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나의 결의와 소망은 ‘우보만리(牛步萬里)'
2021년 나의 결의와 소망은 ‘우보만리(牛步萬里)'
  • 조석남
  • 승인 2021.01.0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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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四字成語)’의 맛은 함축과 비유...축약 속엔 은유의 형식을 빌린 시대정신의 메시지 담겨
'작심삼일(作心三日)’보다는 실천할 수 있는 목표 세우고 차근차근 이를 실행해나가는 것이 중요해

[조석남의 에듀컬처] <교수신문>은 지난해 말 교수 906명을 대상으로 이메일 설문조사를 한 결과 ‘아시타비(我是他非)’가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고 밝혔다. ‘나는 옳고, 남은 틀렸다’는 뜻의 ‘아시타비’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한문으로 옮긴 신조어로, 지난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생한 이중 잣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설문에 응한 교수들은 “조국에 이어 추미애, 윤석열 기사로 한 해를 도배했는데 골자는 ‘나는 깨끗하고 정당하다’고 강변하는 것” 등의 평을 했다고 <교수신문>은 전했다. ‘아시타비’에 이어 ‘후안무치’(厚顔無恥)가 2위에 올랐다. ‘낯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으로, ‘아시타비’와도 뜻이 통한다.

신축년 새해를 맞아 나름대로의 화두를 담은 ‘사자성어(四字成語)’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바로면접 알바앱 알바콜은 성인남녀 1,186명을 대상으로 ‘2021년, 본인이 바라는 새해 소망과 가까운 사자성어’를 조사한 결과를 지난 1일 밝혔다. 1위는 ‘고진감래’(苦盡甘來)가 꼽혔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뜻이다. ‘지금은 힘들고 어렵더라도 이 난국을 버티고 이겨내면 웃는 날이 곧 오리라’는 긍정적인 새해 소망이 전해진다.

2위는 ‘무사무려’(無思無慮), 3위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 차지했다. 상태별로 분석한 결과, 구직자와 자영업자는 ‘고진감래’를 새해 소망 1위로 꼽았고, 직장인은 ‘무사무려’(아무 생각이나 걱정이 없음)한 신축년을 소망했다.

<교수신문>의 사자성어가 다소 현학적인데 비해 재계의 사자성어는 현실적이다. 국내 경제·경영 전문가는 신축년 새해 한국 경영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백절불굴(百折不屈)’과 ‘기사회생(起死回生)’ 등을 꼽았다. 경영전문지 <월간 현대경영>이 경제·경영연구소장(원장)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이다.

김영민 LG경제연구원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변화를 기회로 삼아 새롭게 도약하자’는 취지에서 ‘물실호기(勿失好機)’와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마부작침(磨斧作針)’을 새해 사자성어로 꼽았다.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 길을 개척하자’는 ‘극세척도(克世拓道)’,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코로나 위기와 기후변화에 대응한 탄소중립의 어려움을 뚫고 나갈 강인함이 요구된다’며 ‘백절불굴’을 각각 제시했다.

이근환 KDB미래전략연구소장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지재유경(志在有逕)’,

이병헌 중소기업연구원장은 ‘기사회생’, 이재영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은 ‘각자도생(各自圖生)’, 조봉현 IBK경제연구소장은 ‘공존동생(共存同生)’, 조윤남 대신경제연구소 대표이사는 ‘응형무궁(應形無窮)’ 등을 꼽았다. 끝없이 다양한 상황에 조직의 모습을 대응시키자는 의미로, 급변하는 국내외 경제·사회·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자는 취지다.

우리 선조들은 지필묵으로 신년의 결의와 소망을 써서 걸어두고 일년간 마음과 행동의 지표로 삼았다. 묵을 갈면서 명상하고 치심(治心)하면서 붓을 들어 한지에 소망을 불어넣었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 속에 묻혀있는 꿈과 소망. 꿈이 막연한 기대감이라면 소망은 좀 구체적인 바람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결의 또는 소망을 사자성어에 얹어 한 해를 보내고 한 해를 맞으면서 발표하는 것이 관례처럼 돼버렸다.

멀리는 가는 곳마다 휘호를 남기고, 또 유난히 구호를 좋아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서 연원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혁명완수(革命完遂)’<1962년>, ‘유비무환(有備無患)’<1972년>, ‘국론통일(國論統一)’<1975년> 등 ‘사자성어’라기보다는 ‘사자구호’에 가까운 것들이었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도 다작가에 들어가는데 1995년 ‘대도무문(大道無門)’이란 ‘히트작’을 내놓았다.

사자성어와 고사성어를 가장 잘 구사했던 인사는 역시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아닌가 싶다. 한학에 밝았던 그는 풍류객답게 1980년 신군부가 등장하자 ‘봄은 봄이되 봄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로 일갈했다. 1995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결별할 때는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는다’는 의미의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통렬한 멘트도 날렸다.

국회에서 막가파식 드잡이가 일상화하고, 각 정당의 대변인들이 논평 때마다 막말 시리즈를 연발하는 요즈음 해학을 곁들여 고사성어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의도야 어떻든 상대방에게 직접화법으로 상소리를 하는 것보다는 격조가 있어 보인다.

올해가 소(牛)의 해이기도 하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우보만리(牛步萬里: 우직한 소의 걸음이 만리를 간다)’라는 사자성어를 좋아한다. 처음부터 너무 거창한 계획을 세우면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기 십상이다. 실천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고 차근차근 이를 실행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뚜벅뚜벅 걷다보면 천리, 만리 길이 결코 멀지만은 않을 것이다.

<필자 소개>

조석남(mansc@naver.com)

- 극동대 교수

- 전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학장

- 전 서울미디어그룹 상무이사·편집국장

- 전 스포츠조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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