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 준법감시인 경고 무시, 미적대다 美서 1천억원대 벌금
기업은행, 준법감시인 경고 무시, 미적대다 美서 1천억원대 벌금
  • 김태일 기자
  • 승인 2020.05.25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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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지점 자금세탁방지 프로그램 허술하다는 지적에 미온적 대처로 일관
미 사법당국과 제재금에 합의…“책임자 징계하고 재발 방지 시스템 마련해야”
서울 중구에 위치한 기업은행 본사 / 기업은행 제공
서울 중구에 위치한 기업은행 본사 / 기업은행 제공

[서울이코노미뉴스 김태일 기자] IBK기업은행이 미국 뉴욕지점의 자금세탁방지(AML) 프로그램을 개선해야 한다는 준법감시인의 지적과 건의에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가 1000억원 넘는 벌금을 물게 됐다.

기업은행은 2011년 ㄱ무역업체의 이란 제재 위반 사건 관련 위장 거래를 제때 적발하지 못했고, 이에 따라 자금세탁방지법 위반 혐의로 미국 사법당국과 8600만 달러(약 1050억원)의 벌금(제재금) 처분을 받기로 합의했다.

25일 공개된 기업은행과 미국 뉴욕 남부지검 간 합의서에 따르면 양측은 지난달 20일 기업은행이 미국 검찰에 5100만 달러, 뉴욕주 금융청에 3500만 달러를 각각 내기로 합의했다. 

기업은행 뉴욕지점은 이를 통해 2년 기소유예 처분을 받게 됐다. 기업은행이 혐의를 일부 인정하고, 검찰 수사에 협조한 점을 참작해 미 사법당국은 벌금 액수를 줄여준 것으로 전해졌다.

합의서에는 기업은행과 뉴욕지점이 2011~2014년 뉴욕지점에 적절한 자금세탁방지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이행하지 않아 미국 법을 위반했다고 적시됐다. 

뉴욕지점 내 준법감시인의 연이은 요청에도 기업은행은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자원 및 인력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내용도 합의문에 담겼다.

기업은행은 ㄱ업체의 위장거래를 제때 파악하지 못해 송금 중개 과정에서 미국의 자금세탁방지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았다.

미 검찰은 2014년 5월부터 국내 ㄱ무역업체의 대(對)이란 허위거래와 관련해 기업은행을 자금세탁방지법 위반 혐의로 조사해 왔다.

ㄱ업체는 이란과 제3국 간 중계무역을 하면서 위장거래를 통해 2011년 2월부터 그해 7월까지 기업은행에 개설된 이란 중앙은행 명의의 계좌에서 약 50차례에 걸쳐 총 1조원가량을 인출했다. 그리고 원화 결제계좌를 이용해 해외 5~6개국으로 미 달러 등을 송금했다. 

이에 따라 이란이 미국의 금융제재를 피하려고 ㄱ업체를 통해 자금을 세탁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로이터통신은 허위거래 당사자인 ㄱ업체 대표가 현재 80대인 알래스카 시민 ‘케네스 종’(Kenneth Zong)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업은행 원화 결제계좌에서 원화를 달러로 인출해 제3국으로 보내기 위해 대리석 타일 수출 계약서, 청구서, 송장(인보이스) 등을 위조했다고 전했다.

결국 케네스 종은 2016년 이란 제재 위반과 자금세탁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한국 검찰도 그를 구속기소했다. 2013년경 ㄱ업체가 두바이산 대리석 허위거래를 통해 기업은행에 개설된 이란 중앙은행 명의 계좌에서 1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인출한 뒤 해외 여러 국가로 분산 송금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한 데 따른 결과다. 케네스 종은 이 과정에서 170억원가량의 수수료를 챙긴 혐의를 받았다.

기업은행이 자금세탁방지법 위반 혐의로 미국 사법당국 등에 8600만달러 벌금을 내기로 미국 검찰과 합의한 결의서 / 연합뉴스
기업은행이 자금세탁방지법 위반 혐의로 미국 사법당국 등에 8600만달러 벌금을 내기로 미국 검찰과 합의한 결의서 / 연합뉴스

하지만 기업은행은 위장 거래 막바지인 2011년 7월에 가서야 이 사실을 알아챘다. 범죄가 일어나는 5개월 동안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뉴욕지점의 자본세탁방지 수동 프로그램은 위장 거래를 적시에 적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합의문에도 개선되지 않은 프로그램이 대이란 경제 제재 위반 범죄를 제때 적발하지 못한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됐다. 준법감시인의 경고를 무시한 늑장 대응이 결국 화를 부른 셈이다.

당시 기업은행 뉴욕지점의 준법감시인은 한 명이었다. 그는 사건 발생 전인 2010년 초부터 내부 제안서를 통해 수동 프로그램으로는 적시에 자금세탁 거래를 걸러내는 데 한계가 있다고 알렸다. 하지만 이는 무시됐다.

그러자 그는 그해 5월 뉴욕 지점장, 그 이듬해 1월에는 본사 경영진이 포함된 준법감시위원회에 같은 내용을 통보하고 경고했다. 인력 보강도 요청했지만, 사측은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고 준법감시 경험조차 없는 인턴을 배치하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준법감시인은 이 제안을 거절했다. 결국 뉴욕 지점장이 정보기술(IT)팀 직원을 충원했지만, 이 직원 역시 영어가 능통하지 않았고, 준법감시 경험도 없었다.

이뿐만 아니다. 기업은행은 2011년 위장 거래 규모를 1000만달러라고 속여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에 보고했다. 이후 한국 검찰이 2013년 해당 사건 내용을 공개하자 기업은행은 부랴부랴 나머지 9억9000만달러 관련 자료를 OFAC에 보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징계를 받은 기업은행 관련자는 없다.

기업은행 측은 “미 금융당국과 검찰 조사에서 당시 근무 직원 면담 등이 있었다”면서 “개인적 업무 해태나 불법 행위가 있었으면 당연히 처벌을 받았겠지만 그런 내용은 없었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에서도 별도 조치 움직임은 아직까지 없다. 

하지만 시스템이 허술하다는 계속된 지적을 무시하고 미적대다 1000억원대 벌금 처분을 받은 것은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려야 할 중차대한 사안이다. 책임자를 징계하고 재발 방지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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