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기준’ 없는 정부지원금...‘공짜’ 문화 위험천만
오락가락 ‘기준’ 없는 정부지원금...‘공짜’ 문화 위험천만
  • 권의종
  • 승인 2020.05.0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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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과 책임 따라붙는 나랏돈...합리적 기준 세워 기업 경영과 나라 경제에 도움 되게 쓰여야

[권의종 칼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이 시작되었다. 지급 기준을 두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정치권이 아옹다옹 다투고, 정부가 갈팡질팡 헤맸다. 국민 갈등과 불만이 격심했다. 4인 가구 기준 100만원으로 결말났다. 경과를 복기해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기획재정부는 당초 국민 50% 지급을 계획했다. 슬그머니 70%로 올렸다. 사람들은 물었다. "소득 하위 70%의 기준이 뭐냐?"고. 정부는 ‘본인 부담 건강보험료 기준’이라 답했다.

그러자 “재산은 많은데 소득이 적은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 “예전에는 소득이 높았는데 코로나19로 갑자기 어려워진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을 쏟아냈다. 답변은 조삼모사였다. “특별히 고려하겠다” 하더니, 총선을 앞두고 ‘국민 100% 지급‘으로 돌변했다. 결론 내는데 이래저래 한 달 이상 걸렸다. 말이 좋아 ’긴급 지원금‘이지 실상은 ’늑장 지연금‘이 되었다.

전 국민에 지급되다보니 소득 몇 퍼센트니 고액 재산가니 하는 번거로운 ‘기준’은 필요 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2018년 9월 시행된 아동수당도 지급 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컸다. 재산·소득 상위 10%는 지원치 않겠다며 대상을 골랐다. 선별에 소요된 행정비용이 1626억원에 달했다. 상위 10% 지급에 필요한 1229억원보다 많았다. 배보다 배꼽이 컸다. 지금은 소득·재산에 관계없이 ‘만 7세 미만의 모든 아동’에게 지급된다. 헛돈만 쓴 꼴이다.

지원금이라는 게 지원이 필요한 곳에 쓰여야 할진데, 기준 마련한답시고 비용·수익도 따져보지 않은 채 거액만 낭비하고 말았다. 장삼이사의 작은 머리로는 도무지 상상조차 안 된다. 굳이 따져보지 않아서 그렇지, 고임금의 국회의원과 정부 관료들이 기준 설정과 관련해 떼 지어 싸운 걸 비용으로 환산하면 재난지원금의 경우가 아동수당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성싶다.

기준 마련에 한 달 이상 걸린 재난지원금...말이 좋아 ‘긴급 지원금‘, 실상은 ’늑장 지연금‘

기준만큼 중요한 게 없다. 잘못 정하면 되는 일이 없고 될 일도 안 된다.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수고는 수고대로 허비된다. 여기에 이해당사자의 불만과 원성은 커지고 만다. 기준 잡는 법은 아마도 군사 문화에서 배워야 할 것 같다. 병력 집결 시 지휘관이 병사 한 명을 ‘기준’으로 지목하고 대열 방식을 주문하면 수많은 인원도 일사불란하게 정렬되지 않던가.

기준 부재는 정부 지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업 경영에도 엄존한다. 연구와 개발을 구분하는 기준이 모호해 생기는 비효율이 생각보다 심하다. 연구 개발의 정의가 ‘새로운 지식이나 원리를 탐색하고 해명해서 그 성과를 실용화하는 일’로 한데 뭉뚱그려 두루뭉술하게 내려지는 데 문제가 숨어있다.

‘연구 개발’ 용어가 주는 오해의 소지가 크다. ‘R&D(Research and Development)’를 ‘연구와 개발’이 아닌 ‘연구 개발’로 편하게 번역함에 따른 결과일 수 있다. 일본과 중국도 그러했지만, 접속사 하나가 빠진 것치고는 지불 대가가 만만찮다. 연구와 개발 중 어느 하나만 잘못돼도 둘 다 실패에 이르는 비합리적 구조를 생성했다. 실패에 대한 원인 규명도 어렵게 만든다. 연구 쪽 흠결인지 개발 쪽 하자인지 명확히 가려내기 힘들다.

사실 연구와 개발은 무척 다르다. 상호 밀접한 관계이나 동일한 업무는 아니다. 동질성보다 이질성이 많다. ‘연구’는 기초연구와 그의 응용을 의미하고, ‘개발’은 연구 성과를 상품화하는 것을 뜻한다. 연구 단계에서는 성능을 구현하고 재현성 확보를 목표로 한다. 개발 단계에서는 원가를 낮추고 작업 공정도 쉽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경쟁자보다 먼저 사업화하는 일정 관리가 주요 목표가 된다.

‘기준’은 힘들어도 세워야 하고, 세우면 지켜야...긴박 틈탄 편의주의는 더 큰 후유증 불러

연구 개발에 대한 생각도 사람마다 다르다. 과제의 성격과 수행 방법을 놓고 옥신각신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연구원은 ‘연구’라 생각하면서 고급 재료, 고가 설비를 쓰면서 성능 구현에만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경영진은 과제 초반부터 '개발'을 염두에 두고 원가나 일정에 초점을 맞춰 관리하는 성향을 나타낸다. 다툼과 엇박자가 늘어나는 실제적 이유다.

부서 역할과 책임 구분이 힘든 중소기업의 경우는 사정이 더욱 딱하다. 연구 개발, 생산, 영업 부서가 각기 기준에 대한 관점을 달리하면서 부서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 쉽다. 생산 차질과 일정 지연에 따른 성과 부실로 이어지기 일쑤다.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시도 건수가 기업당 2012년 5.70건에서 2018년 2.08건으로 줄고, 기술개발 사업화 성공률이 같은 기간 40.4%에서 20.9%로 급락한 것으로 파악된 중소기업기술 통계조사도 이와 무관치 않다.

모든 요소나 상황이 고려되고 만인이 공감하는 기준은 없다. 불완전한 기준을 강제하기도 어렵다. 힘들다고 기준 자체를 세우지 않거나 없애는 것은 더 큰 해악에 속한다. 그런 점에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은 벤치마킹 대상이 아닌 반면교사감으로 평가될지 모른다. 기준은 힘들어도 세워야 하고 세우면 지켜야 한다. 그래야 기준의 가치가 제대로 발휘된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다. 긴박을 틈탄 편의주의는 더 큰 후유증을 부른다.

올해 책정된 연구 개발 예산이 24조2000억원에 이른다. 일부 기업과 대학, 연구소에 배분된다. 전 국민에 지급되는 재난지원금보다 2배나 많다. 연구 개발의 당위성과 국민경제적 기대가 지대함을 말해준다. 나랏돈은 공짜가 아니다. 먼저 본 사람이 임자인 눈먼 돈도 아니다. 중차대한 소명이 부여되고 막중한 책임이 따라붙는 엄연한 공적 자금이다. 합리적 기준을 세워 국민 살림살이와 기업 경영, 나라 경제에 공헌하는 본연의 책무를 다함이 지극히 마땅하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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