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뜨거운 ‘이(李)비어천가’...이동걸 산은 회장은 정치인인가?
낯뜨거운 ‘이(李)비어천가’...이동걸 산은 회장은 정치인인가?
  • 최영준 기자
  • 승인 2020.09.2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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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전 대표 출판기념회서 국책은행장이 나서서 “가자, 20년!” 외치며 與 찬양, '연임신화' 퇴색
윤석헌 금감원장, 李 전 대표에 꽃다발 전하며 세 번이나 굽신...금융권 “정치적 휘둘림 빌미 제공”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서울이코노미뉴스 최영준 기자]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집권여당과 전 대표를 칭송하는 '낯뜨거운' 발언을 해 구설수에 올랐다. 객관적이고 냉철한 판단이 요구되는 국책은행 수장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훼손한 모습이라는 비판이다.

산업은행 역사상 26년 만의 연임 성공이라는 이동걸 회장의 신화가 결국 능력이 아닌 여권실세들과의 인맥 때문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시킨 꼴이다. 금융권에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요즘 비난과 공격을 받을 소지를 스스로 제공했다는 비난도 나온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동걸 회장은 지난 22일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전기 ‘나의 인생 국민에게’ 발간 축하연에 참석해 건배사를 자청했다.

이 회장은 축하 케익 커팅식이 끝난 뒤 축배를 드는 순서 때 문제의 건배사를 했다. 이 회장은 스스로를 "비 정치인"이라고 소개하며 "(이 전 대표가) 당대표를 맡으시며 정말 많은 일을 하고 씨앗을 뿌렸는데, 저한테 가장 절실하게 다가온 말 중 하나는 '우리가 20년 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던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이 회장은 “민주 정부가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놓으면 그게 얼마나 빨리 허물어지는지 봤기 때문에 절실한 심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나의 인생 국민에게' 라는 이 전 대표와 한마음으로 우리 모두의 인생을 국민에게 바치고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합심해 좋은 나라, 위대한 나라, 일류국가를 만드는데 합심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자리를 빌어서 ‘이해찬’하면 열심히 하자는 취지에서 ‘가자’라고 말씀드리면 모두가 ‘20년’이라고 말해달라”라고 정치행사를 방불케 이해찬 찬사를 유도했다. 여당 의원이 아닌 국책은행 수장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일부 참석자들은 생뚱맞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었다.

건배사를 통한 이 전 대표에 대한 찬사는 사실상 '과잉충성'으로 해석되며 논란을 자초한 셈이 됐다.

금융권 안팎에선 이 전 대표의 사실상 은퇴식이나 마찬가지인 자리에 현역 금융공공기관장들이 등장한 것을 두고 "이 전 대표의 위세가 여전할 것임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전 대표가 은퇴 후에도 차기 대선 등 주요 정치적 현안에서 '막후 킹메이커'로서 정부·여당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란 평가가 나왔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턴조선호텔에서 열린 자신의 전기 '나의 인생 국민에게' 발간 축하연에서 윤석현(왼쪽) 금융감독원장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금융권 “금융이 정치적으로 이용 당하면 절대적으로 안되는데 정치적으로 휘둘릴 수 있는 여지를 준 것” 비판

문제는 기업 구조조정 등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산업은행의 수장이 특정 정당의 장기집권을 공개적으로 외쳤다는 점이다. 그 자리에 맞는 균형과 공정성은 아예 무시해버린 것과 다름없다. 

연임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능력 검증이 아닌 정치적 배경 덕분이라는 것을 이 회장 스스로가 입증한게 아니냐는 비난도 일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청와대의 승인으로 직이 유지되느냐 마느냐가 갈리다보니 이번에 연임된 데 대한 사실상 감사의 표시로 한 것이 아니겠느냐”면서 “여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해가 되는 측면도 전혀 없지 않지만 국책은행 수장의 발언이라고 믿기가 어려울 정도여서 ‘실언’이라는 생각 밖엔 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산은 회장은 별도의 임원추천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금융위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산은 수장의 연임은 1950년대(구용서 초대 총재)와 1970년대(김원기 총재)에 각각 한차례 있었고, 1990∼1994년 이형구 총재(25∼26대) 이후 26년 만에 이동걸 회장이 성공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이 전 대표에게 꽃다발을 건네는 장면도 눈길을 끌었다. 윤 원장은 도서 및 표지 동판 전달식 직후 이 전 대표에게 꽃다발을 전하면서 세 번이나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한 금융 관계자는 “금융이 정치적으로 이용 당하면 절대적으로 안 된다”라며 “하지만 이 회장이 이런 발언을 했다는 것 자체가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객관적이고 냉철한 판단을 요하는 게 금융인데 정치적으로 휘둘릴 수 있는 여지를 준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이 회장과 윤 원장은 얼마 전까지 임기 관련 이슈로 주목을 받았다.

2017년 9월 11일부터 산은 회장직을 맡아온 이 회장은 임기가 끝나는 지난 10일에 추가 3년의 새 임기를 부여받아 연임에 성공했다.

2018년 5월 8일 취임한 윤 원장은 임기를 1년여 앞둔 지난 5월 청와대 민정수석실로부터 비공개 소환 조사를 받아 '조기 사퇴론'에 휘말린 바 있다. 윤 원장의 임기는 내년 5월 7일까지다.

한편 이날 축하연에는 박병석 국회의장, 이낙연 더불어민주당대표, 이춘희 세종시장, 양승조 충남도지사, 최문순 강원도지사,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박재현 수자원공사 사장, 박형구 한국중부발전 사장, 백복인 KT&G 사장, 황선우 산학연종합센터장, 김두관·김영주·이개호·이해식 의원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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