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 자발성 가장한 강제성 기부라면 안 하느니만 못해
재난지원금, 자발성 가장한 강제성 기부라면 안 하느니만 못해
  • 권의종
  • 승인 2020.05.1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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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지급으로 결정된 이상 누구나 내키지 않는 기부 강요받아선 안 돼...국민이 시험에 들지 않게 해야

[권의종 칼럼] 재난은 늘 끔찍하다. 얼마 전 이천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에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38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사고 현장이 온통 잿더미로 변했다. 원인 규명이 쉽지 않다. 합동 감식이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우레탄폼 작업 중 발생한 유증기(油蒸氣)가 불씨를 만나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우레탄폼 작업과 승강기 설치를 위한 용접 작업을 함께 한 게 직접적 원인으로 추정된다.

우레탄을 주입하는 과정에서 성분이 분해되면서 화학 반응이 일어난다. 온도가 200도까지 오르며 유증기가 발생된다. 이때 기체가 작은 불꽃이라도 접하게 되면 폭발과 화재를 일으킨다. 이번 사고에서 인명 피해가 유독 심했던 데는 화상에 의한 것보다 가스 흡입 요인이 더 컸다는 분석이다. 우레탄폼에서 발생한 가스는 조금만 마셔도 의식을 잃고 만다.

이런 일을 늘 해오던 작업자들이 위험성을 모를 리 없다. 어째서 그런 작업을 무리하게 강행했는지 이해가 어렵다. 경위를 살펴보면 놀랄 일이 한 둘이 아니다. 안전교육이 없었다. 안전관리도 소홀하기 짝이 없었다. 유증기를 내보낼 환기 장치가 없었는데도 공사 중단 조치를 내리지 않은 관계 당국의 책임도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공기 단축을 위해 여러 작업을 동시에 한 것이 화근을 불렀다. 유증기 발생으로 불꽃이 뛸 수 있는 우레탄폼 작업은 다른 작업과 함께 해서는 안 되었다. 이런 작업 수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약정된 기일 안에 공사를 끝내지 못하면 물게 되는 ‘지체 보상금'이 실제적 원인일 수 있다. 이번 공사만 하더라도 하루 지연 될 때마다 총 공사금액의 0.3%, 1억8천여만 원을 내야 했다. 무리인줄 뻔히 알면서 전기와 도장, 설비 장착 등 여러 작업을 병행했던 것이다.

위험 작업 동시 강행이 화근...‘공기’와 ‘안전’ 함께 강조하면 당장 급한 공기에 집중케 마련

‘공기 단축’은 공사 진행 과정에서 최우선시 되는 과업이다. 현장에 걸려있는 플래카드에 빠지지 않는 단골 표제어다. 작업자 안전모에는 으레 ‘안전제일’의 문구가 표시되어 있다. 안전을 제일로 한다면서 공기 단축을 강조하는 모순된 행동이다. 공기를 단축하려면 안전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공기’와 ‘안전’을 함께 강조하면 당장 급한 공기에 집중케 마련이다. 그 참혹한 결말은 이번 사고로도 여실히 입증되고 말았다.

일상에서도 모순된 메시자가 함께 전달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를테면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초지일관’을 요구한다. ‘과감히 도전하라’ 해놓고 결과가 안 좋으면 '신중치 못함'을 나무란다. ‘창의성 발휘’를 독려하며 ’원리원칙 준수‘를 금과옥조처럼 내세우는 풍조가 여전하다. 창의성은 기존의 사고와 규범, 질서의 탈피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과연 알고나 있는지.

복수의 메시지가 주는 혼란이 크다. 전달받는 입장에서는 난감하게 마련이다. 결과에 따라 과정이 평가된다면 신이 아니고서야 어느 누가 합당한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운이 좋아 일이 잘 풀리면 별일이 없겠으나, 그렇지 못하면 질책과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 여러 메시지가 함께 전달될 경우에는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는 게 맞다. 그래야 일처리가 원활하고 효과가 높아진다.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이 주는 혼란이 작지 않다. 지원금을 ‘소비’할지 ‘기부’할지 다들 생각이 많다. 진정한 정책 목표와 취지가 어느 쪽인지 궁금해 한다. 받자니 눈치가 보이고 기부하자니 아까운 생각이 든다. 문재인 대통령이 1호 기부자가 되었다. 관가와 재계, 금융권으로 기부 바람이 확산되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나 마냥 좋아하기 힘들다. 기부에 동참치 않는 입장에서는 받을 걸 받으면서도 왠지 꺼림칙한 게 사실이다.

‘기부는 자발적으로’...정부가 코로나 재난지원금 지급 취지 소상히 밝혀 국민 혼란 없애야

재난지원금을 두고 기업의 고민이 커 보인다. 대기업은 기부 행렬에 속속 동참하나, 그러지 못하는 기업은 고민이 된다. 경영자는 솔직히 신경이 쓰인다. 기부금을 덜렁 받았다가 혹시라도 정부의 눈 밖에 날까 걱정이 앞선다. 기부 행적이 기록으로 남는 게 영 마음에 걸린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외제차만 타도 세무조사를 받던 망령이 뜬금없이 되살아난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이다.

가정에서도 기부를 둘러싼 부부싸움이 잦다고 들린다. 기부하자는 쪽은 “우리는 그래도 먹고 살만하니 받지 않는 게 좋겠다”는 주장을 편다. 기부를 반대하는 쪽은 “지역경제를 도우려는 정책 취지에 맞춰 받아쓰는 게 맞다”는 의견을 내세운다. 양쪽 주장 공히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다 좋자고 하는 일이 싸움으로까지 번지는 현실이 실로 아이러니다.

논쟁에 청와대까지 가세했다. “기부는 돈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대변인 설명이 있었다. '관제 기부'라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 자발적 기부자를 모욕하는 행위라는 정부 관계자의 발언도 있었다. 재난지원금 지급에 따른 재정 부담을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다. 다만 어차피 전 국민 지급으로 결정된 이상 자발을 가장한 강제성 기부는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다.

공직자, 기업인, 지도층이라 해서 내키지 않는 기부를 강요받아선 안 된다. 기부에 참여치 않는다하여 심적 부담을 느끼는 일도 없어야 한다. 사람마다 생각과 형편이 다른 법. 개개인의 선택이 선악의 이분법으로 재단되면 안 된다. 억지로 먹는 밥이 체하기 쉽다. 이쯤해서 정부가 재난지원금의 취지를 소상히 밝히는 것도 좋을 성싶다. 국민이 시험에 들지 않게 하는 것도 정부가 져야 할 책무에 속한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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