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환의 의창(醫窓)] 전염병의 시대, 독서에서 희망을 찾다
[안태환의 의창(醫窓)] 전염병의 시대, 독서에서 희망을 찾다
  • 안태환
  • 승인 2020.06.1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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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환 칼럼] 휴일 오후, 습관처럼 찾은 서점에서 현직 감염 내과 의사인 최영화 아주대 교수의 ‘감염된 독서’를 접했다. 이 책은 ‘책’에 관한 책이다. 의사로서의 일상을 수필처럼 써 내려가면서도 문학 속 감염병을 다루는 서평 집이다. 글은 다독으로 다져진 내공과 사람에 대한 체온을 놓지 않는 감성적 품성이 배어있다.

명문으로 추앙받는 문학작품의 구절들을 감염 내과 전문의로서의 의학적 지식을 절묘하게 버무려 인문학적 향기를 흩날린다. 질병으로 말미암은 죽음과 고통, 절망과 두려움에 신음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저자의 따뜻한 응시는 모든 문장에 절절히 스며있다. 질병과 죽음을 늘 가까이해야 하는 의사의 인생에 대해 같은 길을 걷는 이로써 깊은 여운을 안겨준다.

그녀의 책을 읽으며 자각한다. 범접하기 힘든 문학적 공력도 그러려니 와 환자에 대한 온전한 시선을 따라가기 위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부지런히 읽고 쓰는 일임을 깨달는다. 사람에 대한 반듯한 희망을 의술의 절대가치로 부여잡고 가는 것은 물론이다. 거리두기의 방식으로 고립된 전염병의 시대에 외롭지 않을 유효한 수단으로 독서만큼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감염병의 시대에 살며 고전에서 사람에 대한 해답을 찾기도 한다. 중국 문학계의 덩샤오핑으로 불리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오 싱젠은 문학을 “인간 곤경의 기록”이라고 평했다. 지극히 온당한 말이다. 무릇 질병이 ‘인간 곤경’의 대표적 현상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죽음 앞에서 병마와 사투를 벌이는 의사와 환자의 처연한 태도들은 숱한 문학 작품 속에서 그려지곤 한다. 죽음 앞에서 유약할 수밖에 없어도 돌아봄의 미학을 내재한 사람의 이야기는 그래서 문학의 주된 주제일 것이다.

청빈한 삶을 살다간 인간과 진리를 사랑했던 대문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누구나 한번 즈음은 읽었을 고전이다. 자신의 형, 드미트리가 폐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을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죽음에 대한 성찰을 고스란히 글로 옮겼다.

백여 페이지가 약간 넘는 이 짤막한 소설은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의 글이다. 두세 번 읽어보았을 법도 한데 죽음 앞에서의 인간 내면을 그려낸 톨스토이의 문장들은 의사로서의 삶을 겸허하게 만든다. 삶과 죽음에 대한 거장의 통렬한 자각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 유명한 ‘데카메론’도 그렇다. 코로나19로 국가적 위기를 겪고 있는 이탈리아는 감염병에 취약했던 나라이다. 14세기 이탈리아를 대혼란에 빠뜨렸던 흑사병은 근대 소설의 선구자로 칭송되는 지오바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의 주된 배경이 되었다. 플로렌스의 흑사병을 피해 교외의 별장으로 나간 열 명의 남녀가 열흘간 매일 한 편씩 이어간 100편의 이야기를 모은 형식이다.

흑사병이 가져온 유럽인들의 공포와 사고의 변환을 잘 보여 주는 문학 작품이다. 14세기 흑사병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그리 상세하게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그의 글은 14세기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역사적 기록이기도 하다. 시대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고전문학을 통해 인류는 부단히도 전염병과의 사투를 벌여왔음을 알 수 있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감염병에 대한 인간 내면을 세밀하게 그려낸 문학의 정수리이다. 알제리의 해변도시 오랑에 쥐가 나타남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도시는 아비규환에 휩싸이고 도시는 폐쇄된다. 인간의 도시는 적막한 도시로 변모한다. 초기 대응에 실패한 정부와 고립된 도시의 한계, 집단 공포로 인한 인간 이성의 분열상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카뮈는 그 모든 것들을 인간애가 짙게 깔려 있는 것으로 환치시킨다. 목숨을 바쳐 재앙과 싸운 이들로 인해 페스트는 퇴치되고 오랑시는 재창조된다. 인간의 고통과 절망을 때론 불편하게 묘사하지만 맞잡은 손의 온기가 글의 바탕에 있다.

카뮈의 '페스트'는, '고난이 오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은 공동체의 연대만이 난관을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감염병은 나와 네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협하는 모든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활 속 거리두기를 실천하지만 시민들의 올바른 태도는 따스한 연대이지 외집단을 향한 배척이 아님을 말해준다.

아직은 선선한 6월의 어느 날, 고전 속에서 문학 속에서 감염병으로부터의 시나브로 일탈을 꿈꾸자. 늘 한계에 직면하고 절망하면서도 생명을 향한 반격의 줄기세포를 가지고 있는 존재는 사유하는 인간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명대사처럼 말이다.

we will find a way. We always have.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안태환

▪ 강남프레쉬이비인후과의원 강남본원 대표원장

▪ 이비인후과 전문의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의학박사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 서울 삼성의료원 성균관대학교 외래교수

▪ 대한이비인후과 의사회 전 학술이사

▪ 대한이비인후과 학회 학술위원

▪ 대한미용외과 의학회 부회장

▪ 대한레이저피부모발학회 부회장

▪ 2017년 ‘한국의 명의 100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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