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 동상 재건립...'역사 바로잡기’ 못지 않게 ‘역사 보존하기’도 값어치
전봉준 동상 재건립...'역사 바로잡기’ 못지 않게 ‘역사 보존하기’도 값어치
  • 권의종
  • 승인 2021.01.25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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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관리에도 필요한 경제성 고민...예산이든 성금이든 국민 호주머니서 나올 돈, 여론 수렴하고 숙의 거쳐 정해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 조소마을에 가면 있는 조선 말기의 가옥이 있다. 사적 제293호로 지정된 동학농민운동 지도자 전봉준의 옛집이다. 1878년에 처음 지어졌다. 전형적인 초가 3칸의 돌담집으로 남향으로 터를 잡고 있다. 고택 옆에는 당시 사용하던 공동우물이 남아있다. 방문객들은 부패 관리 처단과 사회 개혁을 시도했던 비운의 주인공을 떠올리며 상념에 잠기곤 한다.

전봉준이 중심이 된 조선 후기의 동학농민운동. 고종 31년 갑오년에 발생한 반봉건·반외세 혁명이었다. 1894년 3월의 제1차 봉기와 그해 9월의 제2차 궐기로 나누어진다. 1차 봉기는 반봉건 운동이었다. 고부 농민봉기로 뜻을 이루지 못한 전봉준은 무장지역의 손화중과 손을 잡고 수천 명의 농민을 규합했다. 그리고서 3월 21일 최시형의 탄생일을 기해 고부 백산에서 궐기했다.

2차 봉기는 반외세 운동이었다. 1차 봉기를 빌미로 조선에 입성한 일본군은 내정간섭을 노골화했다. 6월 2일 김홍집을 앞세운 친일 내각을 설립해 조선 정부에 내정개혁을 강요했다. 같은 달 21일에는 경복궁에 침입해 고종을 감금하고, 23일 청일전쟁을 일으킨 후, 이어 25일에는 1차 갑오개혁을 강행했다. 일본의 행태를 전해 들은 전봉준은 일본군 척결을 위해 2차 기병을 준비, 9월 삼례에 집결해 서울로 향했다.

이는 반일 감정이 쌓여 있던 충청도, 경상도, 강원도 등 전국적 항일운동으로 확산되었다. 동학농민군은 치열한 접전 끝에 우세한 화력을 앞세운 일본의 개입으로 고전하다 우금치전투에서 관군과 일본군에 패했다. 1895년 전봉준에 이어 지도부 대부분이 체포되어 교수형을 당하면서 운동은 실패로 끝이 나고 말았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서글프고 가슴 아픈 대목이다.

황토현 전적지에 세워진 녹두장군 동상 철거 예정...친일 작가가 만든 작품이라는 게 큰 이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전봉준 장군의 시련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듯하다. 1987년 황토현 전적지에 세워진 장군의 동상이 철거될 예정이다. 친일 작가가 만들었다는 이유가 크다. 정읍시는 전봉준 장군 동상 건립추진위원회를 열어 현 동상을 헐고 다시 세우기로 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장군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과 위엄을 담은 작품으로 교체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지금의 동상은 조각가 김경승(1915∼1992)이 제작했다. 화강암 받침대 위에 높이 6.4m, 좌대 3.7m, 형상 3.7m 규모다. 그동안 동학농민혁명 관련 단체와 반민족연구소 등은 김경승이 친일 인명사전에 수록됐다며 동상을 철거하고 다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동학농민혁명과 전봉준 장군의 큰 뜻과 개혁 정신을 계승하려는 의도에서다. 일리가 있고 수긍도 간다.

후유증도 걱정된다. 이러다가는 김경승 조각가가 제작한 부산 용두산 공원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1955),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장군상(1957), 서울 남산공원의 백범 김구 선생상(1969) 등도 다 헐고 다시 세워야 하게 생겼다. 다른 유적들도 친일 인사가 만든 것으로 드러나는 경우 족족 폐기하고 새로 제작해야 할 판이다. 감당이 어려워 보인다.

