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크 필드 그림의 속사정과 의사 파업
루크 필드 그림의 속사정과 의사 파업
  • 안태환
  • 승인 2020.08.25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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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앞에서 참을 수 없는 의사로서의 애틋함을 반듯하게 유지하는 일..이번 의사 파업에 대한 애절함

[안태환 칼럼] 영국 화가, 루크 필즈의 그림들은 늘 사회적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1891년에 그려진‘의사’가 대표적이다. 생명의 존엄성과 의술의 숭고함을 대중들에게 크게 일깨워준 작품으로 자녀의 죽음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알려져 있다. 죽음을 앞둔 자신의 아이를 정성스럽게 치료하는 의사의 헌신적 모습을 석유등 빛과 여명의 빛, 두 개의 광원으로 절묘하게 배치한 수작이다.

루크 필즈는 평생 동안 빛의 효과를 추구한 화가 조셉 라이트와 더불어 영국에서는 빛의 작가로도 평가받는다. 나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의사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 그림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루크 필즈의 ‘의사’는 친절한 의사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의사라는 직업이 태동한 것은 주술적 의술이 성행했던 고대, 마술사에서 유래되었다. 바빌로니아나 이집트에서 의사는 마술사를 겸하였다. 가치 없는 역사는 없다지만 참으로 황당한 일이었다. 그리스에서 의업은 이발사가 그러했듯이 온전한 자유업이었으며, 경험 많은 선배로부터 도제교육을 받았다. 생명을 다루었지만 비 과학의 시대였다. 르네상스 이후 주술적이며 종교적인 의료는 쇠퇴하고, 임상적 경험을 모태로 한 과학적 의료가 비로서 발달했다.

그러나 서민들이 갑당하기엔 의료비는 막대하여 외면을 받았다. 비용이 저렴한 무자격자의 진료를 받는 것이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변화무쌍한 인류의 질병은 과학적 학문의 바탕을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체계적으로 의사를 양성하는 대학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 시작은 800년대 후반 설립된 이탈리아의 살레르노 의과대학이다.

18세기 들어 의사법이 제정되고 의사의 사회적 지위가 법적으로 확립되었다, 의술은 단순히 영리수단이 아닌 숭고한 인간존중의 과학으로 거듭났으며 환자의 인권도 비약적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고전적 의미에서 의사란 의료를 업으로 하는 사람을 통칭하였으나, 오늘날 의료법은 의사가 되고자 하는 자는 일정한 자격을 갖추어야 하며, 국가시험에 합격한 뒤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면허를 받아야 한다. 그만큼 의사의 사회적 책임과 의무는 강화되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 있다. 우리나라의 전문의 제도는 미국 의료제도의 영향을 받아 1952년부터 실시되었다. 모든 나라가 채택한 제도는 아니다. 미국을 위시하여 몇몇 선진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전문의 제도는 일정한 수련병원 또는 수련기관에서 법령에서 정한 기간의 수련을 마치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실시하는 전문의 자격시험에 합격하여야 만이 그 자격이 주어진다.

전문의 제도는 임상 각 분야에 있어 단일과목을 전공하는 의사를 양성하여 그들로 하여금 의료 전 과목에 관한 기본적 이론과 실기를 교육받은 일반의사의 능력에서 벗어나는 진료기능을 요구 받는다. 보다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위한 스페셜 리스트를 만드는 과정인 것이다. 그런 전문의 과정을 밟는 이들이 파업을 선언하였다. 몹쓸 감염병으로 사회적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사실, 세상에 모든 파업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각자의 일손을 놓아 실력 행사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손을 놓으니 이렇게 많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가. 우리의 요구를 들어 달라. 이것이 파업을 통해 당사자들이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그러니 파업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고 불편함을 끼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파업은 파업이라 할 수 없다.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말할 것이다. 노동자의 파업과 의사의 파업은 다르다. 그러나 본질은 같다. 더욱이 정부로부터 정책적 영향을 크게 받는 의료인들에게 있어 정책협상의 대상은 정부일 수 밖에 없다. 민간 부분의 여타 노동자의 파업과 다른 이유이다.

당장 국민들에게 커다란 불편을 주더라도 파업을 통해 의료 환경의 조건이 개선되면 그것은 결국 국민 모두를 위해 좋은 일이다. 의사 파업은 당장은 불편만을 주는 것 같지만 의료 조건이 개선되면 그것은 다시 새로운 선진 의료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루크 필즈의 그림 ‘의사’를 다시 본다. 턱을 괸 의사에게는 꺼져가는 어린 생명 앞에 무력한 인간의 한계와 안타까움이 절절히 묻어난다. 생명 앞에서 참을 수 없는 의사로서의 애틋함을 반듯하게 유지하는 일. 이번 의사 파업에 대한 애절한 속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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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안태환

▪ 강남프레쉬이비인후과의원 강남본원 대표원장

▪ 이비인후과 전문의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의학박사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 서울 삼성의료원 성균관대학교 외래교수

▪ 대한이비인후과 의사회 전 학술이사

▪ 대한이비인후과 학회 학술위원

▪ 대한미용외과 의학회 부회장

▪ 대한레이저피부모발학회 부회장

▪ 2017년 ‘한국의 명의 100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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