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슬, 권세, 재물과 밤 한 톨의 달관
벼슬, 권세, 재물과 밤 한 톨의 달관
  • 송혁기
  • 승인 2020.12.30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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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 칼럼] 1730년, 금성(錦城) 현감 이형곤(李衡坤)이 정자를 하나 지었다. 사방이 툭 트여서 수십 리 경치를 한 눈에 끌어당겨 볼 수 있는 곳이다. 막힘없이 볼 수 있다는 뜻에서 ‘달관정(達觀亭)’이라 이름 붙이고는 동계(東谿) 조귀명(趙龜命)에게 기문(記文)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동계는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으로 보는 것이 다르다는 데에서 논지를 시작한다.

사방이 트인 정자에서도 문을 닫으면 눈으로는 가까이 있는 사물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지척의 사물 밖에 없다고 해서 마음의 시야마저 줄어드는 것은 아니고, 시력 닿는 만큼 멀리까지 보인다고 해서 마음의 시야까지 저절로 커지는 것이 아니다.

달관이란 매인 데 없이 자연에 은거하는 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기는 이들은 현감으로서 공무에 바쁜 이형곤이 내세울 말이 못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동계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정적이고 한가한 때에만 초연할 뿐 동적이고 바쁜 상황에는 평정심을 잃는다면 이는 상황에 매이는 것이니 달관이라 할 수 없다.

자연에 머무를 적에는 물고기, 새와 어울리며 느긋하게 즐거움을 누리고, 관아에 나와서는 어려운 백성들의 호소에 신속하고 적절하게 응해야 달관이라 할 수 있다. 상황의 막힘과 통함에 구애되지 않고 복잡한 정치 현장이나 심지어 위험한 전쟁터에서도 간결함과 평안함을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달관이다. 눈에 보이는 상황을 넘어서 마음으로 보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미꾸라지 같은 재물을 지키는 방법

1801년 어느 저녁, 산길을 걷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우연히 한 어린아이를 보았다. 그 아이는 참새처럼 팔짝팔짝 뛰며 배를 송곳으로 찔리기라도 한 듯이 자지러지는 소리로 울어대고 있었다. 왜 그러느냐고 묻자, 나무 아래에서 밤 한 톨을 주웠는데 어떤 사람이 그걸 빼앗아 갔다는 것이었다.

다산은 이 이야기를 두 아들에게 전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아아! 천하에 이 어린아이처럼 울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벼슬 잃은 자, 권세 잃은 자, 재산 잃은 자 역시 달관한 사람의 눈으로 본다면 밤 한 톨 잃은 아이와 뭐가 다르겠는가?”

내가 잃은 것이 밤 한 톨과 다를 바 없다는 달관의 시선이 과연 우리에게 위안이 될까? 다산이 이 이야기를 한 맥락은 다른 데에 있었다. 형체가 있는 재물은 미꾸라지와 같아서 단단히 잡으려 하면 할수록 더 미끄럽게 빠져나갈 뿐이다. 재물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남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 쓰는 재물은 유형의 물질이고 남에게 베푸는 재물은 무형의 마음이다.

물질은 향락과 함께 망가지고 없어지지만 마음은 변치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내가 가진 재물은 도난과 화재를 늘 걱정해야 하지만 남과 나눈 재물은 아무런 염려도 없이 좋은 이름으로 영원히 남는다. 이런 관점의 전환 위에서 비로소 밤 한 톨의 달관을 말할 수 있다.

눈을 넘어서 마음으로 보기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많은 올해 연말이지만, 인적 드문 거리에 구세군 자선냄비마저 쓸쓸해 보이는 초유의 비접촉 시대를 살고 있다. 너 나 없이 힘겹고 불안한 상황, 모든 이슈가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양분되는 광포한 흐름 가운데, 근근이 이어온 삶의 끈을 놓아버리는 이들의 소식이 안타깝게 들려온다. 회피와 포기마저 허용될 수 없을 만큼 냉혹한 현실 앞에서, 재물에 연연하지 않고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달관을 말하는 것은 너무도 동떨어진 이야기로 들린다.

하지만 재물은 나누어야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는 다산의 역설, 눈에 보이는 상황을 넘어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동계의 믿음은, 여전히 우리에게 다시 생각할 여지를 준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들은 절망과 체념의 이유뿐이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닫힌 문 너머에 펼쳐진 시원스런 풍경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에 집착하면 내가 잃은 것만 한없이 커 보이지만 서로 어려울수록 나누는 마음이 더 소중하게 전해진다. 달관은 밤 한 톨처럼 작은 관점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다산칼럼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글쓴이 / 송 혁 기
·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고전의 시선〉(와이즈베리)
〈농암집: 조선의 학술과 문화를 평하다〉(한국고전번역원)
〈나를 찾아가는 길: 혜환 이용휴 산문선〉(공저, 돌베개)
〈조선후기 한문산문의 이론과 비평〉(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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