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와 말...‘말 잘하는’ 정부보다 ‘잘 말하는’ 정부가 낫다
공직사회와 말...‘말 잘하는’ 정부보다 ‘잘 말하는’ 정부가 낫다
  • 권의종
  • 승인 2021.10.05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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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은 하고, 한 말은 지켜야”... 장부(丈夫) 일언은 중천금인데, 정부 일언이 그만 못해서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말하기만큼 어려운 게 없다. 관계 맺고 교류하며 살아가는 세상인지라 말은 잘하고 봐야 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우랴. 따라 하려도 따라 하기 힘들고, 배우려 해도 잘 배워지지 않는다. 하늘은 사람마다 다른 능력을 준 듯. 아는 게 많다고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지식인 중에도 어눌한 화법의 소유자가 적지 않다. 글을 잘 써도 말이 서툴고, 말을 잘해도 글쓰기에 젬병인 경우가 흔하다.

말의 중요성은 예로부터 강조돼왔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도 갚는다” 했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관계가 달라지고 삶이 바뀔 수 있다는 소중한 가르침이다. 입은 재앙의 문. 말조심도 함께 당부한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등등의 속담도 그런 의미를 전한다.

말은 자기표현의 핵심 수단이다. 말을 통해 지식, 교양, 경험, 성격 등의 참모습이 드러난다. 말하는 내용은 물론 어투, 선택하는 어휘에 따라 사람 됨됨이가 평가된다. 푸른 산에서 물이 흐르듯이 말을 잘하는 사람은 늘 부러움의 대상이다. 자기의 생각과 의견을 정확하고 간결하게, 가감 없고 오해 없이 전달하고 싶은 건 모두의 소망이다.

서점가에 스피치 관련 도서가 넘쳐난다. 말하기 기술을 전수하는 학원이 즐비하다. 말재주는 단련되는 능력이며, 전략과 기술로 수준 향상이 가능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교육 방식이 나름 체계적이다. 교제, 대화, 감정, 설득 등으로 구분하여 접근한다. 내용도 제법 구체적이다. “사전준비는 필수다. 주도권을 장악하라. 속담과 격언을 활용하라. 지적에 달콤함을 가미하라. 유머 감각을 키우라. 목소리 관리는 필수다. 여지를 남겨라.”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발표 전 사전준비에 소홀한 공직자들...내용 숙지 못한 채 아랫사람이 써준 거나 읽고 있어

말을 잘하려면 사전준비가 충분해야 하는 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고위 공직자일수록 그런 경향이 있다. 내용을 숙지하지 못해서인지 말하는 게 어눌하고 어색해 보인다. 아랫사람이 써준 거나 읽고 있는 모습이 눈에 거슬린다. 단 몇 마디 말을 하면서도 자료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만들어준 자료도 찾지 못해 쩔쩔매는 경우도 생긴다. 지켜보는 사람이 되레 조마조마할 정도다. 이쯤 되면 말하기가 아니라 글 읽기다.

대선주자들이 말하는 것도 성에 차지 않는다. 토론 모습만 봐도 실망이다. 남 얘기는 건성이고 자기주장만 하려 든다. 말을 조리 있게 못 하고 질문도 핵심을 빗나가기 일쑤다. 본인이나 잘하면 되지, 남의 약점이나 들춰내 망신이나 주려 한다. 공약에 무슨 선후가 있다고 상대 후보가 자신의 것을 베꼈다고 난리를 친다. 지엽적인 문제를 상대에 캐묻고 답변을 못 하면 그것도 모르냐며 면박 주는 걸 능력으로 착각한다. 토론이 거듭될수록 짜증만 느는 이유다.

말도 말 나름. 빈말은 안된다. 더구나 공직자는 참말만 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 정치의 고질병이 된 낙하산 인사 관행이 대표적 사례일 수 있다. 대선후보 시절에는 다들 인재를 천하에 널리 구하겠다고 굳게 약속한다. 지켜지지 않는다. 당선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가 돌변한다. 전문성도 없는 친정부 인사들을 공공기관 등의 요직에 무더기로 내려보낸다. ‘공정철학 공유’라는 허울만 번드르르한 꼬리표를 붙여서.

장담(壯談)도 삼가야 한다. 작금의 집값 급등을 보면 그래선 안 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부동산값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잡고 말겠다”던 정부다. 호언이 허언이 되었다. 가격안정은커녕 가격폭등이 전국에 걸쳐 벌어졌다. 현재도 진행형이다. 그러고도 반성하는 구석이 없다. 정부가 집값 상승의 주된 요인으로 지목되는 공급 부족을 해소하려 하기보다, 세금 중과, 대출 제한, 세무조사 등 수요 억제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상황이 그리 쉽게 호전될 성싶지 않다.

말도 말 나름, 공직자는 참말만 해야지 빈말은 금물...호언장담 파하고, 자화자찬 삼가야

전기료 인상만 해도 그렇다. 정부가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절대 올리지 않겠다던 전기료를 느닷없이 올렸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인 2022년까지 추가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단언했던 게 기억에 또렷하다. 그런데도 한국전력은 4분기 최종 연료비 조정 단가를 1kWh당 0원으로 전 분기(-3원)에 비해 3원 인상한다고 밝혔다. 4인 가구의 경우 매달 최대 1,050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전기료 인상이 이제 시작일 수 있다. 연료비 연동제가 올해부터 도입된 만큼 국제유가 고공 행진에 따른 전기료 인상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한전의 재무 상태가 최악의 수준인 점도 추가 인상을 예고하는 부분이다. 지난해 132조 원이었던 한전의 부채 규모는 2025년 166조 원으로 커질 거라는 전망이다. 한전과 6개 발전자회사의 올해 영업 손실만 3조 8,492억 원에 달할 거라는 예상이 나온다.

자화자찬 또한 듣기에 거북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백신 수급이 빠듯하고 확진자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K방역 홍보가 낯간지럽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하나뿐인 목숨까지 버리며 사투를 벌이는 마당에 경제 회복을 치켜세우는 게 눈치 없어 보인다. “수출이 호조세이고 2차 추경 등의 정책효과가 반영되며 성장률이 상향된 것으로 보인다”는 경제부총리의 말이 부담스럽다. 말 안 해도 다 알 사실을 드러내 말하다 보니 생색내기로 들린다.

말은 논리보다 감성이 앞선다. 우리말이 특히 그러하다. 말의 무게와 온도가 그때그때 차이가 난다. 같은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조사(助詞) 하나로도 느낌이 천양지차다. 말은 약인 동시에 독이 된다. 실제로 말처럼 무서운 게 없다. 말로 인한 상처는 견디기도 고치기도 어렵다. 이제 공직사회도 성숙해져야 한다. 할 말을 하고, 한 말은 지켜야 한다. 장부 일언(丈夫一言)이 중천금 일진데 정부 일언이 그만 못해 쓰겠는가.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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