결정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없애는 건 능사도 아니다. 그런다고 없었던 일이 될 리 없다. 슬픈 역사도 역사이고 잘못된 기념물도 기념물이다. 항일 지도자 동상이 친일 인사에 의해 만들어진 아이러니 또한 역사의 일부라 할 수 있다. 사실로 받아들여 교훈으로 삼는 것도 지혜일 수 있다. ‘역사 바로잡기’ 못지않게 ‘역사 보존하기’도 값어치가 있다. 잘된 부분은 잘된 대로 잘못된 부분은 잘못된 대로 기억하며 간직하는 것이 되레 유익이 될 수 있다.

슬픈 역사도 역사, 잘못된 기념물도 기념물...친일 인사의 항일 지도자 동상도 역사의 일부분

현상 뒤에 있는 본질에 시선을 고정할 필요가 있다. 예술품 제작에서 핵심 요소는 단연 전문성이다. 작가 개인의 과거 행적도 따져야 하나 부차적인 문제다. 엄밀한 잣대를 들이대면 46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당시 지도층 중에 '친일'의 굴레에서 완전 자유로울 사람이 솔직히 얼마나 될까. 당장 먹고살기 위해 우선 살아남기 위해 동조할 수 밖에 없었고, 개중에는 뉘우친 이들도 있었다. 이같은 피치 못할 사정도 참작해봄 직하다.

실리 추구도 중요하다. 동상 재건립이 답이 아닐 수 있다. 이 말고도 해야 할 일이 태산 같다. 전봉준 장군의 행적과 동학농민운동의 유적을 체계적으로 발굴하는 일이 발전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일제의 흔적을 지우는 것 또한 시급한 과제다. 아직도 동학농민운동을 동학란(亂)이라 부르고, 전봉준 장군을 반역의 인물로 여기는 자들이 눈에 띈다. 일제가 파놓은 식민사관의 함정이 생각보다 넓고 깊다.

비용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동상을 처음 만들 때도 돈, 헐어내는 데도 돈, 다시 세우는 데도 돈이 들어간다. 재건립 소요 예산 12억 원. 크다면 크고 적다면 적은 돈이다. 34년 전에 공들여 만든 동상을 지금에 와서 친일파 작품이라 해서 다시 만드는 것 자체가 낭비일 수 있다. 친일 작가가 만들었어도 엄연한 기념물이다. 예술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봐서 쓰겠는가.

재건립이 타당하면 해야 한다. 다만 역사적 고증과 함께 경제성 검토를 거쳐야 한다. 재원 조성, 재건립 장단점, 비용·편익 분석이 선행되는 게 맞다. 답을 정해놓고 추진위원 몇몇이 결정하는 요식행위는 곤란하다. 정부 예산이든 시민 성금이든 결국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다. 돈 낼 사람의 의견을 묻고 숙의를 거쳐 정하는 게 순서다. 나랏돈이건 시민 돈이건 소중하기는 매한가지다. 적절한 곳에 적정하게 써야 할 책무에는 변함이 없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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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 2021-01-25 23:35:02
정말 여기 글 쓰는 곳 거지같습니다. 실컷 작성해 놓으니 스팸 운운하며 다 날아가 버리네요. 관리자님 이러시면 독자들 입 다물라는 뜻 아닙니까?

암행어사 2021-01-25 23:13:00
백퍼 공감합니다. 역사와 문화는 있는 그대로 두는 것도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가지는 것입니다. 친일 흔적 지우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그 흔적을 보전하면서 얻는 가치도 클 수 있습니다. 세상의 어느 나라도... 우리처럼 친일이라 하여 흔적지우기에 몰입하는 것처럼... 과거를 한꺼번에 모두 지우려는 나라는 없는 듯 생각됩니다. 고창인가 어딘가 인촌 흔적 지우려는 결정 전라북도 뉴스보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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