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휴진과 합리적 의심
집단 휴진과 합리적 의심
  • 안태환
  • 승인 2020.09.0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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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의사결정의 건강함을 따르고, 권위가 아닌 합리적 민주주의의 힘을 믿는 것이 시민의 힘

[안태환 칼럼] 인간의 본성인 의심은 때론 합리적이면서도 불온하다. 절대적인 진실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 자신의 모든 믿음을 의심한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의 ‘방법 서설’은 의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함으로써 믿음의 근거를 찾으려고 한 그의 저서이다. 학창시절 사뭇 이해가 잘 안되었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유명한 명제가 결론으로 도출된다.

한계는 있다. 의심을 연거푸 의심한다면 진실의 유무를 떠나 존재는 유실된다. 역사가 그러하다. 인간의 의심과 신뢰의 문제에 대해 미국의 사회학자 피터 버거와 네덜란드 사회학자 안톤 지더벨트의 ‘의심에 대한 옹호’는 탁월한 식견을 제시한다. 책의 부제는 ‘믿음의 폭력성을 치유하기 위한 의심의 계보학(系譜學)’이다. 무수한 선택을 강요받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믿음이 아니라 의심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의심은 딴죽을 걸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진리를 찾으려는 인간의 성찰이다. 데카르트의 의심과 맥을 같이 한다.

합리적 의심은 건강한 사회의 조건이다. 비록 의심으로 평가절하 되더라도 다양한 사고에서 비롯된 의심은 사회를 건강하게 지탱하는 힘이다. 다른 생각이 많아져야 창의적 사회로 도약한다. 근본주의는 ‘의심의 배척’이다. 그러나 민주 사회에서의 의심은 그릇된 판단을 유보한다. 섣부른 결정에 대한 필터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의심이 의심받아야 할 때가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피터 버거와 안톤 지더벨트의 말을 빌리자면 ‘건전한 의심’이다. 역설적이지만 인간에 대한 믿음의 본령이다. 다시 말해 ‘건전한 의심’은 휴머니즘에 근거한다고 이들은 역설한다. 고약한 불신이 아닌 인간의 한계를 보완하는 오롯한 기대를 뜻한다.

의사가 그러하다. 질병의 발달사에서 의사의 합리적 의심은 오늘날의 눈부신 의학의 발전을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고지순하게 믿어왔던 의학정보는 어느 순간 과학기술의 발달과 숱한 임상경험이 축적되어 또 다른 진실과 마주한다.

역사는 진실대로 현실은 희망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그래야 위선과 가공된 정보로 상대를 자극하는 혹세무민의 현실을 타개할 수 있다. 사회 공동체의 튼실함을 위해 진실로 가는 첫걸음은 ‘합리적 의심’이다. ‘건전한 의심’이다.

믿고 싶은 주장에 천착하고 편취된 현상을 이용해 사익을 취하는 극단적 세력이 득세하는 시대에서 우리 사회 건강한 공동체를 지키는 것은 합리적으로 건전하게 의심하는 것이다. 복지국가로 나아가야 되는 이 절박한 시기에 극단에서 소용돌이치는 건강한 의심조차 진영논리에 포획당하고 이기주의로 폄하된다면 한국 사회는 동력을 상실한다. 우린 이미 그 현실에 마주하고 있다.

단언컨대 건강한 주장은 몽니가 없다. 균형 잡힌 합리적 의심의 토대 위에 다른 의견에도 발끈하지 않으며 입장의 차이라고 포용하는 자세가 사회통합의 단초라고 여긴다. 주장을 맹신하지 말고 시민으로서의 역사적 경험에 기대여 의심해 보고, 열린 의사결정의 건강함을 따르고, 권위가 아닌 합리적 민주주의의 힘을 믿는 것이 시민의 힘이다.

마냥 밥그릇 싸움이라며 평가 절하하는 의사들의 집단휴진을 한걸음 더 들어가서 바라보아야 될 이유이다. 언론보도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해봐야 되는 이유이다.

의학의 역사는 늘 ‘합리적 의심’을 옹호해 왔다. 그렇게 인류는 진일보해 왔다. 의사는 환자의 질환을 치료하고자 발병의 원인을 늘 의심한다. 나아가 지금 하고 있는 치료가 최선인지도 늘 의심해 본다. 이기주의로 낙인찍힌 의사 파업의 고약함 속에서도 이 사실은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안태환

▪ 강남프레쉬이비인후과의원 강남본원 대표원장

▪ 이비인후과 전문의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의학박사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 서울 삼성의료원 성균관대학교 외래교수

▪ 대한이비인후과 의사회 전 학술이사

▪ 대한이비인후과 학회 학술위원

▪ 대한미용외과 의학회 부회장

▪ 대한레이저피부모발학회 부회장

▪ 2017년 ‘한국의 명의 100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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