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유복자들과 '아버지'...용산공원에 진실과 화해의 추모비를
6.25 전쟁 유복자들과 '아버지'...용산공원에 진실과 화해의 추모비를
  • 정근식
  • 승인 2021.09.07 10:25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근식 칼럼] 한국에서 가장 매력적인 치유의 숲길 중의 하나가 오대산의 선재길이다. 월정사에서 시작되는 이 길은 산 높고 물 깊어 유장할 뿐 아니라 숲의 청량감이 세상의 번뇌를 잊게 한다. 이 길의 끝자락에 ‘천고의 지혜’를 품은 도량, 상원사가 자리잡고 있다.

필자는 6.25전쟁 당시 자신의 몸을 던져 유서깊은 이 사찰의 법당을 구했던 노선사와 그를 흠모한 한 장교의 이야기를 화두로 삼아 이 길을 오르내리면서 다가오는 가을을 생각했다. ‘좌탈입망’의 경지를 보여주고 사바세계를 떠난 그의 빈 자리를 메운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전쟁은 인적으로나 물적으로 많은 피해를 낳는다. 전투에 참가한 병사들은 물론이고 민간인들도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는다. 한국전쟁의 경우, 보도연맹원과 형무소 재소자들이 대규모로 희생되었던 7월,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이 많이 발생했던 9월, 그리고 부역혐의로 몰려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던 10월이 우리 국민들에게 유독 잔인했던 시간들이었다.

민간인 희생자들의 가족들은 어떠한가? 이들 중에서 딱한 사람들이 ‘전쟁미망인’과 ‘전쟁고아’였다. ‘전쟁미망인’이라는 말 자체가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어색한 표현이지만, 그나마 민간인 희생자의 부인들에게는 이 말이 잘 적용되지 않았다. 이들 못지않게 서러운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이 또 있다.

전쟁 유복자들이다. 동족상잔의 북새통 속에서도 그해 여름부터 이듬해 봄까지 새로운 생명들이 적지 않게 태어났는데, 이들의 상당수는 아버지가 세상을 뜬 뒤 태어난 유복자들이었다. 이들이 자신에게 꼭 있어야 할 존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들과 그 어머니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으면서 세상을 살아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정부나 사회는 이들을 돌보지 않았다. 아니 돌볼 여유가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뒤에도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해지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국가책임의 일부라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다.

전쟁 유복자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조국 근대화와 총력안보라는 표어로 점철된 권위주의 시기에 청년시절을 보냈던 이들에게 아버지를 찾을 기회는 주기는 커녕 연좌제라는 그물을 씌워 삶을 위협하기도 했다.

지난 10여년전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 시기에 활동했던 유족들이 주로 전쟁당시 세상 물정을 조금은 알았던 소년 소녀들이었다면,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 시기에 활동하고 있는 유족들은 전쟁기억이 별로 없는 세대들이다. 일흔을 넘긴 전쟁 유복자들은 충주, 진주, 영암, 함평, 완도 등 전국에 산재한 한국전쟁 유족회의 회장님들이 되었다.

이들에게 아버지는 잊혀진 존재였을까? 아니다. 한국전쟁 유족회가 주최하는 추모제나 유해발굴 현장에 가보면 어김없이 ‘불러보고 싶은 이름, 아버지’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자신의 삶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고 느끼게 된 전쟁 유복자들에게 아버지가 사무치게 그리운 존재가 되어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의 사부곡과 추모사는 한국 현대사가 오랫동안 잊어버리려고 했던 애달픈 세레나데이며, 사회적 양심을 깨우는 죽비소리이기도 하다. 이들이 가슴에 간직하고 있는 간절한 소망은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 고인의 명예를 회복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다.

용산에 있는 미군기지에 시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공원을 조성하는 계획이 진행 중이다. 이 용산공원에 ‘통일과 화합의 숲’을 조성한다는 안이 포함되어 있다. 얼마 전에 한 유복자 회장님과 유족 한 분이 필자를 찾아와 이 숲에 작은 추모비를 세워달라고 요청하였다.

이들은 천만명의 시민이 사는 수도 서울에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들을 위령하는 추모비 하나 없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국가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 뿐 아니라 적대세력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명복도 함께 비는 화해의 위령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침 이 장소가 전쟁기념관과 가까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실현된다면, 그 의미는 작지 않을 것이다. 아무쪼록 이들의 염원을 담아 화해와 치유의 추모비가 천년의 지혜처럼 세워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다산칼럼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필자소개

글쓴이 / 정 근 식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 서울대 전 통일평화연구원장

·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위원장

· 저서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국제연대〉(공저, 한울, 2018)
〈평화를 위한 끝없는 도전〉(공저, 북로그컴퍼니, 2018)
〈소련형 대학의 형성과 해체〉(공저, 진인진, 2018)
〈냉전의 섬 금문도의 재탄생〉(공저, 진인진, 2016) 외 다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서울이코미디어
  • 등록번호 : 서울 아 03055
  • 등록일자 : 2014-03-21
  • 제호 : 서울이코노미뉴스
  • 부회장 : 김명서
  • 대표·편집국장 : 박선화
  • 발행인·편집인 : 박미연
  •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1107호(여의도동, 삼도빌딩)
  • 발행일자 : 2014-04-16
  • 대표전화 : 02-3775-4176
  • 팩스 : 02-3775-41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미연
  • 서울이코노미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1 서울이코노미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eouleconews@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