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정책의 난맥상...공직의 소명(召命) 일깨운 100년전 막스 베버
극심한 정책의 난맥상...공직의 소명(召命) 일깨운 100년전 막스 베버
  • 권의종
  • 승인 2021.08.1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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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절제한 정책 운용의 피해는 모두 국민의 몫으로 돌아와...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은 공직 수행의 필수 덕목
정치가 무엇이고 공직자가 어떤 존재인지를 일깨우는 막스 베버의 고전, ‘직업으로서의 정치' 한번 읽어보기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공공기관은 말 그대로 공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다. 중앙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공무를 수행하는 관공서는 물론,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좁은 의미로서의 공공기관이란 정부의 투자·출자 또는 정부의 재정지원 등으로 설립·운영되는 곳으로서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정한 기관을 가리킨다.

취준생들 사이에 공공기관의 위상은 하늘을 찌른다. ‘신의’ 직장, ‘신도 가고 싶은’ 직장, ‘신이 감춰둔’ 직장으로 불리며 분에 넘치는 호강을 누린다. 이들 기관에 종사하는 직원들 얘기를 들어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불편과 불리도 있다. 본사가 지방에 있고 지점이 전국에 산재하다 보니 주거가 불안정하다. 책임은 공무원과 같으나 연금은 공무원연금이 아닌 국민연금을 받게 된다. 정부가 제시하는 임금 가이드라인으로 급여 인상도 제한적이다.

그 정도는 알고 입사한지라 견딜만 하다. 정부로부터 받는 지나친 간섭이 부담이다. 정부가 공공기관의 정책 결정에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예산과 정원을 틀어쥐고 평가라는 무기를 내세워 시시콜콜 따지고 캐묻는 게 못마땅할 따름이다. 공공기관에서 자율성이란 찾아보기 어렵다. 직원을 어떻게 채용하라, 복지제도를 축소하라, 예산을 절감하라 등. 안 해도 될 참견을 정부가 무시로 해댄다. 업무 효율과 생산성이 오르기 힘든 구조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기획재정부에 전담 조직까지 두어 관리한다. 감독도 엄하다. 주무 부처와 감사원 감사는 물론 국회로부터 국정감사까지 받아야 한다. 이런저런 관리 감독을 받다 보면 한 해가 훌쩍 지나간다. 이번에는 공공기관들의 청년(15~34세) 의무고용실적이 부진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정원의 3% 이상을 청년으로 신규 채용해야 하나, 공공기관 436곳 중 67곳이 이런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리한 개입, 과도한 간섭, 성급한 실행, 비현실적 탁상행정 등...정책 체계의 난맥 두드러져

언뜻 들으면 전적으로 공공기관이 잘못한 것으로 이해된다. 말은 양쪽 다 들어보라 했다. 정확한 사실을 알려면 공공기관 쪽 얘기도 들어 봐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공공기관의 의견은 전혀 딴판이다. 청년 의무고용 비율을 지키지 못한 것은 사실이나, 책임은 정부 측에 있다는 하소연이다. 공공기관 4곳 중 1곳이 정부가 지시한 블라인드 채용방식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정부가 입사지원서를 통해 출신지 학력 학점 신체조건은 물론 나이를 확인하지 말라면서, 청년 의무고용률 준수를 요구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 모순이다.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격이다. 실제로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마스크를 쓰고 면접을 하는 마당에 외모만 잠깐 보고 어찌 정확한 나이를 파악할 수 있겠는가. 유능한 인재를 뽑으려면 나이만 봐서도 안 될 일이다. 탁상행정이라는 말이 이래서 나온다.

설고 어설픔은 정책에도 흔하다. 생계형 창업 청년몰도 그중 하나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2017년부터 조성한 전통시장 내 청년몰이 실패작이다. 취지야 훌륭했다. 전통시장 및 상가 내 공실을 줄이고, 청년 창업을 지원해 청년 실업률을 낮추려는 의도는 나무랄 데 없었다. 예상은 빗나갔다. 5년간 약 600억 원 규모의 사업예산을 투입했으나 성공한 사례가 없다.

소진공에 따르면, 올 6월 기준 운영 중인 청년몰 40개 중 영업률이 80%가 넘는 곳은 14개에 불과하다. 상권이나 입지 분석도 없이 청년몰을 조성한 게 애초부터 잘못이었다. 주된 고객층이 50~70대인 전통시장에 젊은이가 주로 찾는 카페, 디저트 가게, 소품 공방 등을 차려 무슨 장사가 될 수 있었겠는가. 작명부터 틀렸다. 청년몰이라 이름 붙이니 청년들만 가는 곳이라고 생각한 중장년층이 그곳을 찾을 리 없었다.

정치는 신의 부름인 ‘소명’, 공직은 하늘이 준 ‘천직’...정책 실패는 청지기 사명 못 한 귀결

큰 걱정은 고용보험기금이다. 2017년 10조2,544억 원에 이르렀던 적립금이 바닥을 드러낸다. 2018년부터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해에는 적자 폭이 5조 원을 넘었다. 올해는 적립금이 사상 최초로 마이너스로의 반전이 예상된다.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지난해 4조4,997억 원, 올해 3조2,000억 원을 빌려다 썼는데도 태부족이다. 경기침체와 코로나 사태에 따른 실업급여 지출이 급증한 탓이 크나 그게 다가 아니다.

무절제하고 무책임한 운용에도 원인이 있다. 정부가 코로나 사태 전인 2019년 10월 실업급여 지급 기간과 지급액을 늘렸다. 지난해 12월 예술인에 이어 올 7월부터는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등 12개 특수고용직까지 고용보험 가입을 허용했다. 고용유지지원금, 청년고용추가장려금 등도 기금에서 빼 썼다. 이번에는 고용보험료율을 올리려 한다. 그것도 인상 시기를 내년 하반기로 미뤄 차기 정부로 넘기려 한다. 몰염치도 이런 몰염치가 없다.

이래저래 국민만 죽어난다. 정부가 들어 섭섭할지 모르나, 정책 운용에 소홀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선한 청지기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셈이다. 이를 예견이라도 했듯, 일찍이 막스 베버(Max Weber)는 정치는 신의 부름 또는 명령을 받은 ‘소명’, 공직은 하늘이 준 천직이라 설파했다. 또 공직 수행의 덕목으로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을 적시했고, “책임 의식 없는 열정은 지적인 낭만주의일 뿐”이라며 일침을 가했다.

정치적 선의(善意)가 반드시 결과적 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정치인을 ‘유아(幼兒)적 정치인’으로 질책하는 대목은 따끔한 타이름으로 와닿는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정치 시행의 방침인 정책을 다루는 공직자들에게 한 말씀 고하려 한다. 주제넘은 사설인 줄 알지만, 정치가 무엇이고 공직자가 어떤 존재인지를 일깨우는 막스 베버의 고전, ‘직업으로서의 정치'의 일독을 권한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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