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3각 波高' 넘는다...최태원-구광모의 현명한 선택
배터리 '3각 波高' 넘는다...최태원-구광모의 현명한 선택
  • 한지훈 기자
  • 승인 2021.04.12 11:24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美中日·유럽 사활 건 배터리 대전…위기 맞은 K 배터리

 

[서울이코노미뉴스 한지훈 기자]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를 놓고 벌인 700여일간의 분쟁을 끝냈다.

국내 재벌 3,4위인 SK는 실리를, LG는 명분을 얻었다. 무엇보다 양사의 합의에는 최태원 회장과 구광모 회장이 '더이상 출혈은 막아야 한다'는 결단이 뒷받침됐다. 

그 이면에는 글로벌 배터리 주도권을 둘러싼 중국과의 패권전쟁이 부담으로 작용했고, 타협을 바라는 한미 정치권과 여론은 양사에게 막판 퇴로를 열어줬다.

싸움이 끝까지 갈 경우 소송전에 물 쓰듯 뿌린 비용은 물론 두 회사에겐 결국 상처만 남으리란 초조함도 극적 반전의 접점을 찾게 했다.

이같은 국내외 '3각 파고' 를 맞아 모두가 이기는 게임을 마무리한 것이다. 

◇LG는 '2조원과 명분', SK는 '실리'를 얻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11일 이사회를 열고 양측의 합의안을 승인했다.

합의안은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에 배상금으로 현금 1조원과 로열티 1조원 등 모두 2조원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애초 LG는 3조원대, SK는 1조원을 주장했으나 중간선인 2조원으로 결정됐다. 심플이 가장 스마트한 해법임을 양사는 거듭 입증해냈다. 

양사는 서로를 겨냥해 진행중인 모든 분쟁과 소송도 종료하기로 했다.

SK가 LG에 지식재산권 분쟁으로는 사상 최대인 2조원이라는 돈을 지불하기로 한 것은 지난 2월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판결에 승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ITC가 내렸던 SK이노베이션에 대한 10년 수입금지 조치는 해제됐고, 미국 사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SK는 미국에서의 사업 불투명성이 제거됐다. 폭스바겐과 포드 등 고객사에 배터리 공급차질을 빚을 경우, 예상되는 손해배상은 물론 조지아주 공장건설 중단에 따른 매몰비용과 설비이전 부담에서도 벗어났다.

LG에너지솔루션은 2조원이라는 막대한 합의금을 챙겼다. 자사가 "옳았다"는 명분도 얻었다. 그렇지 않아도 투자자금 조달을 위해 연내 상장을 추진하는 LG에너지솔루션으로서는 엄청난 '실탄'을 확보한 셈이다.

하지만 긴 분쟁으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이미 깊은 내상을 입었다. 양사는 지난 2년간의 소송과 로비로 수천억원을 날린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소송이 장기화할 경우 1조원 이상의 출혈이 예상된다는 관측도 있었다. 자칫 배보다 배꼽이 커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최태원 SK 회장

무엇보다 양사의 감정적 비난전을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각은 극도로 비판적인 지경까지 이르기도 했다.  

양사의 합의는 세계 2위 전기차 업체인 독일의 폭스바겐의 지난달 중순 배터리 내재화 선언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폭스바겐의 배터리 내재화 발표가 있었던 1주일간 LG화학(LG에너지솔루션의 모회사)과 SK이노베이션의 시가총액은 13조원이 증발했다.

양사가 분쟁 과정에서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서서 신뢰성이 추락하고 중국 배터리의 공세적 시장확대를 허용한 것도 큰 손실이었다.

이번 합의에는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와 우리 정부의 압력과 중재가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로서는 양사의 싸움으로 자국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에 구멍이 뚫리고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 중국 업체에 어부지리를 주는 것을 용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세균 총리를 비롯한 우리 정부 인사들도 배터리 분쟁 장기화에 따른 심각한 국익 훼손을 우려했다. 양국 정부의 합의 종용은 그렇지 않아도 '치킨 게임'을 접기 위한 명분을 찾고 있던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에 돗자리를 깔아준 것인 셈이다.

이를 두고 워싱턴포스트(WP)는 "어느 쪽 편도 들지 않으면서 일자리와 미국내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 구축을 원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중국,일본,유럽 치고나가는데…K 배터리 협력 지원 늘려야

구광모 LG 회장

세계 배터리 시장은 최대 수요처인 전기차 시장이 이제 태동기여서 반도체 시장과 같은 확실한 선두업체나 기술의 초격차가 없다. 기존 배터리 업체는 물론 자동차 업체들도 다투어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의 CATL이 24%의 점유율로 4년째 1위를 지켰으나 LG에너지솔루션이 23.5%로 바짝 추격했다. 

일본 파나소닉이 18.5%로 3위, BYD(중국)가 6.7%로 4위,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이 각각 5.8%와 5.4%로 5위와 6위를 달렸다.

국가별로 보면 한국과 중국이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황은 단순하지 않다. 올해 들어 1∼2월을 놓고 보면 CATL의 점유율은 31.7%로 치솟았지만 LG에너지솔루션은 19.2%로 떨어졌다.

여기에 폭스바겐은 2030년까지 유럽에 6곳의 배터리 공장을 건설해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를 자체 공급하겠다고 했다. 또 2023년부터는 현재의 파우치형 배터리 대신 각형 배터리를 탑재해 2030년까지 비중을 80%로 높이기로 했다. 협력 파트너로는 각형 배터리를 생산하는 중국의 CATL을 선택했다.

이는 파우치형 배터리를 주로 생산해 지금까지 폭스바겐에 공급해온 LG 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등 우리나라 배터리업체에는 큰 악재다. 

글로벌 전기차 선두기업인 테슬라는 일찌감치 배터리 내재화를 선언했고, 도요타와 포드 GM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도 배터리 자체 생산을 서두르고 있다. 

이게 다가 아니다. 휴대폰 업체인 애플까지 자체 설계 배터리를 적용한 전기차 개발에 나선 상태다. 

특히 일본의 도요타는 꿈의 배터리라고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탑재 전기차 시험 차량을 올해 공개하겠다고 한 상태여서 배터리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이 불을 뿜고 있다.

기술표준과 시장 경쟁이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카오스의 격류 속에서 SK이노베이션이나 LG에너지솔루션이 '우물 안' 싸움으로 허송세월할 틈이 없다.

손승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글로벌 배터리 경쟁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되는 마당에 LG와 SK의 분쟁 장기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K 배터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양사는 선의의 경쟁은 하되 서로 협력해야 하며 정부도 이를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양사의 분쟁은 결국 모두의 패배로 중국과 일본 등에 어부지리를 주는 것이다"라면서 "이번 합의를 K 배터리의 위상과 경쟁력을 더욱 높일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서울이코미디어
  • 등록번호 : 서울 아 03055
  • 등록일자 : 2014-03-21
  • 제호 : 서울이코노미뉴스
  • 부회장 : 김명서
  • 대표·편집국장 : 박선화
  • 발행인·편집인 : 박미연
  •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1107호(여의도동, 삼도빌딩)
  • 발행일자 : 2014-04-16
  • 대표전화 : 02-3775-4176
  • 팩스 : 02-3775-41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미연
  • 서울이코노미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서울이코노미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eouleconews@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