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환의 의창(醫窓)] 조울증 환자에게 피살당한 의사 임세원을 기리며
[안태환의 의창(醫窓)] 조울증 환자에게 피살당한 의사 임세원을 기리며
  • 안태환
  • 승인 2020.06.2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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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청조근정훈장 추서...그러나 의사자 인정 신청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황망한 결정 내려져

[안태환 칼럼] 고((故) 임세원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의과대학교수였다. 한 해를 갈무리하던 2018년 마지막 날, 재직 중이던 병원에서 담당하던 환자에게 피살되었다. 범인은 조울증을 앓고 있었다.

임세원 교수는 생전, 이런 글을 남겼다. “도저히 사실이라고 믿기지 않는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는 왜 이 분이 다른 의사도 많은데 하필 내게 오셨는지 원망스럽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일’이라고 되뇌면서 치유의 여정을 함께한다.” 그가 남긴 말은 울림이 크다. 의사로서 깊이 공감하기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그의 비통한 죽음을 슬퍼하는 조문객 중에는 그를 거쳐 간 환자와 그 가족들이 참으로 많았다. 어느 환자는 이런 편지를 그의 영전에 바쳤다. “선생님 덕분에 시들어가던 제 마음이 희망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랬다. 환자들은 알고 있었다. 그의 헌신이 얼마나 진정성 있는 희생이었는지를. 장례 절차를 마친 후 유족들은 조의금 1억 원을 대한정신건강재단에 기부했다. 가장을 잃은 가족들의 태도는 슬픔보다 의연했다.

우리 사회는 정신질환을 ‘마음의 병’이라고 이해하려 하지만 환자와 그 가족들은 죄인처럼 쉬쉬하며 병을 숨긴다. 편견어린 획일적 시선의 그늘 속에서 힘겨워한다. 정신과 의사들은 그들을 돕는 것을 임세원 같은 ‘나의 일’로 삼아 치유의 여정을 함께 간다. 모든 의사들도 그러하다. 그렇게 의사는 환자의 동반자가 된다.

고(故) 임세원 교수가 우리 곁을 떠난 지 일 년 반이 속절없이 흘렀다. 그 이후 일명 임세원법. 의료인을 안전을 강화한 의료법 개정안이 마련됐다. 그러나 여전히 진료실의 안전은 위협받고 있으며 사고는 끊이질 않는다. 많은 변화가 이뤄졌다 하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근본적 해결책'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의료현장은 여전히 위험천만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4월 고(故) 임세원 교수에게 청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고인이 생전, 자살 예방과 정신건강 증진에 애쓴 공로를 기리고 타인을 살리기 위한 숭고한 희생정신을 인정해서이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훈장 추서 두 달 후인 지난해 6월, 복지부 의사상자 심사위원회는 임 교수에 대한 의사자 인정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황망한 결정을 내렸다.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정한 의사자 요건 가운데 ‘직접적·적극적 행위’를 했다고 볼 근거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고인이 간호사들을 대피시킨 정황은 확인되었지만 ‘직접적·적극적 구조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인의 경우처럼 ‘의로운 죽음’으로 알려진 경우라 해도 의사자로 인정받기란 이처럼 쉽지 않다. 의로운 이들을 우리 사회가 예우해야 한다는 의사상자법 제정 취지와 맞지 않다. 현실이 그렇다.

고(故) 임세원 교수 유족은 지난해 9월 서울행정법원에 “의사자 불인정 결정을 취소해달라”라는 행정소송을 냈다. 선고는 여름이 끝나갈 8월 말에 내려진다. 생의 마지막까지 정의로웠던 ‘의사 임세원’을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해주는 일, 의사자로서의 인정이다. 그것이 그의 죽음 앞에 우리사회가 갖추어야 될 최소한의 예의이다. 의사로서의 그의 숭고한 삶을 기리는 공동체의 태도이다.

의사의 ‘사’는 스승 사(師)를 쓴다. 다른 직업의 사(士)와는 의미가 다르다. 특별해서가 아니다. 스승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환자이다. 스승 사를 몸소 실천한 고(故) 임세현, 그는 참된 의사이자 환자에게 귀감이 되는 좋은 스승이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안태환

▪ 강남프레쉬이비인후과의원 강남본원 대표원장

▪ 이비인후과 전문의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의학박사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 서울 삼성의료원 성균관대학교 외래교수

▪ 대한이비인후과 의사회 전 학술이사

▪ 대한이비인후과 학회 학술위원

▪ 대한미용외과 의학회 부회장

▪ 대한레이저피부모발학회 부회장

▪ 2017년 ‘한국의 명의 100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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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습니다 2020-07-01 06:25:0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마음이 아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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