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속 ‘백신 정치화’ 곤란...美, 한국을 줄세우기 하지 마라
코로나19 속 ‘백신 정치화’ 곤란...美, 한국을 줄세우기 하지 마라
  • 권의종
  • 승인 2021.04.25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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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한국의 백신 스와프 제안 사실상 거절...경제는 경쟁을 해도 백신으로 동맹 배신하면 안 돼
백신은 인류에 고루 돌아가야 할 만국 공용 자산...마스크는 세계인 모두가 벗을 때 효과 보는 것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존 스타인벡은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 하나다. 1902년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어났다. 교사였던 어머니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성경을 비롯한 여러 인문 서적을 탐독했다. 이때의 독서 경험이 그가 집필한 소설의 주제나 플롯에 영향을 주었다. 스탠퍼드 대학에 입학했으나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던 가난한 학도였다. 그래도 이 시기에 많은 문학작품을 접하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그는 결국 대학을 중퇴하고 신문기자 생활을 시작한다. 시련은 계속된다.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글을 쓴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하고 만다. 생계를 위해 막노동을 해가며 작품 활동을 이어간다. 이후 작가로 데뷔, 에덴의 동쪽 등 뛰어난 걸작들을 다수 남긴다. 작가로서의 명성을 안겨준 작품은 20세기 미국 사회소설의 고전으로 인정받는 장편소설 <분노의 포도>이다.

소설의 배경은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시기이다. 수많은 농민이 토지를 떠나 유리하면서 겪게 되는 스토리가 전개된다. 작품의 주인공은 톰 조드라는 20대 초반 청년이다. 그의 가족은 미국 중부 오클라호마에서 몇 대 째 옥수수 농사를 짓는 농민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노아라는 형과 앨이라는 남동생 그리고 로자샨이라는 여동생이 등장한다.

당시 미국 중부에는 극심한 가뭄과 모래 폭풍이 덮친다. 옥수수 농사를 망친 농민들은 금융기관에 빚진 채무를 갚지 못해 농토를 헐값에 팔고 고향을 등져야 하는 비참한 처지에 놓인다. 톰 조드의 가정 역시 같은 상황에 부닥치면서 풍요한 농토가 있다고 알려진 서부 캘리포니아로의 긴 여정에 오른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캘리포니아는 기대와 달랐다. 노동력이 과잉 공급되어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에서 드러내려 했던 것은 고난 극복의 저력이 공동체에 있다는 사실

몰려드는 이주민들로 기존 주민과의 갈등이 격심했고, 농장에서는 비인간적 착취가 횡행했다. 조드 일가는 오렌지농장에서 일하게 되나 급여 착취가 계속되자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이 와중에 톰이 살인을 저지르고 그 사실이 발각되면서 멀리 떠나게 된다. 이때 캘리포니아 일대는 큰비가 내리고 조드 일가는 고지대 헛간으로 피신하는 장면으로 소설이 마무리된다.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드러내려 한 것 중의 하나는 고난을 극복하는 저력이 공동체에 있다는 사실이다. 작품에서 가장 강한 저력을 소유한 사람은 톰 조드의 어머니다. 그녀는 어떤 돌발 상황 속에서도 당황하거나 낙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잃더라도 가족만을 잃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 같이 모여 있을 때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어머니의 공동체 의식은 조드 일가가 헛간으로 대피하는 소설의 클라이맥스이자 마지막 장면에서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그때 헛간에는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한 남자가 있다. 어머니는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자신의 딸 로저샨을 설득해 그 남자에게 젖을 먹이게 한다. 로자샨은 묵묵히 자신의 부어오른 젖가슴을 그의 입에 물린다. 주위를 둘러보며 신비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분노의 포도는 코로나 백신을 떠올리게 한다. 백신의 해외지원과 관련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언급이 있었다. 미국이 보유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을 다른 나라에 보낼 만큼 충분하지 않다며 미국 내 접종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백신 부족을 겪고 있는 우리 정부가 미국에 ‘백신 스와프’를 요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 이틀 만이다. 우회적 거부로 읽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세계 각국, 코로나 백신 확보에 사활...국가 단위 넘어서는 감동적이고 엄숙한 공동체 의식 기대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의 백신 스와프 제안을 사실상 거절하는 배경이 석연치 않다. 백신 수급 문제 외에 외교 안보적 상황에 관한 판단이 깔린 게 아니냐는 의문이 들게 한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이 백신 수급에 대해 “캐나다, 멕시코 및 ‘쿼드(QUAD-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 안보협의체)’와도 논의해 왔다”고 밝힌 것도 불길하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구축한 쿼드에 동참하지 않고 있는 한국에 대한 압박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일본이 미일 정상회담 바로 다음 날 화이자로부터 백신 5,000만 회분 추가 공급 약속을 받아낸 점 또한 마음에 걸린다. 국내 언론은 미국이 해외에 백신 지원을 해도 캐나다·멕시코 등 인접국, 쿼드 참여국인 일본·호주·인도, 나머지 동맹 및 개발도상국의 순서로 진행하겠다는 의미로 풀이한다. 바이든 정부의 ‘백신 아메리카나 구상’에서 한국이 자칫 후 순위로 밀릴까 우려된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 백신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런 판에 ‘백신 대국’ 미국이 풍부한 백신 물량과 원천 기술을 무기로 전 세계 국가들을 상대로 줄 세우기에 나서는 건 곤란하다. 미국 국익이나 전략에 따라 나라별로 백신을 지원하는 우선순위와 물량을 조절하려는 발상이라면 위험하다. 세계화 시대 상황에 부합되지 않을 뿐더러 인도주의 정신에도 걸맞지 않다. 70년 혈맹인 한국에 대한 도리 또한 아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 아닌가.

분노의 포도의 끝 장면처럼 국가 단위를 넘어서는 감동적이고 엄숙한 공동체 의식을 기대한다. 굶주린 자가 굶주린 자를 끌어안는 생명 연대의 소중함이 코로나 팬데믹에서도 발휘되기를 바란다. 인류가 대공황 이상의 숱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데는 공동체 의식의 공이 크다. 나라 간에 경제는 경쟁해도 되나 백신으로 배신하면 안 된다. 백신은 인류에 고루 돌아가야 할 만국 공용의 자산이다. 마스크는 세계인 모두가 함께 벗을 때 효과를 본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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