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수은 등 국책은행 지방이전...명분과 실익 약하고, 시기도 부적절
산은-수은 등 국책은행 지방이전...명분과 실익 약하고, 시기도 부적절
  • 권의종
  • 승인 2020.08.0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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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거론치 못하도록 '대못' 박고...금융을 국가 기간(基幹)산업으로 업그레이드하는 특단의 노력 기울여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추가 이전이 가능한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 현황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어 정부 여당이 공공기관 이전 논의에 착수하면서 다양한 시나리오가 쏟아진다.

크게 두 갈래의 상반된 기류다. 모든 공공기관은 물론 출자기업까지 이전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수도권 346개 공공기관 가운데 업무 특성상 이전 가능한 100곳 안팎만 내려 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책은행 지방이전을 지역 균형발전의 논리로 추진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금융산업 경쟁력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 설령 세종시를 행정수도로 한다 해도 서울은 경제수도로 남는 게 맞다. 행정은 분산이 가능하나 금융은 그렇지 못하다. 집중화를 통해 경쟁력이 창출되는 속성 때문이다. 영국의 시티 오브 런던, 뉴욕의 월스트리트가 대표적 사례다. 다수 금융사들이 밀집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금융공기업 지방이전의 부작용이 생각보다 크다. 집적효과 약화와 우수인재 유출로 경쟁력 침하의 정도가 넓고 깊다. 서울은 2015년 이후 1차 공공기관 이전에 따라 금융기관이 지방으로 산재되면서 경쟁력이 크게 저하된 상태다. 신용보증기금, 자산관리공사, 한국거래소 등의 지방이전도 솔직히 금융산업 경쟁력 강화와 동떨어진 일이었다.

지방소재 공기업이 겪는 비대면의 비효율과 불편함이 작지 않다. 코로나19로 언택트 시대가 도래되었으나 컨택트 관행이 여전하다. 금융경제연구소가 발간한 ‘국책은행 지방이전의 타당성 연구보고서’만 봐도 알 수 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공공기관 전체 출장횟수는 28.3% 증가했고, 출장비는 36.2% 늘어난 것으로 조사되었다.

금융공기업 지방이전 폐해 많아...집적 효과 약화, 인재유출 심화로 경쟁력 침하 넓고 깊어

문제가 어디 비용 뿐이랴. 시간 낭비도 만만치 않다. 서울에 있는 국회 가랴 금융위원회 가랴, 정부 부처들이 소재한 세종시 들르랴, 지방 공기업의 임직원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게다가 각종 회의, 협의, 보고는 어찌 그리 많은지. 한 주일에 며칠은 서울에서 보내고, 일과의 상당 시간을 길 위에서 허비할 때가 많다. 업무경쟁력이 소리 없이 시들고 있다.

지방이전에 따른 퇴직 증가로 인력수급마저 어렵다. 신규인력 확보가 힘들고 기존 직원의 이탈이 심하다. 우수 인재가 속속 조직을 떠난다. 신입직원의 동요도 못지않다. 나이, 성적, 전공을 묻지 않는 블라인드 전형을 발판삼아 수도권 공기업 직원모집에 계속 응하는 게 관례처럼 되었다. 재수는 필수, 3수나 4수는 선택으로 통한다. 30대 중반에 근접하는 신입직원 평균연령을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다. 그저 시대적 추세려니 여기며 다들 무심코 넘기고 있다.

국책은행 지방이전은 시기적으로도 적절하지 못하다. 동북아 금융허브를 하겠다면서 국책은행 이전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앞뒤가 안 맞다.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아시아 금융중심지 기능을 해온 홍콩을 보라. 비교우위의 경쟁력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중국 본토와 서방 세계를 연결하는 관문 역할 수행을 위해 오랜 기간 인프라를 쌓고 다져온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런 홍콩도 국가보안법 시행을 계기로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 했던가. 마치 이를 기다렸다는 듯 인근 주요 도시들이 ‘홍콩의 빈자리’ 차지에 혈안이다. ‘제2의 홍콩’ 지위를 두고 벌이는 각축전이 치열하다. 싱가포르, 도쿄 등은 금융을 미래 성장산업으로 천명하고 집적화로 경쟁력을 키워왔던 터. 서방 자본의 헥시트(HKexit) 호기를 놓치려할 리 없다.

국가보안법 시행으로 서방 자본의 헥시트(HKexit) 호기...아는지 모르는지 한국만 태연자약

한국만 예외다. 태연자약하다. 국제 금융시장의 엄청난 지각변동에 대한 기민한 대처는 고사하고 지금이 더없는 기회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 금융허브로 성장할 지리적 이점을 살리기는커녕 국책은행 분산으로 그나마 허약한 경쟁력마저 자해하려 들고 있다. 저절로 굴러온 복을 제 발로 걷어차는 격이 될까 걱정이 크다.

한국의 금융경쟁력은 지금도 하위권이다. 서울의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순위는 지난해 36위에 불과하다. 4위인 싱가포르와 6위인 도쿄와는 비교조차 민망할 정도로 뒤처져 있다.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국책은행 분산으로 에너지를 소진한다면 앞선 도시들과의 지수 차이는 더 벌어질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주창했던 동북아 금융중심지의 포부는 한바탕의 봄꿈에 그치고 말 것이다.

금융의 역할 변화를 간파해야 한다. 1970~1980년대 개발시대처럼 금융을 단지 산업의 돈줄 정도로 이해하는 후진적 사고는 더 이상 쓸모가 없다. 지속가능한 성장과 산업고도화를 통한 선진경제로의 도약을 위해서는 실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뒷받침할 금융산업의 혁신적 발달이 선행 또는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 걸맞게 금융을 국가 기간(基幹)산업으로 업그레이드하는 특단의 노력이 경주될 때다.

고객관리는 경영의 최우선 과제이다. 고객이 수도권에 잔류한 상황에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지방이전은 고객 만족은 커녕 고객 불만만 키울 뿐이다. 설령 본점이 지방으로 내려가도 영업조직은 고객과 함께 서울에 남아야 한다. 소수의 지원부서만 내려갈 경우 지역발전에 모멘텀이 되기 어렵다. 명분과 실익이 약하고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한 국책은행 지방이전. 이참에 안하기로 깔끔히 결론내고 더 이상 거론치 못하도록 아예 대못을 박으면 좋을 것 같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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