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환의 의창(醫窓)] 환자와의 이심전심
[안태환의 의창(醫窓)] 환자와의 이심전심
  • 안태환
  • 승인 2020.06.01 15:39
  • 댓글 2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족의 표정과 간절함이 느껴질 때 의사는 환자의 가족이 된다

[안태환 칼럼] 호기롭던 대학시절, 밥 딜런의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를 듣다 가슴이 먹먹해진 적이 있다. 가사에 채색된 서늘한 아픔 때문이다. 잘 알려진 김광석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의 원곡이다.

삶의 모든 균열 들 속에 음악은 그렇게 슬픔으로, 때론 자각으로 배어 든다. 이별은 두 번 생각하지 말아야 될 보편적 슬픔임을 깨닫게 해주는 밥 딜런의 가사는 프로이트의 말과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의사는 불행을 행복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개인적 비극을 보편적 불행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그 시린 생채기를 겁내지 말아야 한다고.

나이 쉰의 문턱을 넘으면 삶의 시련을 숨기는 연기력은 자연스레 는다. 나이의 단단함이다. 가식의 능력이기보다 덤덤함의 내공이 쌓여간다고 해야 옳을 듯하다. 감정의 표현은 인체가 아닌 심장임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건강했던 삶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질병이 찾아와도, 우리는 삶을 지켜내야 한다. 그 늘품한 손 잡음이 의사의 역할이다. 그래서 의사는 마음의 힘이 세야 한다. 그 힘은 환자의 마음을 헤아릴 때 비로소 생성된다.
 
가족이란 질병의 공동체가 된다. 아픈이야 말할 나위가 없지만 그 가족의 두려운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의사로서의 반듯한 태도이다. 가족의 표정과 간절함이 느껴질 때 의사는 환자의 가족이 된다. 아프기를 어느 환자가 바랬겠는가.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잘못으로는 절대로 불행해지지 않는 존재가 인간이어야 한다. 
 
손톱 끝 빛바랜 봉숭아 물처럼 아스라한 의대 시절은 때론 여리고 결백한 목련 꽃 같았다. 오롯하지 못해 내게 없거나 모자란 것들에 스스로 자책했다.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할 지식은 태산이었지만 짊어진 삶의 무게는 신발에 덕지덕지 묻은 진흙 같았다. 내가 갖고 있더라도 내 것이 아닌 것들이 또렷하게 보여서 늘 조급했다. 의사로서 살아갈 미래도 흐릿했다.

고된 의대 생활 속에서의 상반된 감정들이 너무 많이 얽혀 있어서, 주어진 삶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불운을 피하며 살고 싶었고 어쩌면 따분할지도 모르지만 부침 없는 건조한 삶을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억은 언제나 오늘의 성찰 속에서 재구성된다. 나쁜 기억은 추억으로 소환된다. 부단했고 버거웠지만 고난의 과정이 누락되었다면 줏대 없고 공감능력 없는 의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참 고마운 상실과 결핍의 시대였다. 

이야기가 많은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려면 경험이 풍부해야 한다. 그래야 환자에게 할 얘기가 많은 의사가 된다. 밥 딜러의 노래처럼 자신에겐 특별하지만 궁극에는 보편적이었을 아픔을 견디어낸 의사가 환자의 사연을 헤아릴 것이라는 철학은 여전히 유효하다.

많은 환자와 만나 얽히고 설켜야 한다. 임상경험은 의술로서만이 아닌  관계로서 그렇게 재구성되고 참된 의사로 나아간다. 그러하기에 간혹 나 자신에게 묻는다.‘환자를 사랑 하는가’너무 근원적인 질문이지만 의사로서 늘 다짐하는 내면의 살가운 안부이기 때문이다.

아픈 환자를 응시하는 나의 태도는 어쩌면 내가 그 환자에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사람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의사로서의 존재감이다.
치료에 대한 어려움과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환자와 가족들 앞에서 희망의 웃음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환자의 가족으로서 이심전심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했던 청년의사의 시절, 그 설레임과 두려움의 기억들은 환자들과 살며 사랑하며 부대낀 공감의 나이테이다. 환자들에게서 사랑받는 의사가 되기 위한 가장 정확한 방법은 사랑받을만한 의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부단하게 마음공부를 해야 한다. 사람의 존재에게 무능한 의사가 되지 않기 위해.

환자와의 이심전심은 그래야만이 오롯이 재구성된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안태환

▪ 강남프레쉬이비인후과의원 강남본원 대표원장

▪ 이비인후과 전문의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의학박사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 서울 삼성의료원 성균관대학교 외래교수

▪ 대한이비인후과 의사회 전 학술이사

▪ 대한이비인후과 학회 학술위원

▪ 대한미용외과 의학회 부회장

▪ 대한레이저피부모발학회 부회장

▪ 2017년 ‘한국의 명의 100인’ 선정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민용 2020-06-02 14:19:34
아파보면 친절한 의사가 왜 감동인지 알죠 이심전심이란 말 격하게 공감해요~~~

소진영 2020-06-01 18:55:26
이분.........정말 좋은의사분이실듯싶
네여 좋은글 읽었네여

  • (주)서울이코미디어
  • 등록번호 : 서울 아 03055
  • 등록일자 : 2014-03-21
  • 제호 : 서울이코노미뉴스
  • 부회장 : 김명서
  • 대표·편집국장 : 박선화
  • 발행인·편집인 : 박미연
  •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1107호(여의도동, 삼도빌딩)
  • 발행일자 : 2014-04-16
  • 대표전화 : 02-3775-4176
  • 팩스 : 02-3775-41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미연
  • 서울이코노미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서울이코노미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eouleconews@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