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日 수출규제 따질 패널 설치…한일 법리 다툼 본격화
WTO, 日 수출규제 따질 패널 설치…한일 법리 다툼 본격화
  • 김태일 기자
  • 승인 2020.07.30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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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반대로 우여곡절 끝에 규정에 따라 자동 설치...최종 판단까지 1년 넘게 걸릴 듯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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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코노미뉴스 김태일 기자] 한국에 대한 일본의 일방적 수출 규제가 정당한지를 따지는 국제 소송 절차가 본격 개시됐다. 

일본은 지난해 7월부터 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 불화 폴리이미드,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의 대한국 수출을 사실상 금지시켜 양국간 무역분쟁을 확산시켰고 상황은 1년이 지나도록 계속되고 있다.

30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9일(현시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무역기구(WTO) 분쟁해결기구(DSB) 정례회의에서 회원국들은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 분쟁을 다룰 패널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패널은 국제 분쟁 심리를 맡는 1심 재판부 격이다. 국제 소송이 본격적인 절차에 착수한다는 신호탄이다.

이번 패널 설치는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9월 수출 규제 건을 WTO에 제소했다. 그해 11월 절차를 잠정 중단했다가, 일본의 지지부진한 태도가 이어지자 지난달 29일 WTO에 패널 설치를 요구했다. 하지만 일본이 격렬히 반대해 무산됐다.

한국 정부는 재차 패널 설치를 요청했다. 이번에도 일본은 반대표를 던졌지만, WTO 규정상 2차 요청부터는 회원국 전부가 거부하지 않으면 패널이 자동 설치된다. 모든 회원국이 반대하지는 않은 덕분에 패널 설치가 성사됐다.

이에 일본은 즉각 반발했다. 이날 주제네바 일본대표부는 브리핑을 열어 “일본의 조치는 이중 사용 품목에 대한 수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확립된 관행에 부합한다”면서 “한국의 패널 설치 요청에 깊이 실망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본은 민수용으로 사용되는 것이 확인되면 수출 제한 3개 품목에 대한 수출을 허가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수출 제한 품목들이 북한 등 제재국 무기 제조 과정에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일본 언론은 ‘한일 대립 장기화’를 전망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이날 요미우리 신문은 '한일 WTO 패널 설치...대립 장기화와 한층 심각화 결정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아사히 신문, 니혼게이자이 신문 역시 유사한 논조의 기사를 통해 분쟁 장기화 가능성을 내다봤다.

하지만 일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패널이 설치된 만큼 한국 정부는 일본의 조치가 WTO 협정에 위배된다는 점을 적극 입증할 계획이다.

우선 산업부는 조만간 WTO 사무국에 패널 위원 선정 요건을 보낼 예정이다. 그러면 사무국은 이에 부합하는 후보군을 선정한다. 이후 한국과 일본의 의사를 묻는다. 양국이 합의하는 위원은 자동으로 선임되고, 의견이 엇갈리면 WTO 사무국에서 직권으로 위원을 정할 수 있다. 패널 위원은 총 3명으로 구성되는데, 일종의 판사 역할을 수행한다.

패널 위원 선정 이후는 서면 공방, 구두 심리 등 쟁송 절차다. 최종 판정까지 통상 10~13개월 정도 걸린다. 물론 이에 대한 불복도 가능하다. 양국 중 한쪽이 상소하면 최종 상소 기구에서 재판정한다. 이 경우 최종 판정까지 4개월가량 더 소요된다. 한국이 승고한 ‘후쿠시마 수산물’ WTO 분쟁 소송도 4년여가 걸린 만큼 기간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국제무역기구(WTO) 로고 / 연합뉴스
국제무역기구(WTO) 로고 / 연합뉴스

WTO 마비 탓에 예상보다 시간 더 걸릴 듯...산업부는 '승리' 다짐

산업부는 이번 일본과의 소송전에서 승리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수출 규제의 부당성을 국제무대에서 공인받겠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정치·경제적으로 경색된 한일 관계를 풀어보겠다는 계획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산업부의 입증 능력과 별도로 WTO를 둘러싼 외부 요인 탓에 그 의지가 실현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다수 나온다. 우선 최종 판단이 나오기까지 상당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 문제다. 상소 기구 판정까지 치면 1년을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소송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한일 관계가 개선될 여지는 크지 않고, 오히려 악화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마저도 패널이 정상적으로 작동했을 경우의 이야기다. 하지만 현재 WTO 상소기구는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미·중 무역 분쟁에서 WTO는 사실상 중재 능력을 상실한 모습을 보이는 데다, 미국이 미중 교착상태의 책임을 WTO에 물어 상소 기구 차기 재판 위원 선임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상소 기구의 최종 판단 이후도 신경 써야 한다. 일본이 해당 판단을 이행하지 않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WTO가 일본 수출 규제가 부당하다는 판단을 내려도, 일본은 우회적 혹은 다른 형태의 규제 방식을 개발해 실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향후 소송 과정에서 ‘일본 수출규제는 자의적이고 차별적인 무역제한 조치로 WTO 협정에 어긋난다’는 점을 충실히 입증하고 일본에 조치의 조속한 철회를 촉구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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