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여론조사 해법은 ‘돈’이라는데...정부가 나서야
불량 여론조사 해법은 ‘돈’이라는데...정부가 나서야
  • 김명서
  • 승인 2020.03.0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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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기관 이미 권력화…외부 비판엔 ‘독불장군’식 대응으로 일관

[김명서 칼럼] ‘선거여론조사 보도준칙’이라는 게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낯설지만 언론종사자들에게는 어느 정도 친숙해진 일종의 ‘보도지침’이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16년에 제정됐다. 한국신문협회 등 5개 주요언론기관들이 공동으로 만들어 공포했다.

2016년 그 해에 국내외 주요선거와 관련한 여론조사들이 모두 엉터리로 판명 난 데 따른 분노와 질책이 보도준칙 제정의 배경이다. 4월에 치러진 총선이 그랬고,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찬반선거, 미국 대통령 선거 등에서 ‘헛스윙’과 ‘헛발질’이 잇따랐던 것이다.

보도준칙은 28개 조문으로 짜였지만 제16조(오차범위 내 결과 보도)가 특히 주목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가장 자주 위반하는 내용인데다, 보도 종사자들에게 ‘오차 범위’에 대한 ‘각성’을 새롭게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내용은 이렇다. 오차 범위 안에 있으면 우열은 무의미하며, 따라서 순위를 매기지 말라는 것이다. 예컨대 응답자가 1000명인 여론조사에서는 표집오차가 대개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다. 그 오차범위 즉 6.2%포인트 안에서는 1·2등이 누구라는 식의 구분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냥 ‘오차범위 안’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보도준칙 제정에는 여론조사 관련 전문가들이 다수가 참여했다. 그러다보니 규정이 너무 빡빡하다는 불만이 언론계 일각에서 제기되기도 했지만, 큰 잡음 없이 넘어갔고 이제는 어느 정도 정착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여론조사에 대한 일반의 시각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여론조사를 아직도 믿느냐”는 말이 일상화됐을 만큼 불만과 불신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여론조사가 ‘가짜뉴스’의 주요 진원지 중 하나라는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여론 조사는 과학” 내세우면서 비과학적 행태 서슴지 않아

근본적인 문제는 여론조사기관에 있다. 언론계는 그래도 ‘선거여론조사 보도준칙’를 만들고 그에 맞추려는 ‘성의표시’는 계속해 왔다. 하지만 정작 여론조사의 생산자인 여론조사기관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표본추출에서부터 조사방법, 결과에 대한 분석에 이르기까지 자체적으로 뚜렷하게 개선했다는 얘기는 내부에서조차 나오지 않는 실정이다. “여론 조사는 과학”이라고 내세우면서도 이에 역행하는 비과학적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리얼미터가 매주 발표하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조사에서 그런 모습이 나타난다. 분명히 오차범위 안인데도 전주에 비해 올랐느니, 내렸느니 하면서 그 수치를 부동의 사실인 것처럼 단정한다. 그리고 상승과 하락에 그럴 듯한 이유를 분석 자료에 첨부한다.

5일 발표 내용도 그랬다. 이에 따르면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조사한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전주보다 1.5%포인트 상승했다. 조사대상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516명이었고, 표본오차는 ±2.5%포인트였다. 수치가 5.0% 이내라면 상승, 하락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냥 지지율 변동이 오차범위 내로 나왔다고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리얼미터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청와대와 정부의 총력 대응이 전반적인 상승세를 이끌었다”는 분석을 덧붙였다.

이런 식의 발표가 잘못이라는 것을 리얼미터가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오랜 기간 고집하는 데는 나름대로 사연이 있을 것이다. 수치의 변화에 대한 대중적 호기심 충족시키겠다는 의도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여론조사기관 가운데 대중적 인지도 면에서는 리얼미터가 최고라고 본다. 그 만큼 일반의 오감을 자극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적시적기에 내놓았기 때문이다.

리얼미터는 여론조사기관의 대표선수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그 위상에 걸맞게 실력 발휘를 해야 하는 데 실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닥치고 뭇매’라는 말까지 나올 만큼 많은 비난을 받았다. 여론조사의 기본축인 정확성에서부터 객관성, 공정성에 이르기까지 ‘옐로카드’가 여러 차례 올라갔다.

앞에서 언급한 ‘오차범위’와 관련한 필자의 지적은 ‘조족지혈’일 뿐이다. 여론조사에 대한 불만과 불신의 상당 부분은 리얼미터가 책임져야 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실 여론조사 방치 “지붕에 구멍 뚫려 비 새는데 마루만 닦고 있는 꼴”

그런데도 리얼미터는 부족한 부분을 개선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소개된 리얼미터 대표의 발언은 “모르면 잠자코 있어라”는 투다. 오만? 오불관언? 그리고 독불장군이라는 단어를 저절로 떠오르게 한다. 여론조사기관은 ‘감시 없는 권력’이라는 말이 허투루 나온 것은 아닐 게다.

리얼미터의 문제를 제대로 적발할 능력을 가진 조직은 동종업계의 경쟁업체들일 것이다. 선수끼리는 척하면 알아보는 법이다. 하지만 어느 업체도 리얼미터가 내놓은 조사결과에 대해 제대로 시비를 건 적은 없는 것 같다. 터무니없는 조사결과가 나와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것이 업계의 불문율처럼 돼 있다고 한다. 어느 업체가 치명적인 잘못으로 무너지면 전체가 공멸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거여론조사 보도준칙’을 지키지 않으면 언론사는 제재를 받는다. 그 주체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인터넷심의위원회로 내부 규정에 맞춰 제재의 수위를 정한다. 이들은 지금도 매체별 선거여론조사 보도가 ‘오차범위’ 등 규정을 제대로 지켰는지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바탕인 여론조사가 부실투성이라면 다 부질없는 일이다.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정치권에서 나온 찰진 비유가 여기에도 딱 들어맞는다. ‘지붕에 구멍이 생겨 비가 마구 새는 데 지붕은 고치지 않고 마루바닥만 닦고 있는 꼴이다.’

여론조사와 관련해 수많은 처방이 나왔지만 머리에 쏙들어온 한마디는 ‘돈’이었다. 충분한 자금에다 시간만 뒷받침된다면 최고 고품질의 여론조사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수준까지 가려면 지금의 여론조사기관 능력으로는 어림없다고 한다. 정부 차원에서 ‘묘수’를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또 돈 타령이야”하지 말고 코로나19에 대해 그러는 것처럼 창의적으로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를 바란다. 여론조사로 생긴 시민들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정부가 보살펴줄 때도 됐다.

<필자 소개>

김명서(clickmouth@hanmail.net)

-서울이코노미뉴스 대표

-전 서울신문 정치부장, 사회부장, 논설위원

-전 서울신문 편집담당 상무

-전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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