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코노미뉴스 김태일 기자] 부당 전보 발령과 상사의 보복에 못 이겨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직원에 대한 산업재해가 인정됐다. 산재 인정까지 9개월이 걸렸다.
사망한 코레일 직원 ㄱ씨 유족은 ‘업무상 사망으로 인정된다’는 내용의 근로복지공단 판정서를 31일 공개했다.
판정서에 따르면 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ㄱ씨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업무상 스트레스가 가중된 것으로 판단되고 개인적 스트레스가 없었던 점 등을 종합하면, 고인이 압박과 부담 속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위원 7명 전원 업무상 질병 여부를 인정했다.
ㄱ씨는 코레일 광주본부 소속 시설관리원으로 일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사측은 일방적으로 전보를 통보했다. 다른 지역으로 가라는 지시였다. 노조 대의원이라 노조와 협의를 해야 한다는 규정도 지키지 않았다. 부당 전보라고 받아들인 ㄱ씨는 즉각 항의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상사의 괴롭힘뿐이었다.
상사는 5가지 복무규율을 전파하도록 지시했다. 점심 취사 금지, 퇴근 전 15분 이내 복귀, 3~4시간 연속 근무, 미 준수 시 경위서 작성 등이었다. 사무실이 아닌 현장 근무를 하는 ㄱ씨와 동료들이 사실상 지킬 수 없는 사항들이었다. 해당 상사는 ㄱ씨가 소속된 시설반을 찾아 복무 점검을 실시하기도 했다.
해당 복무 지침들이 회사 전체로 점차 확산되자 ㄱ씨는 지속적으로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자신 때문에 동료들까지 피해보고 있어 죄책감을 느낀다는 문자 메시지도 뒤늦게 공개됐다. 노조가 나섰지만, 성명서에 ㄱ씨 근무지가 기재되면서 심적 압박은 되레 커졌다.
결국 ㄱ씨는 지난해 11월 11일 오전 화순군 철도공사 시설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 안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ㄱ씨 사망 직후 코레일은 자체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은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전보 과정은 규정대로 이뤄졌고, 상사의 보복 사실도 인정하지 않았다. 사업소장이 직원들에게 시골집 울타리로 쓸 대나무를 잘라오도록 지시한 일에 대해서만 징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번 판정위원회 판단은 달랐다. 코레일과 해당 상사의 조치 및 행위는 ㄱ씨의 인사 발령 항의에 따른 보복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ㄱ씨가 이러한 압박 속에 정신 건강이 악화되는 등 업무상 과중한 스트레스를 받은 점도 인정했다. 또 노조 대의원 전보는 단체 협약에 따라 노조와 협의해야 하는데, 코레일이 당사자 의견 청취는 물론 노조와의 협의도 없이 인사 발령을 통보한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코레일은 “산업재해 승인 기준과 특별감사 당시 조사한 기준은 다르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다만 “직원 교육과 조직 문화 개선 등을 통한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족 측은 이번 판정에 대해 “코레일 측 감사가 잘못됐음이 증명된 셈”이라며 “코레일에 재조사를 요구하고, 감사 관련자들에 대한 징계도 요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인 사망에 책임 있는 코레일과 노조에 대한 고발, 민사소송 등 법적 대응도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매제의 억울한 죽음을 풀어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오기도 했다. 해당 청원에는 5000명 넘는 인원이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