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 화곡동 ‘세 일가족의 죽음’과 ‘무정한 이웃’
서울 강서구 화곡동 ‘세 일가족의 죽음’과 ‘무정한 이웃’
  • 조석남
  • 승인 2021.07.0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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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남의 에듀컬처] '월세 10만 원만 깍아주세요.‘

세 일가족에게 이번 여름은 너무나 가혹한 계절이었나 보다. 최근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다가구주택에서 숨진 뒤 뒤늦게 발견된 일가족의 사연은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이들은 코로나19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숨지기 전인 지난달 월세 20만 원을 제때 내지 못해 절반인 10만 원으로 깎아달라고 집주인에게 간청했다고 한다.

숨진 60대 어머니와 30대 아들, 40대 조카 등 일가족 3명은 모두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자였다. 불안정한 직업으로 생계를 힘겹게 이어가다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일이 끊기자 셋방의 주거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이 가족이 깎아달라고 부탁했던 10만원은 누구에게는 한 끼 외식 비용일 수도 있다.

최근 들어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누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일까? 소설가 황석영은 작품 『아우를 위하여』에서 ‘겨울에 거지 한 사람이 얼어 죽는 것도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라고 했다. 그렇다.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정치인들은 극빈층의 복지보다는 정권의 유지나 쟁취에 혈안이었고, 대학교수를 비롯한 지식인들은 정치인들과 공생하며 기득권 지키기에 몰두했고, 종교인들은 사랑과 자비를 베풀기보다는 교세 확장에 열심이었고, 일반 시민은 각자의 이익에만 급급하여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처절한 모습을 외면했다. 눈앞의 이익에 다른 사람의 고통이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무정한 이웃’들이다.

숨진 60대 어머니는 우울증에 걸려 있었고 30대 아들은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아 코로나 이후 일을 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살아 남은 자의 아픔’이라고 했던가. 그들의 죽음을 보며 같이 아파하지 못한 ‘무정한 이웃’의 한숨만 깊어진다. “복지제도의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지만, “언제는 제도가 없어서 살지 못했나” 하는 비난도 거세다.

제도가 미비하다면 고치면 된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죽음에 대해 미안해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죄, 아픔과 고통이 있는 곳에 ‘우리’가 함께하지 못한 무관심에 대해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슬피 우는 사람들을 수없이 찾아다녔지만 그들과 삶을 나누지 못했음을 부끄러이 고백한다. 내가 죽어 하늘나라에 가면 하느님한테 꾸지람들을 잘못이 그 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김수환 추기경 이야기 그 후』 중에서) 고통 받는 이, 아픈 이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고 김수환 추기경의 이 말씀은 우리를 더욱 부끄럽게 만든다.

‘국가는 곧 국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연이어지는 국가의 장례식에 ‘상주’인 셈이다. 이름 모를 안타까운 죽음이 아니라 우리 이웃의 죽음이요, 우리 가족의 비극이다. 이 나라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사회 안전망’이 구축돼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 이웃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물질적인 큰 도움은 주지 못하더라도, 그들이 삶의 끈을 놓지 않도록 관심을 갖고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넬 수 있어야 한다.

이미 떠난 가족의 고통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우리 이웃과 아픔을 함께할 수는 있다. 우리의 눈과 귀를 그들을 위해 계속 열어놓아야 한다. 마음이 열리면 세상이 열리고 살 방법이 생긴다. 그러나 고통에 눈 감으면, 그들은 감은 눈을 다시 뜰 수 없다. 주변을 자주 둘러본다면, 우리 이웃을 한번 더 살펴본다면, 백합꽃 향기가 코 끝을 스치는 이 찬란한 여름날에 ‘죽음의 향’ 냄새를 맡아야 하는 이렇게 가슴 아픈 일이 반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조석남(mansc@naver.com)

- 극동대 교수

- 전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학장

- 전 서울미디어그룹 상무이사·편집국장

- 전 스포츠조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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