새도 못 잡는 최악의 상황을 자초할 수 있다. 그나마 효자 노릇 잘하고 있는 국민연금, 까딱하면 막심한 불효자로 만들 수 있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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