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재구성...고운 말은 항상 사랑을 받는다
언어의 재구성...고운 말은 항상 사랑을 받는다
  • 안태환
  • 승인 2021.03.0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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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환의 의창(醫窓)] 비문에 가까운 표현이지만 세상의 모든 책들은 들어 본 책과 들어보지 못한 책으로 분류된다. 활자를 제대로 가늠할 수 있는 인생을 사는 동안, 제 아무리 다독을 하더라도 읽은 책들은 세상의 책들 중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가 그러했다. 들어는 본 책이었지만 읽어 볼 기회는 딱히 없었다. 서점 진열대, 책 제목이 주는 청량함에 이끌려 잠시 응시했던 기억으로 남았을 뿐이다. 그랬던 책을 봄을 기다리며 근간에 읽었다.

책은 참 쉽게 읽힌다. 분량도 무겁지 않다. 금세 읽을 수 있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관점을 일깨워준다, 언어에 내재된 관계의 소중함과 절실함을 농밀하게 담아냈다. 한국어의 아름다운을 제대로 표현한 문장들은 경이롭고 신선했다. 무엇보다 작가의 사람들에 대한 따듯한 시선이 좋았다.

주변 사람들의 일상적 삶을 기록한 글들은 차분하고 애정이 스며들어 있었다. 무심코 지나쳤을 타인에 대한 작가의 응시는 잔잔한 애정으로 써 내려간 글임을 알게 해준다. 살며 사랑하다 어느 날 삭막해진 오후에 커피와 함께 읽어 내려가도 좋은 글이다. 퍽퍽한 세상살이에 고즈넉한 위안이 된다.

이기주의 글이 체온이 있는 것은 사람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된다. 타인에 대한 배려의 말들이기에 부드럽고 달콤하다. 거친 세상을 살며 분노와 미움 같은 부정적 감정으로 점철된 날들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시작은 이성이 아닌 감정에서 잉태된 분노의 말, 한 마디에서 시작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생채기를 남기는 상처 주는 말들은 서슬 퍼런 뾰족한 유리 파편 같다.

인간의 존재를 위압하는 모진 말은 깨진 유리의 모서리로 부지불식간에 돌이 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힌다. 누구나 그러한 경험을 지니고 산다. 절제된 언어의 지혜를 누구나가 갈구하지만 쉬이 허락되지 않는다. 단단한 철학과 내면의 울림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언어는 ‘사람 꼴’의 증표가 된다.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돌이 킬 수 없다’던 선인들의 지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가공할만한 언어의 무게는 관계의 근간이며 존재의 이유가 된다. 모두가 외롭고 지난한 시대를 살며 공동체를 위한 말은 어떤 모양새를 지니고 있을까. 이기주의 글처럼 ‘아름답지만 가시가 있는 장미 같은 말’보다 ‘흔하지만 예쁜 토끼풀 같은 말’에 사람들의 시선은 살포시 머문다. 우리들의 언어가 재구성되어야 할 이유이다. 고운 말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사랑받는다.

공격적이고 평가로 점철된 언어는 늘 그늘을 드리운다. 상대에게 상처를 준 말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소멸된 기억으로 남지 않는다. 정형화된 인스턴트 식 인간관계가 아닌 유기농 인간관계를 가져가는 이들은 늘 사람들 속에 있다. 이들의 특징은 섬세하다. 한결같이 상대의 감정과 희망을 보듬기 위한 언어를 일상적으로 구사한다. 이런 식이다.

친구를 앞에 두고“넌 이해심도 많아서 내겐 더없이 좋은 친구야”를 나지막이 고백한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가까울수록 언어의 절제는 사라지고 친근함의 표시로 “넌 성격은 좋아서 내겐 편한 친구야”라는 말을 하는 이들도 있다. 그 순간, 서로 가벼이 웃고 지나치지만 상대의 마음은 서운함이 자리한다. 점 하나, 조사 하나로 언어의 결이 달라지는 것이다. 사려 깊지 못한 언어는 가족에게도 상처를 입힌다,

매일같이 환자를 대하며 체득한 굳건한 진실이 있다. 언어에는 확실히 체온이 있다는 것이다. 체온이 묻어나는 언어는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끈덕지게 포용한다. 그러나 가슴보다 머리에서 분출되는 언어에는 즉흥적 감정이 잔뜩 실리기 마련이다. 성난 사자의 울음처럼 말하는 사람은 그 순간 시원할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공포심과 극심한 내상을 입을 수 있다. 건조하고 삭막하며 서늘한 언어도 모든 관계에 있어서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이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삶과 죽음은 차별 없다. 특별할 것 없는 인생이다. 살아가는 동안 타인을 안아주는 언어는 삶을 평온하게 한다. 모든 언어는 다붓다붓 재구성된다. 모든 인간관계도 그렇다. 여럿 가운데 가장 좋은 사람을 의미하는 ‘머드러기’가 되고 싶거든 달보드레한 언어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안태환

▪ 강남프레쉬이비인후과의원 강남본원 대표원장

▪ 이비인후과 전문의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의학박사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 서울 삼성의료원 성균관대학교 외래교수

▪ 대한이비인후과 의사회 전 학술이사

▪ 대한이비인후과 학회 학술위원

▪ 대한미용외과 의학회 부회장

▪ 대한레이저피부모발학회 부회장

▪ 2017년 ‘한국의 명의 100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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