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풍자와 해학...‘독설과 욕설의 정치’는 이제 그만
사라진 풍자와 해학...‘독설과 욕설의 정치’는 이제 그만
  • 조석남
  • 승인 2021.04.01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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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재보궐선거에서도 비방과 네거티브가 난무...폭언의 정치 끊어야 폭력과 힘의 정치 사라져

[조석남의 에듀컬처] 유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정치인이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이다. 기업 국유화 논란이 한창일 때 처칠이 쉬는 시간을 이용해 의회 화장실에 들렀다. 처칠은 마침 “큰 기업들을 국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노동당 당수의 옆자리가 비었는데도 그 자리에서 볼 일을 보지 않았다. “옆자리가 비었는데 왜 오지 않는 거요. 내가 싫소?” “겁이 나서요.” “뭐가 겁나요?” “의원님은 무엇이든 큰 것만 보면 모두 국유화시키려고 하시니까 제걸 보시고 국유화시켜버릴까봐서요.”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은 73세 때 재선에 도전했다. 대선 경쟁자 월터 먼데일이 TV토론에서 “나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고령을 걸고 넘어졌다. 레이건은 “나는 선거에서 나이를 문제 삼지 않겠다. 당신이 너무 젊고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고 되받았다. 먼데일조차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머를 갖춘 정치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아무리 죽기살기식 정쟁을 펼친다 해도 정치인들의 언사에 유머가 녹아 있으면 국민들이 덜 짜증날 텐데 말이다. 정치는 상대와 겨루는 갈등조정 행위다. 갈등은 경쟁을 내포하고 있다. 갈등과 경쟁 탓에 정치는 종종 극단으로 치달린다. 이런 정치에 있어 유머는 윤활유다. 갈등희석, 당당한 경쟁 등을 부추기는 활력소다.

지금 진행중인 4·7 재보궐선거에서도 ‘유머’가 아니라 ‘독설’과 ‘욕설’이 난무하고 있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후보 TV토론에서조차 정책선거는 온데간데 없이 상대에 대한 비방과 네거티브 발언이 유권자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고 있고, 온라인 상에서는 모욕적 언사와 잔인할 정도로 심한 막말이 넘쳐나고 있다. 뉴미디어 시대에 새롭고 강력한 선거운동 수단으로 등장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인터넷 댓글에서는 상대 후보와 반대하는 정당을 직설적으로 비난하는 욕설이 쏟아진다.

남녀노소를 막론한 소통과 공감의 순기능 도구로 존재했던 SNS가 이번 선거에선 진보와 보수 등 이념·계층·계급 간 무차별적 독설과 비방 글들이 숱하게 떠다니는 ‘적의(敵意)의 바다’로 변질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적 단일 이슈를 갖고 더욱 첨예하게 대립할 내년 대선에선 SNS에 욕설이 더욱 창궐할 것이 우려된다.

정치인 중 자신의 유머 감각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이 많다. 자신이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웃으니까 착각하는 경우인데, 지위가 높은 사람의 언행에 더 과도하게 반응해주는 것은 일종의 생존전략일 뿐이다. 우리에겐 ‘진정으로 우리를 유쾌하게 만드는 멋진 지도자’가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여야 지도자들의 변화도 필수적인 ‘시대의 요구’이다. 이제 ‘투쟁의 이미지’ 만으론 국민들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상대를 포용할 수 있는 아량과 유머 감각, 두둑한 배짱, 그리고 짜증을 주지 않는 온화한 인상이 중요하다.

더 이상 ‘농담’과 ‘디스’(존경을 의미하는 ‘respect’의 반대말인 ‘disrespect’의 줄임말. 다른 사람을 폄하·공격하는 행위)를 혼동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농담’은 웃음을 주지만, ‘디스’는 상처를 준다. 상대 정적을 비판할 때는 품격 있는 언어와 어휘를 선택하고, 직유법보다 은유법으로 하고, 직설법보다 비유나 유추로 공략해야 한다. 유머와 해학이 있는 정치 지도자의 말은 ‘여유와 배려의 정치’로 이어진다.

한국 정치에서 풍자와 해학까지 바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부 정치 지도자는 폭언에 가까운 말을 매일 쏟아내며 ‘정치 혐오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폭언의 정치’에서는 논리와 대화가 설 자리가 없고 상대를 낙인찍는 기법과 같은 감성적이고 자극적인 언어의 껍데기만 남는다. ‘폭언의 정치’에서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용납되지 않으며 여유의 정치가 발붙일 수 없다.

자신과 소속 정당은 무조건 ‘선(善)’이고, 상대는 ‘악(惡)’이다. 이런 폭언의 정치는 폭력과 힘의 정치로 이어질 개연성이 유머의 정치와 여유의 정치보다 높다. 폭언의 정치를 끊어야만 폭력과 힘의 정치가 사라진다. 폭언의 정치가 없어져야만 상대를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의 기초를 놓을 수 있다. 국민은 꿈과 희망이 있는 말, 배려와 상생이 있는 정치, 여유와 유머가 있는 정치인을 그리고 있다.

<필자 소개>

조석남(mansc@naver.com)

- 극동대 교수

- 전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학장

- 전 서울미디어그룹 상무이사·편집국장

- 전 스포츠조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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