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코노미뉴스 김준희 기자] 삼성의 윤리경영을 감시하는 외부독립기구인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요구한 ‘대국민 사과’ 기한을 4월 11일에서 5월 11일로 한 달 연기해주었다.
삼성 측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그만큼 준법감시위의 요구가 이 부회장으로서는 껄끄럽고도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준법감시위는 지난 달 11일 이재용 부회장에게 과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준법의무를 어긴 데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하라는 내용 등을 담은 권고문을 보냈다.
준법감시위는 삼성의 ‘무노조 원칙’을 버리라는 주문과 함께 앞으로 향후 경영권 행사와 승계와 관련해 준법의무 위반이 발생하지 않을 것임을 공표하라고 요청했다.
준법감시위는 이런 내용의 권고문을 이 회장과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SDS,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 7개 관계사에 보냈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권고문과 관련한 논의에서 내부 의견이 다양하고, 코로나19 사태가 사업영역 전반에 영향을 미친 점 등을 들어 회신 기한 연장을 요청했고, 준법감시위는 9일 한 달 연장으로 결론을 냈다는 것이다.
준법감시위에 따르면 삼성 측은 권고안 이행방안을 최종 도출하기 위한 내부 의견 청취, 회의, 집단토론, 이사회 보고 등 과정이 예상보다 시일이 더 소요되고 있다는 점을 기한 연기 요청 사유로 설명했다는 것이다.
준법감시위원장, “삼성 측이 기한 지키지 못한 것은 실망스럽고 유감”
이어 "삼성 측은 하루라도 빨리 앞당겨 최선의 방안을 도출해 내는 것이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는 최소한의 도리"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유감 표명은 준법감시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일각의 비판적 시각을 의식했기 때문으로도 여겨진다.
그동안 상당수 시민·노동단체들은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 재판부가 이재용을 구속하지 않을 명분을 만들기 위해 준법감시기구를 만들라고 제안했다”면서 “준법감시위 설치 자체가 국정농단 이재용을 봐주기 위한 수순”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준법감시위는 권고문에서 이러한 회의적인 시각을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며 "이 부회장과 관계사 모두가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하여 공표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무노조 경영’ 및 시민사회와 소통을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준법감시위는 삼성 계열사에서 수차례 노동법규를 위반하는 등 노동관계에서 준법의무 위반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점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요구했다.
아울러 삼성이 그동안 시민사회와의 소통에 있어 신뢰관계를 구축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이재용 부회장과 관계사 모두가 시민사회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마련해달라고 권고했다.
“재판 중인 이 부회장, 준법감시위 권고를 대부분 수용하는 모양새 갖출 것”
이 부회장과 삼성은 결국 준법감시위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는 모양새를 갖출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부회장에게 ‘발등의 불’은 서울고법에서 진행 중인 국정농단 뇌물공여사건 파기환송심이다. 삼성 준법감시위는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권유에 따라 출범한 조직이다.
이 부회장은 자칫하면 집행유예가 취소돼 다시 수감될 수도 있다. 종전 형량은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이다.
삼성과 이 부회장이 권고에 따르지 않으면 준법감시위는 존재감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중도 해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론은 악화될 것이고, 파기환송심은 삼성의 희망대로 결론이 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 부회장과 삼성이 총선 국면을 감안해 기한 연기를 요청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일반의 관심이 총선에 쏠리고 있는 상황에서 선거를 나흘 앞둔 4월 11일에 발표를 해봤자 기대만큼의 ‘임팩트’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