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들다, 마음을 살피다
마음을 흔들다, 마음을 살피다
  • 송혁기
  • 승인 2021.02.02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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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 칼럼] “세상을 다스리려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어야 한다니요? 그러면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선하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걱정스럽게 묻는 최구(崔瞿)에게 노담(老聃)은 이렇게 말한다.

“옳음과 그름, 아름다움과 못남, 앎과 모름 따위를 요란하게 내세워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시게. 사람의 마음은 남을 밀쳐 내리고 자기가 위로 오르려 하게 마련이네. 그러다 보니 오르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이 서로 가두고 죽이려 들게 되는 것이지. 자기 목적을 위해 나긋나긋 구워삶아서 강하고 완고한 자를 물렁하게 무장 해제시키는가 하면, 때로는 모질게 몰아붙여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때까지 쪼아 대기도 한다네. 마음이란 건 뜨겁기가 활활 타오르는 불길 같고 차갑기는 꽁꽁 얼어붙은 얼음 같지. 빠르기는 또 어떤가. 고개를 숙였다 드는 짧은 순간에 세상 끝까지 두어 번은 갔다 왔다 할 정도일세. 가만히 있을 때는 깊은 연못처럼 고요하다가도 움직일라 치면 어느새 저 높은 하늘에 걸려 있지. 명심하시게. 제멋대로 내달려서 붙들어 둘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네.”

다스리려 하지 말고 내버려두어라

장자(莊子)의 ?재유(在宥)? 편에 나오는 가상 문답이다. 성인(聖人)을 추종하는 유가가 일어나서 인의(仁義)의 기치 아래 옳은 길을 제시하고 아름다움의 기준을 정하며, 교화를 통해 아는 이와 모르는 이를 구분하고 상벌을 강화하여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계도하려 한 데에서 모든 사달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장자의 관점이다.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 감당하지 못하는 바람에 속임과 비난, 추방과 처형이 횡행하고 천하가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다. 요순(堯舜) 이래 여러 훌륭한 분들이 몸이 상할 정도로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다스려 왔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분열과 반목만 조장될 뿐이다. 그 모든 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스리려 하지 말고 내버려두어야 제대로 다스려진다는 것이다.

정의의 기치를 내걸고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따지는 명분 위에 서서 촛불집회와 탄핵소추로 출범한 정권이 어느덧 만 4년을 향해 가고 있다. 개별 사안에 대해 성패를 논할 식견은 안 되지만, 안타까운 심정으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른 것을 비판하고 바로잡는 일에 참으로 큰 용기와 희생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옳은 것을 주장하고 현실에서 관철해내는 일 역시 매우 많은 난관을 헤치고 나갈 지혜와 내공이 요구된다. 그 과정에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다른 사람, 당연하게 누리던 것을 놓아야 하는 사람, 의도와 달리 예기치 못한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 모두를 다 설득하며 나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옳으니 따라야 한다는 일방적인 주장만을 되풀이한다면 남는 것은 점점 더 극대화되는 분열과 반목뿐이다. 옳고 그름을 내세워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기만 했지, 어디로 갈지 종잡을 수 없는 그 마음들을 헤아릴 줄은 모르는 게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저들의 마음을 살펴야할 때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못남, 앎과 모름의 구분과 경계를 완전히 없애야 한다는 장자의 주장을 좇아 무위의 정치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유가와 성리학을 떠받들던 조선의 선비들도 장자의 위 구절을 즐겨 인용하곤 했는데, 성인과 인의 자체를 부정하는 주장에 문면 그대로 동의해서는 물론 아니다.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이 정도로 실감나게 묘사한 글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 문제의식과 수사를 취한 것이다.

이렇게나 종잡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자신들이 옳다고 확신하는 데에 사람들의 마음이 언제까지나 가만히 머물러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과 논리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반대의 주장이 강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제기된다면, 그 주장 이전에 그들의 마음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살펴야 하지 않을까. 이를 계속 무지 혹은 음모의 소산으로 치부한다면 결국은 극단의 추종과 거부 사이에서 길을 잃고 말 것이다.

그리고 장자 이야기를 꺼낸 김에 하나 더. 어차피 붙들어둘 수 없는 것이 마음이라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아도 되는 영역에서는 고정된 판단의 빗장을 활짝 열어둘 일이다. 각자의 마음이 지닌 상상력의 자유분방한 가능성이야말로 이 답답한 시대를 뚫고 나갈 유일한 가능성일지도 모른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다산칼럼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글쓴이 / 송 혁 기
·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고전의 시선〉(와이즈베리)
〈농암집: 조선의 학술과 문화를 평하다〉(한국고전번역원)
〈나를 찾아가는 길: 혜환 이용휴 산문선〉(공저, 돌베개)
〈조선후기 한문산문의 이론과 비평〉(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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