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환의 의창(醫窓)] 닥터 지바고와 의사의 길
[안태환의 의창(醫窓)] 닥터 지바고와 의사의 길
  • 안태환
  • 승인 2020.07.1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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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과 현실의 괴리 앞에 갈등...종국에는 사랑을 찾아 의사의 길을 걸어갔던 지바고

[안태환 칼럼] 러시아 문학, 정수리에 위치한 천재 시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는 국내 출간 기준, 668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소설이다. 의사의 삶에 대한 가치를 되물어 보는 작가의 자전적 작품이기도 하다. 시인이었던 파스테르나크의 유일한 장편소설이지만, 책의 말미에는 스물다섯 편의 시도 실려 있어 시인으로서 그의 내공도 확인할 수 있다.

자유롭지 않은 세상의 한계를 뛰어넘어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이 소설은 데이비드 린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하며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1968년, 개봉되었지만 지금도 간혹 텔레비전에서 상영되는 고전 명화이기도 하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지바고를 연기했던 배우 오마 샤리프의 우수에 찬 눈빛은 세계 여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닥터 지바고는 작가 파스테르나크에게 노벨 문학상의 영예를 주고 또한 그 영예를 거부하도록 만든 작품이다. 195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지만, 그의 작품이 사회주의 혁명에 부정적이라는 이유로 소련 정부와 작가동맹의 압박에 수상을 포기했다. 사후 27년 만인 1987년에야 그는 복권됐고, 노벨상은 후에 아들이 대신 받았다. 그리고 그의 문학은 전설로 남았다.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의사이지만 닥터 지바고는 내게 여러 의미를 선사해준 인문학의 선물이다. 소설은 20세기 초, 러시아 격변기를 배경으로 의사 지바고의 삶과 사랑 그리고 지식인으로서의 고뇌를 그렸다.

의사라는 직업 속에 혁명을 꿈꾸면서도 역사적 소명보다 개인의 성찰을 중시하는 일상의 자세는 소시민적 삶을 살아가고 있던 내게 직간접적 영향을 끼쳤다. 어쩌면‘글 쓰는 의사’지바고의 모습에서 현실에 안주했던 나를 돌아보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날 의사로서의 고된 일상 후에도 글쓰기의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 동기로 작동되었음은 분명하다. 날선 구호에 물든 붉은 혁명의 환상을 거부하고 유폐되기를 택한 당대 지식인의 모습은 어쩌면 소설의 시대 배경인 러시아 혁명, 백 년이 지난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성찰의 화두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굴곡진 격동기에 의사로서 시인으로서 앞날을 촉망받던 주인공 유리 지바고의 윤택했던 삶은 개인의 생활과 존엄, 인간다운 감정조차 허용되지 않는 수난의 시대에 속절없이 함몰된다. 소설 속 다양한 인물의 상징적인 일상들은 시간의 교차 속에 이념의 그물로 자유를 속박하지만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무한궤도와도 같다. 그러고 보니 러시아 혁명의 중심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도시 명칭도 닥터 지바고의 등장인물들의 삶처럼 그러했다.

독일식 이름이라는 이유로 제1차 세계 대전 후 ‘페트로그라드’로 바뀌었다가 레닌 사후 ‘레닌그라드’로 개명되었고 1991년 소련 해체 후에는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환원되었다. 러시아제국이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이름으로 진행시켜온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로 끝나고, 1991년 다시 '러시아'로 회귀한 것도 우연의 일치는 아니다. 이념도 사람도 자연의 순리처럼 모든 것들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환류 된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는 ‘닥터 지바고’를 '사랑의 책'이라고 평했다. 소설이 관념적이고 정치적인 이분법적 해석을 넘어 우리 주변의 보편적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기대했던 모습과 다르고 미리부터 갖고 있던 관념과 어긋나는 건 좋은 일입니다. 하나의 유형에 속한다는 것은 그 인간의 종말이자 선고를 의미하니까요.”- ‘닥터 지바고’ 본문 중.

판에 박힌 듯 정형화된 획일적 질서는 인간의 자유를 속박한다. 의사로서 환자에 대한 규범화된 편견은 스스로의 유연함을 단절시키고 인술을 펼칠 기회를 박탈하는 우를 범한다. 자유와 사랑에 대한 오롯한 인본의 가치는 인술의 놓을 수 없는 절대가치이다. 내게 의사로서 혁명은, 지바고가 그러했듯이 일상의 사랑과 인본주의가 생동하는 의료 서비스의 구현이다.

화려하고 빛나진 않지만 흔하고 너른 들풀의 자태로 사람에 대한 희망을 놓치지 않았던 지바고. 혁명과 현실의 괴리 앞에 갈등하며 종국에는 사랑을 찾아 의사의 길을 걸어갔던 지바고. 그는 가늠하기 힘든 의료현실 속에 표류하던 내게 환자를 향해 걸어가라는 삶의 좌표가 되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안태환

▪ 강남프레쉬이비인후과의원 강남본원 대표원장

▪ 이비인후과 전문의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의학박사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 서울 삼성의료원 성균관대학교 외래교수

▪ 대한이비인후과 의사회 전 학술이사

▪ 대한이비인후과 학회 학술위원

▪ 대한미용외과 의학회 부회장

▪ 대한레이저피부모발학회 부회장

▪ 2017년 ‘한국의 명의 100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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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선 2020-07-14 17:34:51
닥터 지바고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글을 읽고 다시 보고싶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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