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지나고 우수...대춘부(待春賦): ‘이 봄엔 희망의 노래를…’
입춘 지나고 우수...대춘부(待春賦): ‘이 봄엔 희망의 노래를…’
  • 조석남
  • 승인 2021.02.15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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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남의 에듀컬처] 입춘(立春)이 지나고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가 낼모래다. 아직도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찬바람이 남아있지만, 아랫녘에선 홍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렸다는 소식이다. 이제 꽃샘 추위도 지나면 ‘오는 사랑을 숨길 수 없는 것’처럼 봄도 성큼 우리 곁에 다가올 것이다.

봄이 오면 시인들은 ‘대춘부(待春賦)’를 짓는다. ‘봄을 기다리는 시’, ‘봄을 기다리는 노래’다. ‘봄을 기다리는 노래’라는 의미 그대로의 시로는 신석정 시인의 「대춘부(待春賦)」가 많이 입에 오른다.

‘우수도 경칩도 머언 날씨에 그렇게 차가운 계절인데도 봄은 우리 고운 핏줄을 타고 오고 호흡은 가빠도 이토록 뜨거운가?/ 손에 손을 쥐고 볼에 볼을 문지르고 의지한 채 체온을 길이 간직하고픈 것은 꽃 피는 봄을 기다리는 탓이리라./ 산은 산대로 첩첩 쌓이고 물은 물대로 모여 가듯이/ 나무는 나무끼리 짐승은 짐승끼리 우리도 우리끼리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김동환 시인은 「강이 풀리면」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강이 풀리면 배가 오겠지/ 배가 오면은 님도 오겠지/ 님은 안 타도 편지야 탔겠지/ 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후략)’

봄은 ‘기다림’이다. ‘희망’이요, ‘꿈’이다. 부지런한 농부들이 과실나무 가지치기를 시작으로 일년 농사를 준비하는 것도 이때이고, 초목이 언 땅 깊숙한 곳에서 물을 끌어올려 새싹을 피워내기 시작하는 것도 지금이다. 땅 속 벌레들이 기지개를 켜는 것은 천하 만물이 봄을 기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밭두렁의 냉이, 야산의 이름 모를 꽃, 그 어떤 작은 풀잎 하나라도 갑자기 어느 한 순간에 불쑥 돋을 수는 없다. 겨울이라는 고난을 참고 이기며 오랜 기다림을 거쳐야 생명의 부활을 꿈꿀 수 있다.

극한 상황을 뚫고 눈 덮였던 겨울 들판과 숲에서 나타나는 봄이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어느 계절엔들 결혼이 없고 언젠들 꽃이 피지 않으랴만 봄신부는 더 눈부시고, 봄꽃은 더 화사한 것도 봄이 긴 겨울을 보낸 다음에야 맞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같지 않구나’

중국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소군원(昭君怨)」이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소군원」은 화친정책에 위해 흉노왕에게 시집을 가게된 불운의 절세미인 왕소군을 두고 지은 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980년 전두환 신군부 독재시절인 소위 ‘서울의 봄’ 당시 3김(金) 중 하나인 김종필씨가 한국의 정치상황을 ‘아직 봄이 아니다’라는 의미로 인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그후부터 ‘춘래불사춘’은 흔히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는 말로 많이 쓰여왔다. 하지만 다가오는 봄은 ‘춘래불사춘’이 아닌 ‘진정한 봄’, 말 그대로 ‘입춘대길(立春大吉)’이 되길 소원한다.

중국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비구니가 지은 『오도송(悟道頌)』 중에 「봄을 찾다(尋春)」라는 시가 있다. ‘하루 종일 봄을 찾아 다녀도 봄을 보지 못하고/ 짚신이 다 닳도록 언덕 위 구름만 밟고 다녔네/ 지쳐 돌아와 우연히 매화나무 밑을 지나는데/ 봄은 이미 매화가지 위에 한껏 와 있었네’

조급한 마음에 봄을 찾아 온 산하를 다 다녀 보았지만 봄기운을 느낄 수 없었다. 지쳐 실망한 몸으로 집에 돌아와보니 그토록 찾아 헤매던 봄은 바로 집 매화나무 가지에 이미 와 있지 않은가. 우리가 애타게 찾는 모든 것들은 늘 가까이 있지만 사람들은 항상 멀리서만 찾으려 한다.

‘희망’이자 ‘꿈’인 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다가와 있는데 단지 깨닫고 있지 못할 뿐이라는 ‘교훈’을 주는 시이다. ‘희망’과 ‘꿈’은 현재 우리 곁에 있다. 먼 산 무지개만 쫓으며 방황하지 말고, 지금 곁에 있는 것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깨닫고 지켜야 한다.

옛 선현 임제 선사는 말한다. “언제 어디서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그러면 그가 서 있는 자리마다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리라.”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진달래는 진달래답게 피면 되고, 민들레는 민들레답게 피면 된다. 이런 이치를 다가오는 봄철엔 꽃에게서 배우고 싶다. ‘희망의 봄’은 이미 우리 마음 속에 한껏 와 있다.

<필자 소개>

조석남(mansc@naver.com)

- 극동대 교수

- 전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학장

- 전 서울미디어그룹 상무이사·편집국장

- 전 스포츠조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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