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發) 코로나 재앙... 지금은 프로가 진두지휘 나서야 할 때
중국발(發) 코로나 재앙... 지금은 프로가 진두지휘 나서야 할 때
  • 권의종
  • 승인 2020.02.2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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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자 폭증 상황... 아마추어식 도식적 대응보다 전문성 무장된 프로의 실사구시적 대처 긴요

[권의종 칼럼] 해외여행을 하다보면 음식이 입에 안 맞아 고생한다. 중장년층은 며칠만 우리 음식을 못 들어도 유독 참기 어려워한다. 들를 한국 음식점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그럴 형편이 못될 때 흔히 찾는 곳이 글로벌 외식 프랜차이즈 매장이다. 거기에 가면 국내에서와 동일한 맛을 접할 수 있다. 표준매뉴얼 덕분이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운영 전반에 관한 사항을 단순화, 계량화, 표준화한 행동지침을 일컫는다.

표준매뉴얼에는 조리법은 물론 점포의 설비와 상품 관리, 광고 전략 등 점포 운영에 관한 사항이 상세히 명시된다. 표준화를 통해 고객에게 통일된 이미지를 심어주고, 국내외 어느 가맹점을 가더라도 똑같은 서비스를 느낄 수 있게끔 고객 편의성을 높인다.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코카콜라, 맥도날드 등은 막강한 다국적 기업으로 행세한다.

매뉴얼이 만사형통은 아니다. 나름 장단점이 있다. 반복적인 상황에서는 매뉴얼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일사불란하고 치밀한 대응이 가능하다. 순기능이 탁월하다. 반면 선례가 없는 경우에는 매뉴얼이 효과를 발하지 못한다. 무용지물이 되거나 역기능까지 부른다. 그런 사례로 최근 국내 한 언론이 일본의 ‘매뉴얼 문화’를 꼽았다.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의 우한 폐렴 집단 감염에 대한 대응 실패를 일본 특유의 경직된 매뉴얼 문화 탓으로 돌렸다. 자국 국민을 전세기로 중국에서 귀국시켰으나 격리하지 않은 것도, 크루즈선 탑승객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지 않은 것도 관련법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일본의 대처 방식을 꼬집었다. ‘전례가 없어서 어렵다’거나, ‘규정에 나와 있지 않아 할 수 없다’고 발버둥 치다 적기 대응에 실기한 점을 지적했다.

매뉴얼이 만사형통은 아냐...반복적 상황에서 순기능 탁월하나, 돌발적 상황에서는 무용지물

2011년 후쿠시마 원전폭발 때의 일도 들먹였다. “세계 각국에서 구호물자가 도착했으나 관련 물자에 대한 처리 방침이 없다는 이유로 주민들에게 물품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했다.” “외국에서 달려온 의사들 역시 일본 면허에 대한 규정에 없어 주민을 돌볼 수 없었다.” 또 “원전의 추가 폭발 위험이 높아 바닷물을 끌어다가 원자로를 냉각시키자는 방안이 제시됐으나 묵살됐다.” “관련 지침이 없어 고민만 하다 결국 추가 폭발로 이어져 피해만 키웠다.”고 비꼬았다.

2014년 3월 중부 야마나시 현에서 발생했던 폭설 사태까지 들춰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지만 이 지역 공무원들은 상당 기간 제설 작업에 동원되지 못했다.” “현에서 정한 직원 소집 조건에 ‘지진’과 ‘태풍’만 있고 ‘폭설’에 관한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을 은근히 조롱하고 그들의 자존심을 아프게 후벼 팠다.

남 말할 입장이 못 된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우리도 잘 한 게 별로 없다. 일본과 다를 바 없다. 정부가 잘 하고 있고, 앞으로 잘 될 거라는 한가로운 낙관론을 쏟아냈다. 잇단 부적절 발언으로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일본은 매뉴얼을 너무 철저히 지키는 게 문제라면, 우리는 매뉴얼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게 허점이다. 최근 정부는 감염병 위기경보를 대응단계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올렸다. 감염병 위기관리 표준매뉴얼에 따른 것이다.

매뉴얼에는 정부의 위기관리 목표와 방향, 의사결정체계, 위기경보 체계, 부처와 기관의 책임과 역할 등이 규정되어 있다. 경계(Orange) 단계는 ‘해외 신종감염병이 국내에 유입된 후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거나, 국내 신종·재출현 감염병이 다른 지역으로 퍼지는 때’를 말한다. 심각(Red) 단계는 ‘해외나 국내 신종감염병, 국내 재출현 감염병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징후가 나타나는 때’가 해당된다.

전문가인 질병관리본부장이 ‘방역 대통령’ 권한 행사해야...정부나 정치권은 후방지원이 적합

매뉴얼의 용어가 애매하다. 정부가 해석하기 나름이다. 자의적 판단의 소지가 다분하다. 이미 ‘경계’단계가 지났는데도 ‘심각’단계로의 이행에 굼떴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위기경보 격상 시 ‘코로나19 오염국가’로 낙인찍힐 수 있고, 각종 활동 제약에 따른 경기침체가 우려되는 점을 고려했을 수 있다. 그럼에도 피해가 전국적으로 확산된 상황에서 ‘경계’단계를 유지, 사태를 키웠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되었다. 

이제 와서 지난 일을 거론해봤자 득 될 게 없다. 늑장 대응, 원인 파악, 책임 소재를 논할 시기가 아니다. 그런 일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당장 급한 것은 현장으로의 재량권 이양인 듯 싶다. 매뉴얼이나 규정은 마땅히 있어야 한다. 다만 예측 못한 비상사태에서 매뉴얼을 보완할 수 있는 별도의 재량권이 현장에 함께 주어져야 한다. 돌발 상황에 대한 선제적 대응과 적절한 조치를 위해서다.

질병관리본부장이 ‘방역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위기대응 단계가 심각으로 상향되면서 지휘부가 종전의 질병관리본부 중심에서 총리 주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중심으로 바뀌었다. 범정부적 대응은 용이해졌을지 모르나, 참여 부처가 늘면서 의사결정 효율이나 실행 능력은 떨어질 수 있다. 정부나 정치권이 너나없이 현장에 총출동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일선 방역당국이 총력 대응할 수 있도록 후방에서 뒷받침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확진자 폭증 상황이다. 중국에 이어 감염발생국 2위다. 규정이나 매뉴얼에 얽매이면 상황 판단이 흐려지고 조기 수습이 힘들어질 수 있다. 매뉴얼은 일처리를 위한 촉매가 되어야지, 방해하는 족쇄가 되면 안 된다. 집중은 하되 집착은 말아야 한다. 아마추어식 도식적 대응보다 전문성 무장된 프로다운 실사구시적 대처가 낫다. 지금은 전문가가 진두지휘에 나서야 할 때다. 계급이나 체면 따위를 가릴 형편이 아니지 않은가.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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