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코노미뉴스 윤석현 기자] 부동산 시장불안으로 줄곧 수세에 몰렸던 정부가 국면 전환을 위한 한방으로 깜짝 놀랄만한 공급 대책을 4일 내놓았다.
올해부터 5년내에 서울에 32만3000가구를 포함해 전국에 83만6000가구의 주택을 풀겠다는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구상은 이 정부가 짜낼 수 있는 최대치로 보인다. 정부는 이 대책을 '공공주도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 확대방안'이라고 명명했다. 땅주인, 집주인, 건설회사가 개발이익을 챙기는 민간 재개발, 재건축이 아닌 공공주도로 거대물량을 공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이번 대책을 '공급 쇼크' 수준이라고 자평하면서 "이처럼 막대한 수준의 공급확대로 주택시장이 확고한 안정세로 접어들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부동산 시장이 확고한 안정세로 갈지는 지켜봐야겠으나, 이번 대책이 획기적인 물량 폭탄이라는 데는 대다수 전문가가 동의했다.
◇공급계획 자체는 넘치는 물량 호평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시장의 대책을 뛰어넘는 특단의 대책을 만들겠다"면서 "공급이 부족하다는 국민 불안을 일거에 해소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고 했다. 원샷으로 공급 부족론을 잠재우겠다는 선언이었는데 정부는 4일 내놓은 대책에서 이를 수치로 구체화했다.
서울에서는 2018∼2020년까지 3년간 연평균 4만6000가구(준공기준)의 주택이 신규 공급됐다. 이번 대책만으로 향후 5년간 연평균 6만여가구를 추가로 공급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서울에 연평균 10만가구 이상을 공급하게 된다. 제대로만 된다면 서울 도심의 공급불안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지역 아파트의 경우 입주물량이 올해엔 2만9000가구, 내년엔 2만여가구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번 대책으로 아파트를 연간 6만가구씩 추가로 풀어놓을 수 있다면 엄청난 물량이라고 할 수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이번 대책에는 서울 도심에서 공급을 늘릴 수 있는 다각적인 방안들이 들어있다"면서 "물량으로만 보면 아주 충분하다"고 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서울에 계획된 공급물량은 3기 신도시의 2배로 수치상으로는 상당한 수준"이라고 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원룸 등을 제외한 서울의 실질 주택보급률(75%)이나 자가주택 보유율(48%) 등을 고려할 때, 입주 아파트 기준으로 연간 5만∼6만가구는 돼야 하는데 이번 대책은 이를 충족하는 것이어서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사업 구체화로 실현 가능성 입증해야
하지만 정부의 청사진이 실현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대부분의 도심개발이 공공택지가 아니라 민간의 땅이나 주택을 재개발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토지 수용과 보상, 땅주인과 집주인, 세입자 간의 이해조정 등 정부가 해결하기 쉽지 않은 난제가 수두룩하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정부의 계획은 일종의 도심 정비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신규택지와 달리 기존소유자와 임차인, 상가 임대인 등 복잡한 권리관계를 공공이 뛰어들어 조정한다고 해서 속도를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자칫 주변 땅값만 잔뜩 올려놓은 상태에서 사업추진이 지연되면 개발비용이 늘어나 사업자체가 무산될 우려도 있다는 것이다.
권대중 교수도 "정부가 일조권이나 높이 제한완화에 용적률 인센티브를 동원하고, 패스트트랙으로 사업추진에 속도를 내기로 했으나 집주인, 땅주인이 동의해야 가능한 데 이게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사유재산권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고종완 원장은 "공급물량 수치는 제시됐지만, 어디를 어떻게 개발한다는 것인지 구체성이 떨어지고 두루뭉술한 감이 있다"면서 "정부 내부적으로는 물론 개발지역에 대한 실천계획이 있겠지만 실현 가능성을 국민에게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신규 공공택지 조성을 통한 공급(26만3000가구)에 대해서는 지자체와 협의가 완료되는 대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으나, 서울 도심개발에 대해서는 기존 정비구역 개발과 함께 역세권, 준공업지역, 저층주거지에 공공주택복합사업을 추진한다는 얘기밖에 없었다.
시장 참가자들에게 안도감을 주기 위해서는 사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결과물을 보여줘야 신뢰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주민이 원하는 아파트 설계,시공사, 브랜드 결정
윤성원 국토교통부 1차관은 5일 공공기관 직접시행 정비사업에 품질저하 우려가 제기되는 데 대해 "아파트 설계와 시공, 브랜드 등은 모두 주민들이 결정할 수 있다"며 "주민들이 원하는 대로 아파트를 짓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 차관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같이 말했다.
내용중 핵심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기관이 사업을 주관하는 공공기관 직접시행 정비사업이다. 그러나 이 사업을 하면 'LH 아파트'를 짓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윤 차관은 "사업을 추진할 때 설계와 시공, 브랜드라든지 모든 것은 주민들이 결정을 한다"며 "고급자재를 쓰면 쓸수록 결국 사업비는 올라갈 것인데, 이런 모든 과정을 소상히 설명한 다음 어느 업체로 갈지 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업비가 올라가도 고급을 쓰겠다고 하면 쓰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윤 차관은 "사업을 시작할 때 아파트 토지와 건물에 대한 모든 권리를 현물로 납부하는 것이지만, 사업이 끝나 새 아파트가 지어지면 대지 지분권과 건물 소유권은 그 주인에게 다시 넘어간다"고 말했다. 아파트 이주비 대출에 대해선 "당장 전세금을 빼줄 능력이 없다면 LH가 금융권과 협의해 그에 맞는 전용 대출상품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대출이 있는 집도 이주비 대출 받을 수 있다고 답했다.
윤 차관은 "초기의 자금부담을 낮게 하고 새로 지어진 아파트에 입주한 다음, 집을 팔 때는 집값이 오른 만큼 공공과 집주인이 그 이익을 공유하게 하든지, 자금부담 능력에 관계없이 입주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윤 차관은 "서울에서 개발 가용총량이 무려 281만호"라며 "강남 등 재건축 조합 등으로부터 사업관련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